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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하남 May 08. 2022

요즘은 남자가 차별당한다니까?

능력 없는 여자가 만들어지는 일상의 차별

20대 남성이 분노하는 이유

현재 한국 사회 젠더 갈등의 특징은 그 중심축이 젊은 세대라는 점이다. 선거에서는 20대 남성이라는 군집이 주요 이슈를 장악하기도 했다. 온라인에서 여성 혐오를 주도하는 사람들이 20대 남성 모두를 대표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이 전반적으로 억울하다고 생각할 법한 조건은 있다. 


살아온 지난 인생 동안 남자라고 해서 딱히 더 대접을 받은 적이 없다. 조부모가 가끔 편애하는 것을 느꼈을 수는 있지만 자기 인생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딸들과 공평하게 의무교육을 받았고 대학에 진학했다. 여자 동기들이 4년 동안 스펙을 쌓고 졸업하는 동안 나는 군대 때문에 졸업 이후의 진로 자체가 2년이 늦어진다. 겨우겨우 졸업하고 취업하니 같은 나이 여자들은 이미 제법 돈도 모았거나 취미를 누리며 산다. 주변 혹은 미디어에 잘 나가는 여성도 많이 보인다. 나는 이제 겨우 시작인데 여자들은 자신들이 여전히 차별받는다며 날뛰고, 정부에서도 자꾸 여자들만 배려하는 정책들을 쏟아내니 짜증이 솟구친다. 취업난은 극심해지고 자리는 한정되어 있는데 오로지 여자라는 이유로 별도 지분을 보장받는 것은 불합리하다. 남자 여자 구분 없이 그냥 정해진 기준대로만 기회를 주었으면 좋겠다. 


남성이 역차별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20대 남성의 심리는 대충 위의 내용과 비슷하지 않을까 짐작한다. 실제로 딱히 틀린 내용이라고 보기 어렵다. 딸들이 학업을 포기하고 남동생을 뒷바라지하던 시대는 분명 끝났다. 여성 대통령도 배출되었고 변호사, 의사, 대기업 등 각종 잘 나가는 위치에 여성들도 많이 보인다. 단편적인 장면으로는 억울할 법도 하다. 하지만, 여성은 여전히 주류 영역에서 미약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여성에 대한 차별은 교묘한 방식으로, 혹은 뻔뻔한 방식으로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여성의 사회경제적 성공이 돋보이는 이유

객관적 자료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의도적으로 그것을 보지 않거나 믿지 않지만, 각종 통계는 여전히 여성들의 사회경제적 지분이 낮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기업체의 고위 임원 비율, 높은 평균 소득, 고소득 직종 비율 등 거의 모든 지표는 남성이 매우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거리에 나가면 왜 이렇게 길쭉길쭉한 남자들이 많은지 놀라지만, 그들은 소수이기 때문에 눈에 띌 뿐이다. 대한민국 남성의 평균 키는 내가 알기로는 여전히 175cm가 되지 않는다. 남들이 말하는 기준의 성공한 여성들이 많이 보이는 이유도 동일하다. 그들의 숫자가 여전히 적기 때문이다. 정작 다수를 차지하는 잘 나가는 남성은 보이지 않는다. 잘 나가는 남자는 너무 많아 특별하지 않기에 그들은 그냥 잘 나가는 '사람'으로 인식된다. 반면 성공한 여자는 희소한 존재이기에, 여전히 성공한 사람이 아니라 성공한 '여자'로 보인다. 그들이 보인다는 것 자체가 여성이 처해 있는 낮은 위치를 반증하는 것이다.


다만, 성공한 여성의 비중은 여전히 적음에도 불구하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그 절대적인 숫자는 점차 증가하긴 했다. 취업난은 점점 극심해지는데, 기존에 남자들이 차지해왔던 자리를 아주 조금 여성들이 차지한 것도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남성에게는 매우 크게 느껴지게 되고, 여전히 차별받고 있다고 외치는 여성들에게 분노하게 된다. 


고도성장을 이루며 남성들이 괜찮은 조건의 일자리를 찾기 어렵지 않았던 시대까지는 남성들이 다 함께 갑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성장이 끝나고, 경제는 끊임없이 위기가 반복되고, 정규직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남성들 상당수는 을이 되고 말았다. 그 와중에 여성의 목소리는 미약하나마 사회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고, 이 줄어든 파이의 일부를 이전에는 없었던 존재인 여성들이 조금 차지한 상황이다. 


