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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하남 Apr 13. 2022

맘충, 누가 만드는 건가요

같은 부모라도 엄마인 게 죄인 사회

엄마의 커피 한잔에 대한 시선

영화 <82년생 김지영>에는 주인공 김지영이 커피를 마시는 장면이 몇 차례 나온다. 해당 상황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벤치에 앉아 유아차를 앞에 두고 커피를 마시는 김지영을 보면서, 한 남자는 그를 남편 돈으로 놀고먹는다며 험담하고, 김지영은 당황하며 자리를 뜬다.

2) 카페에서 김지영의 딸이 실수로 커피를 쏟자, 역시 근처에 있던 남자가 민폐를 끼친다며 짜증을 낸다. 김지영은 당황하며 쏟은 음료를 치우기 바쁘다.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반응이다. 물론 나는 이런 인식에 대해 시비를 걸기 위해 이 사례를 가져온 것이다. 먼저 1)의 경우를 따져보자. 험담을 한 남성은 김지영에 대해 아무런 정보가 없다. 하지만 김지영이 아기를 데리고 있다는 것만을 근거로 그를 전업주부로 인식하고 있으며, 자신의 돈이 아니라 남편의 돈으로 커피를 구입했다고 생각한다. 다른 직장을 가진 여성이 연차를 내고 아기와 나들이를 나왔을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남자의 눈에 낮 시간에 일하지 않고 나와 있으면 무조건 전업주부이다. 육아를 노동이라고 인식하지 않는 것도 알 수 있다. 김지영이 육아를 전담함으로써 그의 남편이 직장에서 월급을 안정적으로 받아올 수 있는 것인데, 남편의 월급에서 나온 돈이라고 해서 그것을 온전히 남편만의 것이라 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애초에 남의 가정에서 돈을 어떻게 소비하든지 무슨 상관 인지도 모르겠다. 만약 남자가 아기를 데리고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면 마누라 돈으로 놀고먹는다고 생각했을까. 설사 그렇게 생각했다 하더라도 대놓고 들리게 말할 수는 있었을까.


다음으로 2)의 경우를 보자. 만약 성인 남성이 같은 실수를 했다면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별 생각이 없거나, 에구 조심 좀 할 것이지... 정도로 끝날 것이다. 아무도 그가 밖에 나와 커피를 마시려고 했던 것을 탓하지 않을 것이다. 실수한 남성은 별생각 없이 쏟은 커피를 아까워하며 자리를 뜨거나, 예의가 있다면 점원에게 가볍게 미안하다고 인사한 후 자리를 떴을 것이다. 아이를 데려온 아빠가 같은 실수를 했어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대다수는 본인들 역시 한 명의 엄마손에 자랐을 사람들이, 또 다른 엄마들이 실수하면 도와주려고 하지 않고 욕하기 바쁘다. 아기가 울고 있으면 무슨 도움이 필요한지 묻는 게 아니라 왜 시끄럽게 하냐고 짜증을 낸다. 엄마가 집 밖으로 나온 것 자체를 문제시한다. 김지영이 잘못한 것은 커피를 쏟은 것이 아니라, 여성인 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외출한 것이다.


엄마들이 맘충이 될 수밖에 없는 사회적 환경

맘충은 등장한 지 그렇게 오래된 종족이 아니다. 맘충은, 엄마들의 의식 변화 속도를 사회문화적 환경이 따라잡지 못하면서 발생했다. 여성들의 가정 밖 진출이 본격화되기 전의 엄마들은 미성년자 자녀를 양육할 때 집 밖으로 나가 여가를 누릴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저 집에만 틀어박혀 가사노동에 자신의 시간을 온전히 소비해야 했다. 하지만 현재의 엄마들은 그렇지 않다. 육아를 하더라도 밖으로 나가 숨을 쉬고 싶고, 이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것을 시각적으로 확인하고 싶다. 장애인들이 집에만 머무르다 본격적으로 외부활동 비중을 높이려는 시도를 하면서 대중교통 이동권에 대한 논의가 더욱 확장되고 있는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사회는 여전히 아이를 데리고 다니지 않는 사람들만 기준으로 각종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 유아차를 대여해주거나 수유실을 갖춘 시설들이 생겨나고는 있으나, 그러한 공간이 구비된 곳을 사전에 확인하지 않으면 마땅한 공간이 없어 곤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수유실을 갖추었더라도 아빠는 출입이 금지된 경우도 많다. 모유 수유를 하는 엄마들을 배려하는 의미이겠으나, 애초에 아빠를 동등한 육아 책임자로 인식하고 공간을 설계했다면 모유 수유 프라이버시를 지켜주면서 아빠들도 출입을 할 수 있게 설계가 되었을 것이다. 애초에 부모를 수유층으로 상정한 영업장이 아닌 곳에 아이를 데리고 가면 눈칫밥을 먹어야 하는 게 여전한 현실이다.

만원 버스에 아이를 데리고 탐승하면 양보해주는 사람을 찾기 쉽지 않고 아이를 붙잡고 균형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도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여전히 여성의  육아 전담 비중이 높고 아이를 혼자 돌보는 상황이니 손이 부족해 실수를 하게 되는 경우도 발생하고, 사람들은 이때 엄마들을 맘충이라고 비난하게 되는 것이다. 


맘충은 있고 아빠벌레 표현은 왜 없는 것인지도 생각해볼 문제다.(적당한 줄임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아빠에 대한 혐오 표현이 없다는 것은 두 가지를 의미한다. 남성은 육아의 주 책임자가 아니라는 전제를 깔고 있거나, 혹은 남자는 강자의 입장에 있기에 혐오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이다. 혐오는 약자에 대해서만 사용된다. 내가 느끼기엔 공공장소나 식당 등에서 큰 사고를 많이 치는 사람은 주로 성인 남성인데, 노키즈존은 여기저기 있는 반면 성인 남성의 출입을 막는 편의 시설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디를 가나 상식을 벗어난 행동을 하는 사람은 일정 비율로 존재하는데, 육아의 영역에서 맘충만 계속 소환이 된다는 것은 그만큼 아빠들의 육아 참여도가 낮다고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맘충을 갱생시키는 방법

맘충은 개인들의 공공질서에 대한 개념 장착으로 사라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이를 동반한 부모에 대한 배려를 당연시하는 사회 구성원들의 합의를 기반으로, 엄마들이 당당하게 아이를 데리고 외출할 수 있는 분위기가 자리 잡았을 때 자연스럽게 우리 눈에서 사라질 것이다. 맘충은 당신의 마음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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