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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하남 Mar 23. 2022

내가 너희 집 식모냐?

식모, 그리고 82년생 김지영

나는 입맛이 너그러운 편이다. 어린 시절부터 특별히 가리는 것 없이 잘 먹었던 것 같다. 그런 나조차 초등학교 2학년 때쯤 딱 한 번 격렬하게 반찬 투정을 한 기억이 있다. 일요일 아침이었고 메뉴는 고등어구이와 김치, 찬물에 만 밥이었다. 평소대로라면 그냥 맛있게 먹었을 것들이고, 심지어 고등어구이는 매우 좋아한다. 어찌 됐건 나는 같잖은 땡깡을 부렸는데, 그때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 집 식모냐?"


 그때 식모라는 용어를 처음 접했던 것 같다. 대충 집에서 밥을 하는 사람이겠거니 생각했고, 그 뒤로는 큰 관심을 두지 않고 자랐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에 대한 관심이 여전히 미약했던 당시의 시민의식 및 교육과정 수준의 영향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식모는, 갑오개혁으로 신분제가 폐지되면서 각종 가사를 할 수 없는 양반 출신 가정의 살림을 위한 직종으로 등장해 일제강점기 및 1970년대 초중반까지 한국 가정의 가사 일을 도맡았다. 산업화 이전 여성들이 취직할 곳이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무작정 도시로 나온 10대 소녀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식모밖에 없었다. 인력 공급이 넘쳐나니 식모들에 대한 대우는 매우 낮았다. 그나마 식모 자리로 가기라도 하면 다행일까, 식모로 고용되는 줄 알고 따라갔는데 사창가에 팔려가는 일도 많았다.

 

  식모는 고용된 가정에서 폭행과 학대, 성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되었다. 궂은일을 도맡아 하면서도 가정의 구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물건이 없어지면 가장 먼저 의심 은 이방인이었다. 한 지붕 아래 살면서도 어떠한 정서적 유대도 기대할 수 없었다. 운 좋게 마음씨 좋은 고용주를 만나 보살핌을 받으며 일하다가 고용주의 중매로 결혼에 이르는 것이 식모들이 기대할 수 있는 최선의 결말이었다.


가장 안타까운 사례는 어린이 식모들이다.

구시대적 관념에 젖어있던 만큼, 여성은 어차피 출가외인이 된다는 인식이 여전히 강한 상황에서 가난한 가정의 여자 어린이는 가장 먼저 처분 대상이 되었다. 입양이나 고아원 등의 경로도 있었지만, 일부 가정에서 아이를 데려가기도 했다. 식모로 쓰기 위해서였다.

 

어차피 굶어 죽을 처지이니 재워주고 먹여만 주면 그 정도는 요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창 사랑받고 자라야 할 나이에 또래의 아이에게조차 무시당하며 허드렛일을 하는 것은 가혹했고, 부당한 일을 겪더라도 너무 어려서 불평할 수도 없었다. 전쟁고아들도 넘쳐나는 상황에서 밥이라도 먹는 식모의 처지를 대변해주는 목소리가 커지긴 어려웠다.


이후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식모를 구하기 어려워지고, 여성 및 어린이의 인권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식모는 차츰 직업인으로서 대우를 받게 되었다. 제한 시간 없는 무제한 노동에서 벗어나 시간제 개념이 도입되었고, 식모라는 용어는 파출부를 거쳐 가사도우미로 바뀌었다. 이제는 가사 노동의 전문성을 인정해 가정 관리사라는 명칭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가사 노동에 대한 인식도 점차 개선되고 있지만, 여전히 노동의 가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보수적이다. 식모가 하던 일은 다시 부부에게 돌아왔지만,  식모에 대한 편견은 찌꺼기처럼 남아 전업 주부에게 향하고 있다.

 

1968년 당시 강서용 교통부 장관은 식모들조차 택시를 타고 다닌다며 택시비 인상을 주장했다. 2019년 현재, 낮에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있는 누군가의 엄마를 맘충이라며 조롱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요즘 들어서야 약간 늘어나고 있다는 육아휴직 아빠들에게는 라떼파파라는 멋스러운 별명을 붙여주면서, 인류가 등장한 이래 가사와 육아를 전담해 온 엄마들은 커피 한 잔의 여유를 느끼려면 여전히 눈치를 봐야 하며 벌레 취급을 받는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남들에게 굳이 상처 주려고 애쓰지 말고, 이미 각자 가지고 있는 서로의 상처를 이해하고 보듬어 주는데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상처받은 사람에게 공감하지 못하고 자신의 상처가 더 깊다며 허세를 부리는 추태는 이제 그만 두자. 칭얼거리는 아이 때문에 카페에서 음료를 쏟아도, 민폐라며 수군거리는 것이 아니라 괜찮냐고 물어보며 같이 쓰레기를 치워주는 것이 당연한 사회에서 살고 싶다.

 

tmi : 고등어구이 투정 사건 이후에는 반찬 투정을 하지 않았다.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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