만약 여전히 풍부한 경제 동력이 갖추어져 있고 청년층에게도 충분한 기회가 주어지고 있다면, 20대 남성들은 여성들에게 분노할 이유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중장년층 남성은 여성에 대해 별다른 악감정이 없어 보이는데, 이는 그들이 고도성장 시대의 과실을 통해 기득권을 확보하고 있고 남성을 훨씬 더 우대한 과거 사회의 혜택을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소작농이 잘 살지 못하는 이유는 옆 동네의 노비 출신 부농이 잘 살아서가 아니라, 지주와 탐관오리가 그를 착취하기 때문이다. 지주에겐 여전히 굽신거리면서 부농을 욕해봐야 변하는 건 없을 것이다. 여성들에게 분노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기회를 빼앗아간 근본적 원인은 여성의 지위 향상이 아니라 사회의 양극화와 기회의 소멸임을 인식하고 분노의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 여성들은 애초에 없었던 기회를 이제 겨우 만들어가고 있을 뿐이다. 


여성의 능력을 부족하게 만드는 직장 속 차별 

어떤 남성들은 또 항변한다. 여성들이 차별을 받았건 말건, 더 능력 있는 사람이 경쟁에서 이겨야 공정하며, 여성이라는 이유로 능력이 부족함에도 다른 기회를 받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것이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만한 대기업에서 남성 지원자들의 점수를 조작해서 올리고, 채용 정보 사이트에서 모든 조건이 같아도 남성을 더 선호한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오는 사례들을 보면 누가 목소리를 높여야 하는 것인지 싶지만, 뭐 일단 넘어가고, 실제로 여성의 능력이 부족한 상황을 가정해보자.


통계적으로 남성이 여성보다 일을 더 잘한다는 자료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직원을 뽑는 회사 임원들은 나름대로 경험한 근거가 있을 것이다. 이들이 생각하는 것은 대체로 야근을 시키거나 출장을 보내는 것이 편하고, 회사 직무에 대한 몰입도 및 충성도가 높으며, 육아를 이유로 갑자기 휴직할 확률이 낮다는 것, 아이 일로 갑자기 일정을 펑크낼 가능성이 낮다는 것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방식은 가사노동과 육아를 여성들이 전담하는 것을 전제한다. 이로 인해 여성은 취업을 시도할 때부터 불이익을 당한다. 면접에서 남자들은 업무와 연관된 질문을 받으며 자신의 능력을 어필하는 동안, 여성들은 육아와 회사 일을 병행할 수 있는지, 시부모는 어떻게 모실 것인지 따위의 질문을 받고 해명하기 급급해야 한다. 면접이 끝난 후 면접관들의 머릿속에 남을 수 있는 인상과 지원자들이 가지고 있는 콘텐츠를 인식하는데 큰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취업하더라도 회사일에 집중하지 못할 것이라는 편견에 시달리며 승진이나 각종 주요 업무에서 선택받지 못한다. 야근과 각종 프로젝트 참여를 통해 남성들이 열심히 실적을 쌓는 동안, 여성들은 중간에 육아휴직도 해야 하는 상황도 오고, 어려우면 퇴사 후 경력 단절도 겪게 된다. 이러한 상황들은 곧 경험과 실적, 이에 기반한 업무능력으로 연결되고 전반적으로 남성들이 앞서갈 수밖에 없는 구조가 형성되며, 고위 임원이나 주요 보직의 남성 편중 현상으로 연결된다. 


여성의 능력을 부족하게 만드는 가정 속 차별

우리 부부는 아기를 키우고 있다 보니 중고 물품 거래를 하는 일이 매우 잦다. 길어봐야 몇 달, 짧으면 한 달 이내로만 사용할 물건들을 모두 새 제품으로 구매하기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활용 시기가 지난 물건을 되팔기도 한다. 이러한 이유로 당근 마켓을 애용하고 있다. 


나는 지금까지(육아 9개월 차 기준) 육아용품 거래를 대충 20~30회가량은 한 것 같은데, 거래 당사자는 항상 엄마들이었다. 아빠들이 직접 물건을 마켓에 올려 팔거나 내가 파는 물건을 사는 것을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다. 아무런 설명이 없으면 내가 거래 장소에 나갔을 때  항상 여성이 서 있었고, 거래자가 남편이 대신 나올 거라고 따로 얘기한 경우에만 한두 번 남성을 만날 수 있었다. 


