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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하남 Apr 11. 2022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엄마는 죄인인가요?

모성애 신화 기반의 여성편향적 가스라이팅

아기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부모의 죄책감

2022년 4월 현재 나는 부인과 함께 육아휴직 중이다. 아기들은 지금 7개월이다. 아기들이 태어나기 전엔 반드시 육아휴직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지만, 쌍둥이들이 태어나고 본격적으로 육아를 하게 되면서 필요성을 절감해서 선택했다. 상시 손길이 필요한 아기 두 명을 부모 중 한 명이 제대로 돌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고, 평일 중 양가 부모님의 도움을 받는 것도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선택지도 있다. 어린이집 종일반에 아기들을 보내는 것이다. 아기가 태어난 지 6개월이 지나면 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다. 사실 이미 어린이집에 등록도 했다. 복직을 앞두고 9월에 입소 신청을 하면 자리가 있다는 보장이 없고, 적응 기간 없이 갑자기 아기들을 종일반에 보냈을 때 겪을 상황이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오전에 잠깐 아기들을 보내고 밀린 집안일을 한 뒤 잠깐 휴식을 취하고 점심쯤 아기들을 데려오고 있다. 매달 한두 시간 정도 조금씩 어린이집에 있는 시간을 늘려갈 계획이 잡혀 있다.


어찌 됐건 휴직을 하지 않고 어린이집에 전적으로 보내는 방법을 선택하지 않은 것은 죄책감 때문이다. 아직 허리도 가누지 못하는 갓난아기들을 떼어놓는 게 죄짓는 것 같고, 24시간 직접 돌보지 않으면 부모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부인과 나 모두 9월에 복직이 예정되어 있지만, 그때도 아기들은 돌을 갓 지나는 상황이기에 미안한 마음은 여전히 크다. 


엄마들에게만 더 무겁게 학습된 책임감 : 여성에게만 작동하는 육아 가스라이팅

그런데, 부부 모두 이른 시기에 아기들을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에 미안함을 느끼지만, 이 감정을 수치로 환산한다면 그 정도가 다른 것이 느껴진다. 나는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2학기에 복직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아기들도 어린이집에서 그저 잘 지낼 것이라고 기대한다. 깊은 생각 끝에 생긴 기대도 아니다. 반면 부인은 훨씬 깊은 미안함을 느끼며 지금도 휴직 기간을 더 길게 가져가지 못하는 것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는다. 같은 부모인데 왜 아빠는 덜 미안하고 엄마는 더 미안할까. 선천적으로 모성애는 그만큼 위대하고 부성애는 뭔가 나사가 빠져있도록 성별로 DNA가 다르게 설계되어 있는 걸까. 아이를 직접 돌봐야 한다는 책임감은 과연 인간의 본능인가 아니면 학습된 것일까. 본능이라면 왜 여성에게 더 강하게 작용할까.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리고 보존하고자 하는 것은 일정 부분 본능에 따른 측면이 분명히 있다. 나는 엄마로서 자녀에게 느끼는 자연스러운 감정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엄마만의 본능이 있는 것과 육아의 주된 책임이 엄마에게만 지워지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사회에서는 과학의 이름으로 엄마의 역할을 편향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인류 문명이 시작된 이래로 남성이 가정 바깥에서 벌어지는 일들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양육의 책임은 여성에게 넘겨온 역사를, 마치 인류의 신체적 본능인 것처럼 인식시키고 있는 것이다. 남성들이 상층부를 장악한 사회는 지금도 이러한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서울시임신출산정보센터는 임산부에게 집안일을 하며 체중을 관리하고 출산을 대비해 가족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밑반찬과 남편 속옷 등을 챙겨놓으라는 가이드라인을 배포했다. 옛날이야기가 아니다. 이 내용이 논란이 된 것은 불과 1년 전인 2021년 1월이다. 


