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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솔 Jul 06. 2022

야생과의 조우

산골 일기 첫 번째

녀석은 황갈색의 두툼한 꼬리를 치켜든 채 축대 끝을 걸어오고 있었다. 

담비였다. 

축대 틈새의 좁은 틈을 비집고 들어온 잡목들을 자르려고 막 축대에 내려선 참이었다.

 녀석은 어디에 마음이 팔렸는지 미처 나를 발견하지 못한 모양이다. 

나도 녀석이 놀랄 새라 미동 없이 가만히 서서 녀석을 지켜보았다. 

한참을 유유히 다가오던 녀석은 뒤늦게 나와 눈이 마주쳤고 그제 서야 화들짝 놀라 오던 길을 되돌려 쏜살같이 축대 아래 덤불로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놀라기는 그 녀석뿐만 아니라 나도 마찬가지였다. 

축대의 좁은 길 끝에서 담비를 만나리라곤 전혀 상상하지 못했으니까! 

예기치 않은 담비와의 조우는 새삼 이곳이 야생의 세계라는 것을 내게 환기시켜 주었다. 

뒤 뜨락에 우거진 대숲에서 재잘거리던 새떼가 군무를 출 때도 사방으로 둘러쳐진 산봉우리를 적막히 바라볼 때도 느끼지 못했었는데 말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가 정말 시골로 이사왔구나’라는 것을 생생하게 깨달을 수 있는 결정적인 사건이 터지고야 말았다.

 아침 산책을 나갔던 아내가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되돌아왔다.     


“여보 나 뱀 봤어!”     


코스모스가 한들거리는 초가을의 한적한 시골길을 만끽하던 아내가 얼마나 놀랐을까? 

시골 살이를 질겁하게 하는 최강의 존재, 뱀이 이사 온지 십 수 일도 되지 않아 

강렬한 환영인사를 건네 온 것이었다. 

시골 살이를 결정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벌레와의 전쟁을 어떻게 할 것이냐며 염려해 주었는데 

차마 입에 담지 않은 뱀과의 조우를 먼저 하게 된 것이다. 

많이 놀랐을 아내에게는 미안했지만 나는 속으로 차라리 잘 된 일이라고 위안의 한숨을 쉬었다. 

초반부터 야생 최강의 존재를 만났으니 앞으로 만날지 모를 그 어떤 것들에게도 적응할 수 있지 않겠는가! 

초강력 면역주사 한 방 맞은 셈 치지 뭐.      

그 뒤로도 뱀은 함께 귀농한 이웃집 아내를 스쳐 데크 밑으로 숨어드는 결정적 연출을 통해 

뿜 뿜 존재감을 드러냈다. 

집까지 내려 온 뱀에 깜짝 놀랄 즈음 그 남편이 한마디 툭 던졌다.   

   

“시골 살면 뱀도 보고, 벌레도 보고 그러는 거지. 

나도 처음에는 놀랐는데 지금은 니 갈길 가라며 발로 툭 쳐준다 아이가! 

우리가 안 건들면 지가 먼저 덤비는 동물은 없다. 괜찮다 놀랠 것 없다.”     


그 말이 모두에게 적잖은 위로가 되었다.

 ‘앞으로 또 뱀을 보면 어쩌지?’ 하는 불안한 마음이 많이 달래진 것이다. 

한편 대숲에 사는 산새들은 이웃집 투명한 창문을 어찌나 두드려 대던지 며칠을 고심하다가 

커다란 독수리 사진을 유리창에 붙여 둔 뒤에야 겨우 조용해졌다.      

뒷산 산책길에서는 멧돼지들이 가려운 등짝을 비벼대는 통에 등걸이 훌렁 벗겨진 나무들이 여럿 보인다. 

조금 부드러운 흙 밭은 녀석들의 목욕탕으로 사용된 흔적이 선명하다. 

이 녀석들이 낮 동안에는 어디에 숨어 있을까? 

낙엽이 수북한 뒷산 길을 걸을 때마다 불쑥 야생 멧돼지라도 마주칠까 조마조마 할 때가 있다. 

