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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솔 Nov 09. 2022

벽난로에 불을 때며

산골 일기 오십세 번째

     

11월이 되면서 벽난로에 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겨울이 시작된 것이다. 

시골의 겨울은 도시보다 조금 일찍 찾아온다. 

겹겹이 쌓인 아파트 공간과 달리 시골은 해지고 나면 썰렁한 기운이 몸을 움츠러들게 한다.  

    

오랜만에 불을 지핀다. 나무 타는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오랜 기억 속의 정겨운 향기다. 부뚜막에 앉아 불을 때던 시절에 맡았던 익숙한 향수의 냄새다. 마음이 아련해진다. 화 그르르 불꽃이 피어난다. 이글거리는 불꽃을 쳐다보고 있으면 그 옛날 배화교가 왜 탄생하게 되었는지 알 것도 같다. 천변만화하며 일렁이는 불꽃은 아무리 오래 보고 있어도 질리지가 않는다. 그 부드러운 움직임과 색채의 향연은 언제나 가슴을 따스한 온기로 채운다. 불꽃에는 삶에 대한 열정, 한 줌 재로 남겨지는 허무, 따스하게 퍼져 나가는 사랑... 

우리가 세상에서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의 희로애락이 담겨있다.       


시골집을 지으면서 벽난로를 설치한 것은 정말 잘한 일이었다. 집안에서 불멍을 즐길 수 있다는 기쁨은 전원생활에서 누릴 수 있는 또 하나의 특권일 것이다. 난로에 잘 마른 참나무 장작을 채우고 작은 불꽃을 지피는 순간부터 마음이 행복해진다. 이내 참나무에 옮겨 붙은 불꽃이 발그레하게 일렁일 때, 

고요하게 흔들리는 불꽃을 가만 쳐다보고 있노라면 세상 모든 시름이 한순간에 물러나는 느낌이다. 

불꽃을 바라보는 평화로운 마음 하나만으로 살아 있다는 즐거움이 가슴에 가득 채워진다. 

지난한 인생길에 잠시 머물러 이런 여유를 누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 축복이라는 감사의 마음이 절로 드는 것이다.      


벽난로에 굳이 참나무 장작을 고집하는 이유는 깔끔하게 남는 재 때문이다. 참나무는 따뜻한 불꽃을 선사하고는 작디작은 함 줌의 재만을 남긴다. 하지만 흔한 소나무는 재와 함께 남겨지는 송진 때문에 결국 연통이 막히는 불상사가 일어나곤 한다. 연통을 자주 청소해 줄 수 있는 부지런함이 아니라면 참나무 장작이 벽난로에는 제격이다. 불꽃의 운치를 더 깊이 즐기려는 사람들은 때로 사과나무 장작을 구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사과나무 장작에서는 아름다운 푸른 불꽃이 피어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꽃의 색깔이 무슨 문제겠는가! 세상 모든 불꽃에 대해 우리가 불을 꽃이라 부르는 이유가 분명하다. 

때로는 우리의 원초적인 감정을 부드럽게 정화시키기도 하고, 깊은 사색의 바다로 이끌기도 하는 일렁이는 불꽃의 아름다움은 언제나 마음을 따뜻한 평화로 가득 채운다.   

   

벽난로의 진정한 위력은 집에 손님을 초대했을 때다. 애써 불꽃이 이글거리도록 난로를 피워 놓고 손님을 맞으면 거의 대부분은 집에 들어서자마자 난로가로 모인다. 불꽃이 춤추는 거실은 그 따스한 훈기보다 훨씬 더 사람들의 감정을 따뜻하게 한다. 마음의 냉랭함을 가진 어떤 사람의 마음도 일순간에 풀어질 정도로 말이다. 거기다 서쪽 통창(通窓)으로 늦은 햇살이 비껴들 즈음엔 햇살과 어우러진 온기가 배가되면서 따스함의 정서가 배가된다. 자연 모든 대화도 따스하고 달달해지기 마련이다. 나는 그 따스한 벽난로를 바라보며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는 것이 참 좋다. 뭐 특별한 주제가 아니어도 함께 이런저런 신변잡사를 나누다 보면 타오르는 불꽃이 사람들의 눈동자에도 맺힌다. 마치 행복이 어린것처럼. 그런 따스한 눈빛으로 대화를 나누고 정을 나누다 보면 사람 사는 재미가 이런 거지 하는 부드러운 긍정이 마음을 채운다.      


난로가 주는 또 하나의 선물은 겨울철 백미라 할 수 있는 군밤, 군고구마를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서는 난로를 선정할 때 밤이나 고구마를 구워낼 수 있는 별도의 공간이 있는지 확인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은박지에 고구마를 싸서 장작과 함께 넣는 것은 자칫 태워먹기 십상이지만 별도의 굽는 공간이 있으면 적당하게 익은 맛있는 군밤이나 고구미를 즐길 수 있다.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꺼내먹는 따끈한 고구마는 또 얼마나 사람들과의 관계를 훈훈하게 하는지 모른다. 소박한 음식을 나누는 것은 잊혀지지 않는 추억을 나누는 일과 같다.      


요즘 나의 하루 일과는 난로를 청소하고 저녁에 피울 장작을 정리해 두는 일로 시작된다. 유난히 추위를 타는 아내가 벽난로에 등을 대고 몸을 따뜻하게 덥히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난로에 쌓인 재는 모아서 텃밭에 고루 뿌려 거름이 되게 하고 불쏘시개 나무를 정리하여 그 위에 굵은 참나무 장작을 올려 주면 난로 작업이 마무리된다. 불멍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 난로의 불창을 깨끗이 닦아 끄름을 제거해 주는 것은 난로 청소의 화룡 점점. 무언가를 치우고 새로운 불꽃을 위해 준비하는 일은 그 자체로써도 상당한 즐거움이다. 난로에 바로 불을 붙일 수 있도록 준비해 두는 일은 언제나 마음을 넉넉하게 한다.   


참나무는 숯가마가 많은 지리산 자락에서는 그리 구하기 어렵지 않다. 다른 지역에서는 어떨지 모르지만. 그리고 불쏘시개 나무는 지천에 널렸다. 대부분의 과일나무는 겨울철에 전지 작업을 하고 잘라낸 나무가 처치 곤란한 지경이다. 그러니 전지한 나뭇가지는 일 년을 때도 남을 만큼 곳곳에 넘친다. 그런데 올해 참나무 땔감 값이 많이 올랐다. 예년에 비해 10% 정도 몰랐는데 가격이 더 오른다는 소문에 서둘러 장작을 구매하고 쌓아둔다. 제법 벽면을 가득 채운 장작을 바라보고 있으니 부자가 된 기분이다. 밥 안 먹어도 배부르다는 말이 이때 쓰는 표현이 아닐까 싶을 만큼.      


무시로 찾아오는 이웃들과 난로의 불꽃 아래 모여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 꽃을 피우며 군고구마를 먹는 맛은 시골 살이가 아니면 어디에서 누려 볼 수 있는 호사겠는가! 특별히 차가운 외등이 홀로 졸고 있는 밤, 흰 눈이라도 소복이 쌓이는 밤이라면... 그 따스한 행복을 그 무엇에 견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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