그나마 거래자는 구매하려 했는데 남편이 한 동네에 있는 내 집에 들르는 것도 귀찮아해 거래가 불발되는 경우도 몇 번 있었다. 이 경우의 남편들은 아내가 물건을 구매하러 가는 동안 아이를 돌볼 것이라는 기대도 할 수 없기에 이런 상황이 발생할 것이다. 당근 마켓 거래는 손이 굉장히 많이 가는 일이다. 적당한 가격에 물건을 사거나 팔기 위해서는 타이밍도 맞아야 하고 거래 상대와 시간도 맞춰야 하고 할 일이 많다. 그 일을 엄마들만 하고 있는 것이다. 


비단 이것뿐일까. 아이를 챙겨 어린이집에 보내고, 아프면 병원에 데려가고, 필요한 생필품들을 사는 것 모두 노동이다. 출근 전과 퇴근 후, 심지어 일하는 중간에도 부부 중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이걸 매우 높은 비중으로 거의 여성들이 하고 있다. 세대가 바뀌면서 육아에 적극적인 남편들도 많이 늘었다지만, 육아 과정에서 생기는 다양한 고민들을 생각하고 해결하는 책임은 여전히 아내들에게 주어져 있다. 아이와 관련해 갑자기 생기는 일에 누군가 시간을 내야 한다면 엄마가 가야 한다는 인식은 여전히 강하다. 여성들은 회사를 벗어나서도 퇴근하지 못하고 휴식을 제대로 취하지 못하며, 이는 업무 능력과 회사에 투자할 수 있는 시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반면 그 시간에 남자는 퇴근해서 쉬거나 야근 혹은 출장에 임하며 업무능력을 어필한다. 회식에도 비교적 자유롭게 참여해 사내 인맥을 늘린다. 특히 회식은 회사의 고위직들과 긴 시간 대화하며 자신을 알리는 소중한 기회로 활용될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 형성된 사적 관계가 알게 모르게 회사에서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부분이 발생한다. 가정의 일상에서 요구되는 노동과 고민이 일방적으로 여성에게 쏠려 있는 상황에서, 엄마들은 회식 참여도 쉽지 않기에 제도적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차별이 발생한다. 만약 지금 여성과 남성의 가정 내 역할 비중이 정반대로 바뀐다면 과연 남성들이 현재와 같은 업무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차별 철폐 정책 설정 방향에 대한 고민

여성 차별 철폐 정책은 이런저런 다양한 시도가 있었지만, 현재까지는 아무래도 선발 인원의 일정 비율을 할당하는 방식이 가장 보편적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여성들이 조직을 이끌거나 다른 어떤 보직을 맡더라도 조직의 유지 및 발전에 문제가 없음을 보여주는 증명을 위해 할 수 있는 시도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대 사회의 계층은 복합적이고, 저소득층 출신 남성이 받지 못하는 혜택을 중산층 이상의 여성이 누릴 수 있는 방식은 공감을 얻기 어려운 측면도 분명히 존재한다.


이제는 기계적 할당을 벗어나 차별이 초래될 수 있는 환경을 개혁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 생각해 볼 방법은 많다. 제도적으로는 우선 남성 육아휴직 의무화 방안이 있는데 이미 실시하고 있는 기업도 있다. 한발 더 나아가 육아휴직이 승진의 걸림돌이 아니라 오히려 필수코스로 자리 잡게 할 수도 있다. 육아휴직 기간에 따라 승진 가산점을 부여하는 것이다. 민간 기업체에 이를 독려하기 위해, 정부에서 주도하는 사업이나 물품 조달 기업 선정 시 남성 직원의 육아휴직 비율을 채점 기준에 넣는 방식도 적용할 수 있다. 그밖에 조직 내에서 성차별이 작동하는 비공식적 기제를 분석하여 이를 차단할 수 있는 방안을 제도화해야 한다. 예를 들어 면접 시 여성 지원자에게 육아와 회사 생활 병행에 대한 질문 등 성차별적인 내용을 제시하는 것을 법적으로 금지하고, 이를 준수하지 않을 경우 실효성 있는 제제가 이루어지도록 할 수 있다. 이런 것들을 고민할 때 전문가를 채용하고 유의미한 공청회를 여는데 세금을 써야 한다. 


사회적으로는 결국 가정에서 부부의 역할 비중을 공평하게 가져갈 수 있는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가야 한다. 이 부분은 아직 기득권을 놓지 못하고 있는 남성들의 자발적 변화 없이는 제대로 이루어지기 어렵다. 역사 속 굵직한 사회적 혁신의 과정에는 항상 과감하게 자신들의 기득권을 내려놓은 지배층 출신 개혁가들이 있었다. 남성은 법적 신분제가 폐지된 이후 마지막으로 남은 지배층이다. 이제는 남성 중에서 개혁가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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