그제는 뒷산의 소나무 군락지에서 육중한 날개를 펴고 하늘을 덮어 날던 커다란 부엉이를 보았다. 

가까운 하늘을 나는 부엉이가 얼마나 크던지... 

날개를 한껏 펼친 부엉이는 거의 1.5미터가 넘어 보였다. 

탄성이 절로 났다.            


나는 야생의 동물들을 만나거나 그 흔적들을 발견할 때마다 

자연의 주인이 결코 내가 아니라는 사실을 극명하게 깨닫곤 한다. 

야생의 입장에서 보면 나는 예고 없이 쳐들어온 무례한 무단침입자에 불과할 것이다. 

침입자인 주제에 야생을 향해 ‘니들이 좀 비켜주어야겠다’라며 고요한 숲을 깨우니 

적반하장도 유분수일 테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자연은 주인공이 없는 공유의 공간이다. 

모든 생명이 주어진 환경 속에서 서로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세계다. 

특정한 누구를 위해 희생하고 양보하는 세계가 아니다. 

군림하는 세계가 아니다. 

그래서 누군가의 독점으로 인해 조화가 깨진 생태계는 치명적이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도 자연의 주인은 아니다. 

인간도 자연 속에 조화로운 일원이 되어야 비로소 풍요로울 수 있다. 

자연을 자신의 삶을 위한 종속 수단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결국 종속에 의해 파괴된 자연은 언젠가는 부메랑이 되어 인간의 삶을 옭아매고 말테니까. 

어쩌면 우리는 이미 그 부메랑에 맞아 치명상을 입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최근 인류가 맞닥뜨린 거대한 팬데믹 위기도 따지고 보면 

무너진 생태계로 인한 인수 감염병이 주된 원인인 것을 보면 말이다. 

파괴된 자연 질서 속에 서식지를 잃은 동물들이 점점 더 인간 가까이로 내려오게 되고 

그 좁아진 간격 속에 변종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있다. 

사스, 메르스, 지카, 그리고 전 세계적 위기를 불러온 코로나가 바로 그렇다.      


그런 연유로 나는 이곳에서 사는 동안 인간 속의 자연이 아닌 

자연 속의 인간으로서의 위치를 지켜나가고 싶다. 

무엇보다 도회적인 직선이 아닌 자연의 곡선을 닮아가고 싶다. 눈을 들어 자연을 들여다보라! 

자연의 모든 것은 부드러운 곡선이다.

굴곡진 산등성이, 뻗어 올라가는 나뭇가지, 산을 둘러가는 작은 소로들, 두렁길들, 여울진 개울, 

들꽃송이 하나까지 모두가 부드러운 곡선이다. 

자연엔 어디에도 찌르는 직선이 없다. 

날카롭게 벼려진 칼날이 없다. 

부드러운 곡선 속에서 때를 따라 열매를 맺고, 무성하게 자라 오르고, 고요하고 아득한 이별을 선물한다. 

모든 것이 천천히 흘러가지만 멈추어 서서 고이지 않는다. 

모진 겨울을 견디어 푸른 싹을 틔우고, 무성하게 자라 올라 마침내 열매를 맺고, 

조용히 무대 밖으로 물러날 줄 아는 자연. 

그곳에는 질러가는 지름길이 없다. 

더불어 가볍게 지나는 시련의 겨울도 없다. 

대가를 치러야 할 일들, 견뎌내야할 인과(因果)의 강을 정직하게 건너야 한다. 

그렇게 굽이치는 순리의 물결을 따라 흘러가며 견뎌내다 보면 

기쁨의 결실이 풍성히 맺히는 곳이 자연의 세계다. 


나와 마주쳤던 담비도 부엉이도 한 마리 뱀도 평소 제 길이 아닌 곳으로 사라져갔다. 

하지만 이제 안면을 텄으니 피차 알아보며 살아가겠지. 

다시 마주치더라도 서로 놀라지 말자. 

내일부터는 산길에 오를 때면 ‘에헴’하고 기척이라도 넣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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