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판을 통해 보는, 여성에게만 가해지는 외모 차별 문제
한국에서만 벌어진 캡틴 마블 캐스팅 논란
최근 들어 조금 시들해진 것 같긴 하지만, 히어로를 다루는 마블 시리즈는 한국 시장에서 매우 인기가 높다. 요즘 나오는 영화에서 강력한 히어로 중 한 명은 캡틴 마블이라는 여성이다. 그런데 영화 제작 단계에서 주연 배우가 결정되자 적지 않은 한국 영화팬들은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주연으로 낙점된 브리 라슨의 외모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외모에 대한 선호도는 개인 취향이니 주연 배우의 얼굴과 매력에 대해 호불호가 있을 수는 있다. 문제는 그에게 가해진 각종 모욕이다. 이경실 닮은 애를 왜 쓰냐면서 에밀리 블런트를 캐스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내용의 댓글이 관련 기사의 최대 추천 댓글로 노출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에밀리 블런트는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계란형 얼굴을 지니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크게 히트한 <엣지 오브 투모로우>에서 전사 역할을 잘 소화하면서 인기가 높은 상황이었다. 이렇게 한국인들은 브리 라슨을 모욕했고, 이경실을 모욕했으며 이들을 닮은 사람들을 모욕했다. 에밀리 블런트도 단지 예쁘다는 이유로 더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는다는 것을 알았다면 배우로서 어떤 기분을 느꼈을까.
대놓고 외모를 평가하는 남성 권력
전사 또는 히어로 역할이라도 여성 주연 배우는 예뻐야 한다. 현실적으로 배우가 가진 티켓파워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고, 이왕이면 영화에서 매력적인 이성을 보고 싶어 하는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자기 기준에 비추어 예쁘지 않은 여성의 외모를 대놓고 품평하며 등급을 배기는 것은 전혀 다른 수준의 문제이다. 이 사람들의 댓글은 남자들끼리 모인 단톡방에서 같은 반 여학생, 같은 직장의 동료 여성의 외모를 품평하며 희롱하는 것과 차이가 없다. 있다면 그냥 유명인이냐 서로 아는 사람이냐의 수준에 불과하다.
외모에 대해 서로 다르게 적용되는 잣대
영화판에서 주연으로 활약하는 여성 배우는 거의 모두 미인이다. 심지어 예쁘지 않은 역할이라 하더라도 실제로는 예쁜 배우가 분장을 하거나 살을 찌우는 투혼을 발휘해야 한다. 반면 주연급 남자 배우는 그 카테고리가 다양하다. 미남이 아니어도 자기만의 특징이 있으면 경쟁력을 가질 수 있고, 잘생기지 않아도 주연이 될 수 있다. 나이를 먹어도 계속 찾아주니 유통기한도 길다. 부부나 커플로 나오는 조연들의 경우, 남자는 전혀 관리가 안된 아저씨인데 여성은 날씬한 미인인 경우도 많다. 하지만 반대로 미남이 신체적 매력이 낮은 여성과 맺어지거나 그러한 상태로 나오는 경우는 정말 찾기 어렵다.
영화판 이외의 미디어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전국노래자랑 진행자인 송해는 수십 년 간 통통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의 외모가 문제가 된 적은 한 번도 없다. 하지만 아나운서 이금희는 나이가 들면서 살이 쪘다는 이유로 왜 관리를 하지 않느냐는 압박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가족 오락관>을 수십 년간 허참이 이끄는 동안 여성 진행자는 계속 젊은 여성으로 교체되었다. 여성과 남성 아나운서가 함께 진행하는 뉴스도 다르지 않다. 남성 앵커는 일단 메인 뉴스 자리를 차지하면 본인의 의사로 물러나기 전까지는 자리를 유지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역시 여성 앵커는 항상 젊은 사람이다. 그리고 항상 예쁘다. 남성은 잘생기지 않고 나이를 먹어가도 자리가 있는데 여성은 예쁘지 않으면 아예 기회가 없고, 예쁘더라도 나이가 들면 자리가 사라진다.
살아가는 일상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예쁘지 않으면 이래저래 손해를 많이 본다. 한국은 성형 기술이 매우 발달했는데, 이는 그만큼 수요가 높다는 뜻이고, 실제로 조금이라도 자신의 외모에 손을 대는 여성의 비율은 한국이 압도적으로 높다. 한국 여성들이 다른 나라 여성들보다 타고난 외모에 만족하지 않도록 유전자가 설계된 것이 아니라면, 이는 결국 외모를 바꾸어야 한다는 사회적 압력이 훨씬 높게 작용하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적 영역의 선호도가 공적 영역까지 침범하는 것은 불공정하며, 여성에게만 그러한 압력이 나타나는 것은 차별적인 사회 구조의 결과이다. 남성들처럼 외모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사회경제적 지위를 확보할 수 있다면, 굳이 예쁜 여성들의 숫자가 잘생긴 남성들의 숫자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현상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못생겨도 괜찮은 세상
매력적인 외모의 이성을 선호하는 것은 본능이다. 하지만 나는 인간 문명이 지금 이 정도만큼이라도 민주주의를 이루어낸 원동력은 본능대로 살지 않고 더 많은 사람들이 서로 배려하고 공존하기 위해 노력해온 역사 덕분이라고 믿는다. 사적 영역에서는 상대의 모습을 함부로 평가하지 않는 교양을 갖추어야 하며, 공적 영역에서는 상대의 능력과 외모를 구분하여 인식할 줄 아는 안목을 갖추도록 노력해야 한다. 세상에 잘 생기고 예쁜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거리에서 그런 사람이 한 명 보이는 것은, 주변의 수십 명 수백 명이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너도 나도, 너의 자식과 나의 자식들도 어지간하면 남들 눈에는 그렇다. 적어도 외모 때문에 손해보지 않는 사회가 되어야 하는 이유로 충분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