육아 교과서 역할을 하고 있는 유명 소아과 의사는 아기 수면 시 모자동실(엄마와 아기가 함께 자는 것)을 강조하지만 부자동실은 아예 언급하지 않는다. 각종 프로그램에 나오는 육아 컨설턴트들은 엄마가 최소 3년은 직접 양육해야 아이의 정서 발달에 좋다면서 아이를 직접 돌보지 못하는 엄마들을 죄의식에 빠뜨린다. 아빠가 직접 돌봐야 한다는 내용은 그다지 강조되지 않는다. 아빠가 육아에 참여하는 밀도가 올라가는 만큼 아이의 발달에 좋고 주 양육자가 꼭 엄마일 필요는 없다는 연구결과는 계속 나오고 있음에도 사회는 엄마의 역할만 편향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아기를 직접 돌보지 않고 어린이집에 보내면, 아빠는 돈 벌러 직장 나가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아무 논란이 없는데 엄마에게는 아이를 생각하지 않는 이기심을 부린다는 시선이 내리 꽂힌다. 여전히 사회는 남자에게 육아에서 동등한 책임을 부여하지 않는다. 아빠는 하루 10분만 놀아줘도 효과가 크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이는 사실상 아빠에게는 육아에서 보조적 역할만으로 충분하다는 고정관념을 강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사회는 이처럼 육아에 대해 엄마에게만 가스라이팅을 행하고 있다. 


어린이집에 보내야만 하는 현실 경제

사회는 아이를 직접 돌볼 것을 강조하지만 정작 부모에게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여건은 제공해주지 않는다. 출산휴가는 짧고 육아휴직 중 보장되는 급여는 턱없이 적다. 대출금 갚기에도 버거운 상황에서 휴직하고 아이를 직접 돌보는 것을 선택하는 것은 대다수 가정에는 불가능에 가깝다. 육아도 결국 먹고사는 문제를 벗어나지 못하며, 가정의 소득에 따라 많은 것이 좌우된다. 엄마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를 전담하면 과연 아이에 미래에 도움만 될까. 그로 인해 엄마의 경력이 단절되고, 가정의 경제적 상황이 이전보다 악화되어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교육과 기타 제공되는 콘텐츠의 수준이 낮아지는 건 불가피하며, 이는 아이의 미래 성장 가능성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전업주부가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에 대해 불편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육아도 노동이며, 휴식이 보장되어야 한다. 가정 밖의 직장에서는 휴게시간을 법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가정도 사회의 한 부분이며 육아는 동등한 가치를 지닌 노동임을 인정받아야 한다. 만약 전업주부가 집안에 틀여 박혀 육아에만 집중한다면 아이는 발달에 도움만 될까. 전업주부도 노동자이며, 열심히 일했으면 쉴 권리가 있다. 사실 휴식 시간도 밀린 집안일 하는 시간에 불과하며, 아이 자는 시간에 쉬라는 말만큼 육아 현실을 모르는 말도 없다. 부부가 동시에 3년을 쉴 수 있는 극소수의 부유한 가정을 제외한 대다수 부모들에게 어린이집은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현실을 인정하고 그에 걸맞은 정책 및 연구 방향 설정해야

전적인 가정 육아는 실천할 수 없는 이상적 담론이다.  아기를 직접 돌보는 게 좋다는 과학은 이제 충분히 알려졌다. 그래 알겠다. 하지만 이제는 대다수 부모가 자식을 어린이집에 보낼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인정하고 그에 걸맞은 시스템을 갖춰나가는 데 방점을 두어야 한다. 정책적으로 어린이집을 더욱 확충하고, 건실하고 안전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각종 체제를 정비해야 한다. 


운영 및 보육 인력의 선발 체제를 균일화하고 대우 수준도 높여야 한다.(다만 개인적으로 공정성을 무너뜨리는 일괄적 신분 변경은 반대 입장이다.) 어린이집 자체의 평균적 수준을 끌어올리고, 주 양육자의 보살핌이 부족한 부분을 최대한 보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어린이집에서도 3세 이하 아기들에게 1:1 비율로 교사가 배정될 수 있다면 매우 바람직할 것이다. 


육아 이론 및 실천 방법은, 가정 단위가 아니라 어린이집 활용을 전제로 개발하는 방향으로 무게중심을 바꾸어야 한다. 전적으로 아기를 돌볼 수 없는 부모들이 해줄 수 있는 효과적인 보육 방법을 연구하고, 어린이집에서도 아기들이 최대한 정서적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환경 조성 방법 및 콘텐츠를 연구 개발해야 한다. 그런 것들이 이 시대 정부와 육아 전문가들이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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