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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하남 Mar 26. 2022

초식남과 여성 인격

사람은 섭취 대상이 아니다

제가 한 번 먹어보겠습니다

언젠가 SNL이란 프로그램에서 고정 크루인 신동엽이 이영돈 PD의 유행어를 패러디한 적이 있다. 그는 매력적인 여성을 앞에 두고 "제가 한번....."이라고 말했다.  이영돈 PD의 유행어는 "제가 한번 먹어보겠습니다."이다. 여성들조차 여성을 영양소 섭취 대상으로 표현하는 성인 유머에 크게 웃으며 환호성을 질렀다. 사람들은 모두 호들갑을 떨며 웃었고 아무런 논란도 없었다. 복잡한 여자관계를 자랑하는 남자들은 사석에서 친구들에게 여성을 섭취했다는 표현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사석에서 남자들의 음담패설을 들으면 질겁할 여성들도 막상 변태 개그의 1인자 신동엽이 같은 대사를 치면 유쾌하게 웃었다. 여성을 대상화하는 음담패설이 주류 유머에서 이런 방식으로 소비되는 것이 적절할까? 대중의 마음속을 솔직하게 드러냈다고 해서 그것이 모두 정당화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초식남 용어의 문제

잡설이 길었다. 언제부터인가 연애가 굉장히 피곤한 것이라는 인식이 생기면서, 초식남이라는 사용되고 있다. 규정하기 나름이지만, 초식남은 대체로 개인적 취미생활에 만족하며 여성을 만나 연애하는 것에 관심이 없는 남성을 지칭한다. 초식남으로 지칭되는 남성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대체로 온화하기에 해당 용어는 여성들도 큰 거부감 없이 사용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초식남이라는 단어는 본질적으로 여성을 동등한 인격으로 보지 않는 시선을 전제로 성립할 수 있다. 연애에 관심이 없는 생활이 초식이라면, 적극적으로 여성에게 구애를 해서 연애 내지 성적 접촉에 성공하는 것은 육식으로 표현된다. 이는 결국 여성을 먹는 고기로 인식하고 있는 것인데, 근본적으로 여성을 성욕 해소 도구로 대상화하는 것이기에 여성을 나무에 열린 과일과 같은 방식으로 채취하는 대상으로 여기는 맥락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굳이 초식이라는 표현이 남자에게만 존재하는 것도 성차별 현실을 반영한다. 남자는 여자를 섭취하는 게 표준이고 정상인데 초식남은 그렇게 하지 않는 특이한 녀석들이라고 규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여성이 연애에 관심이 없다고 해서 초식녀로 지칭되지는 않는다. 똑같이 연애에 관심이 없어도 남성은 뭔가 자기만의 세계가 있는 초식남이고, 여성은 뭔가 대인관계에 문제를 일으키는 인상을 주는 철벽녀라고 불린다. 그렇다고 여성이 연애에 관심이 많고 실제로 이성관계가 복잡하면 청소도구로 비하된다.


언어는 사고를 지배한다. 성차별 현실의 극복은 일상에서 차별적 용어를 발견하고 이를 비판하고 사용하지 않는 것부터 시작된다. 약자는 혐오의 대상이, 강자는 포장의 대상이 된다. 약자의 저항은 혐오표현을 거부하고 포장지를 벗겨 서로 대등한 입장에 서는 것에서 출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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