임신을 하고 큰 이벤트가 없이 무사히 지나갔던 9개월이 무색하게 막달이 되자마자 여러 이벤트가 팡팡 터지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시작은 감기였다. 어디에선가 옮아온 감기에 걸려서 일주일을 꼬박 앓았는데, 상태가 나아지기 무섭게 또 감기에 걸렸다. 그리고 이 두 번째 감기가 2주 넘게 지속되며 심한 기침이 시작되었다. 임신성 비염으로 코는 막히고, 기침은 산발적으로 올라오다 보니 밤마다 한두 시간 자다가 기침에 깨곤 했다. 이렇게 3주를 앓던 어느 날, 오른쪽 갈비뼈가 아팠다. 그냥 아프기엔 위치나 통증의 형태가 이상했다. 찌릿도 뻐근도 아닌 요상한 통증에 38주 만삭의 배를 이끌고 정형외과에 갔다. 위치가 너무 아기 위치와 가까워 엑스레이 촬영이 불가해서 초음파로 본 결과, 오른쪽 갈비뼈에 금이 갔다고 한다. 일자로 곧게 뻗어있어야 하는 뼈가 약간 3자처럼 구부러졌다고, 이 뜻은 완전히 부러진 건 아니고, 부러질랑 말랑한 상태라고 하셨다. 원인은 차차의 발차기 덕분일 수도 있고, 심한 기침 때문일 수도 있었다. 막달 막주에 가까운 커다란 배 때문에 복대를 할 수도 없고, 약도 먹을 수 없으니 그냥 버텨보라는 진단을 받았다. 수납을 해주시는 간호사분 께서 안타까워하며 무거운걸 절대 들지 말라는 조언을 해주셨다.
정형외과에 갔다 온 이틀 후, 컨디션이 급 나빠졌다. 이상하게 애플워치에서 심박수 알람이 계속 뜨기 시작했다. 저녁이 되고 상태가 급 나빠져 워치 기록을 보니 심박수 150 이상이 2시간 이상 지속되었다. 이건 정말 아니다 싶어서 코로나 키트를 했더니 양성이 나왔다. 부랴부랴 남편과 같이 24시간 병원을 찾았더니, 열이 38도를 넘고 심박수가 너무 높으니 응급실을 가보라는 조언을 받아 결국 대학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혈액, 소변, 심전도, 초음파 등등 가능한 검사들을 모두 하고 나니, 뚜렷한 원인은 없고 임신으로 인한 심박수 상승에 고열로 더 심해진 것 같다는 결과를 받았다. 게다가 코로나도 확진받았다. 응급실에서 해열 수액과 큰 수액을 맞으며 네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귀가했다.
응급실을 다녀온 다음날부터 코로나가 본격 시작된 건지 심하게 아팠다. 평소 인간 홍삼으로 열이 많던 내가 오한이 심하게 와서 이불을 두 개씩이나 덮었다. 이마에 쿨링 시트를 붙이고 시간 맞추어 타이레놀 ER을 먹으며 열을 내리는데 집중했다. 임산부의 고열은 양수를 뜨거워지게 하기 때문에 임신했을 때 제일 위험하다는데, 걱정이 너무 돼서 배에도 쿨링 시트를 붙이기도 했다. 글을 쓰는 지금 생각하니 바보 같지만 그때는 걱정이 많이 되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지 해보자는 생각이었다.
이렇게 임신 10개월 막달을 감기, 갈비뼈 골절, 코로나로 꼬박 채우며 4주를 보냈다. 외출도 하지 못해 체력도 많이 떨어지고 우울감과 무력감이 굉장히 심하게 들었다. 코로나 3일 차가 되고 몸이 조금 나아졌을 때, 타이밍 좋게 아버지께서 영덕에 가서 직접 고르신 박달 대게를 집으로 보내주셨다. 아빠가 걱정하실까 봐 아프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은 상태였는데,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게’여서 직접 가서 사서 보내주신 거였다. 감기가 길어지며 속이 메슥거려서 한동안 잘 못 먹었는데, 박달대게를 보자 재작년에 아빠와 단둘이 영덕 여행을 가서 맛있게 먹었던 박달대게 생각이 났다. 아빠도 그 여행을 매우 좋아하셨는데, 생각이 나서 사다 주신 것 같았다. 크고 살이 튼실해서 수율이 좋고 맛도 좋은 박달대게를 열심히 먹고 낮잠을 푹 자자 거짓말처럼 열이 안 나기 시작했다. 아빠의 사랑이 떠오르고 부모의 마음이 조금씩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결혼도 늦게 하고 노산이 가까운 나이에 임신을 했는데도 다 커서 임신을 한 내 모습이 기특하다고 하던 아빠의 모습이 떠올랐다. 내가 몇 살이건 상관없이 아빠의 눈에는 아직도 내가 애처럼 보이는 것 같다. 임신을 하고부터 아빠의 반응이 늘 뭉클했다. 이런 부모의 마음을 나도 차차를 보며 느끼게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