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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하남 May 03. 2022

엄마 생각, 왜 슬퍼야 할까

짱구 엄마의 독박 노동을 보며 생각한다

봉미선의 독박 육아와 가사노동

우리 부부의 쌍둥이 아기들은, 저녁 6시에 목욕을 하고 놀이 시간을 가진 뒤 7시 전후로 분유를 먹고 취침하는 시간표로 움직인다. 그러다 보니 저녁밥을 제법 이른 시간인 오후 4시~5시에 먹고 있는 편이다. 몸도 적응이 돼서 이 시간이 되면 나는 배가 고프다. 하루는 그렇게 저녁을 먹는데, 마침 아기들도 낮잠에서 깨지 않았고 부인은 밥 대신 누워서 쉬는 것을 택해 혼자 식사를 했다.


결혼하기 전엔 혼자 식사를 하는 경우 애니메이션 <짱구는 못 말려>를 종종 시청하곤 했다. 깊은 생각 없이 집중하지 않으면서 보기 딱 좋은 내용과 짧은 길이가 식사에 곁들이기 제격이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생각이 나서 군만두를 먹으며 유튜브에 짱구를 검색해 가장 상단에 있는 에피소드를 재생했다. 그런데 첫 장면부터 당황스러운 장면이 연출되었다.


짱구네 가족은 휴일을 맞아 쉬고 있었는데, 봉미선이 장을 보러 간다며 일어섰다. 평소에도 장보기 노동은 전업주부 봉미선이 혼자 해왔다. 출근하지 않는 남편이 대신 가줄 수도 있지만 그는 그냥 집에서 쉰다. 아내도 대신 가주면 안 되냐고 묻지도 않고 남편이 먼저 가겠다고 나서지도 않는다. 똑같이 쉬어도, 둘 중 하나만 장을 보러 가는 상황이라면 아내가 가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는 것이다.


뭐,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해 봉미선이 장을 보러 가는 것을 즐긴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 하더라도 더 큰 문제는, 장을 본 후 무거운 짐을 들고 와야 할 봉미선이 갓난아기 짱아를 외출 준비 시켜 동행하는 것이었다. 한 명이 아이 둘을 돌보기 힘드니 짱구와 짱아를 한 명씩 맡고 있는다면, 외출하는 사람은 혼자 걸을 수 있는 짱구를 데리고 가고 집에 머무는 사람이 걸을 수 없는 짱아를 맡는 것이 합리적이다. 하지만 역시 봉미선은 당연한 듯이 묻지도 않고 짱아와 장을 보러 나갔고 가족 중 아무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나는 이 애니메이션을 제법 많이 시청했음에도, 아빠 신형식이 짱아의 기저귀를 갈아주거나 분유를 먹이는 장면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집안일은 항상 봉미선이 전적으로 하고 있으며, 신형식이 퇴근한 후에도 쉬기는커녕 남편의 목욕물을 받아놓고 저녁상을 차리는 노동을 혼자 하는 장면만 여러 차례 보였다. 가끔 청소 같은 집안일을 해주는 모습은 보였지만 본인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기보다는 모처럼 부인에게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서비스를 해준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한국 사회는 과연 다른가

국민적 인기를 가지고 장기 방영되고 있는 작품이 이러한 모습을 여러 차례 노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비판이 제기되지 않는 것은, 그만큼 일본 사회가 가사노동과 육아를 전적으로 여성이 담당해야 하는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음을 반영한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과연 얼마나 다른가 고민해보면 결국 남의 일이 아니다.


나는 가끔 아내와 함께 아내의 지인을 만날 때가 있다. 비슷한 세대인 만큼 지인 역시 아기를 키우는 엄마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들은 항상 아기를 데리고 나왔다. 남편들은 무슨 이유에선지 아내가 외출을 해도 아기를 맡아주지 않는다. 바쁘다는 핑계는 있다. 하지만 과연 남편들은 자신이 외출할 때 부인이 편히 쉬도록 아기를 데리고 외출하고 있을지 의문이다. 


물론 남편이 맡아주겠다고 해도 아내가 거절하는 상황도 있겠지만, 이는 그만큼 육아에 숙달되지 않았기에 믿음을 주지 못하는 것이고, 그만큼 남편들이 육아에 대한 주도적 창여수준이 낮은 것을 반영한다. 당장 밖으로 나와 주변을 살펴보더라도, 어른이 혼자 아기를 데리고 있는 경우 남성보다는 여성인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주변의 결혼한 동료 여교사들은 여전히 매일매일 남편과 아이의 저녁 반찬을 고민한다. 반면 결혼한 남교사 중에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을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남자들은 저녁밥을 먹고 들어가면 아내가 좋아한다는 우스갯소리를 많이 하는데, 이는 자신은 가족의 식사를 준비하는 노동에 대한 책임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을 반영한다. 맞벌이 부부라도 여성의 가사노동 비중은 여전히 절대적으로 높다. 반면 남편이 백수인 경우라도 남성이 제대로 집안일을 책임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런 상황을 겪으면서, 결혼한 여성들은 더 이상 아이를 낳고 싶어 하지 않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결혼하지 않은 여성은 그러한 모습을 보고 들으면서 결혼을 기피하게 된다. 아무리 육아휴직 제도가 확대되고, 각종 지원금이 나온다한들, 자신의 인생을 가정에 혼자 갈아 넣어야 하는 불평등이 개선되지 않으면 여성들은 가정을 꾸릴 이유를 찾기 어렵다. 


엄마 생각

<맛있는 녀석들>에 출연하는 김민경은, 방송에서 엄마 이야기나 나오자 눈물부터 흘렸다. 슬픔에 관련된 그 어떤 맥락도 없었지만, 엄마만 생각하면 눈물부터 나온다고 했다. 오랜만에 부모님을 만나거나 생각할 때, 유독 엄마들이 대상이 되는 경우 비슷한 일이 많이 벌어진다. 희생과 헌신이라는 이름으로 일방적으로 가사노동에 자기 착취를 해야 했던 엄마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무의식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아닐까. 언제까지 엄마의 희생만 요구할 건가. 엄마를 생각하면 눈물이 나는 대신 기분 좋고 웃음이 났으면 좋겠다. 이를 위한 필요조건은 우선 육아와 가사노동을 부부가 함께 하는 것이다. 제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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