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는 여성이 되는 사회
여장 남자 콘테스트의 추억
대학교에 입학하면, 신입생들은 학과의 전통이라는 명목 하에 온갖 이상한 미션을 요구받는다. 학생 식당 앞에서 분장을 하고 깜짝 공연을 펼치는 귀여운 장면도 있었지만, 지옥 주간이라면서 신입생들에게 종일 강제 운동을 시키는 장면을 보기도 했다. 내가 다닌 학과에서도 신입생들에게 다양한 이벤트를 강요했는데, 그중 하나가 MT자리에서 진행되는 여장 남자 콘테스트였다.
여학생 비율이 높은 사범대 특성상 이전까지는 대체로 모든 남자 신입생이 여장을 해야 했지만 그때는 예외였다. 내가 입학한 해에는 예외적으로 남학생들이 많이 들어와 시간 절약을 위해 가위바위보로 희생자를 뽑았기 때문이다. 운 좋게 나는 평생을 갈 이불 킥 장면 생산자 목록에서 빠지는 데 성공했지만 재수가 없었던 일부 동기들은 꼼짝없이 여자 옷을 입고 화장을 했다.
무대에서는 선배들을 즐겁게 해야 했기 때문에 온갖 교태를 부려야 했고, 맨 정신에 할 수 없었던 친구 한 명은 입장 전 맥주잔으로 소주 두 컵을 원샷했다. 선배들은 귀여운 후배들의 재롱을 보며 깔깔댔고 나는 그 장면을 뒤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는 안도감 속에 그 자리에서 웃으며 함께 즐기고 말았다.
강자는 남성화, 약자는 여성화되는 관습
이 행사는 대학에 한두해 먼저 들어온 순서 및 나이 서열을 활용한 전형적 갑질이기도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약자의 입장을 여성으로 묘사했다는 것이다. 자리에 앉아 구경한 선배 상당수가 여성이었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 신입생들의 재롱을 객석에 앉아 구경하는 권력을 누린 여학생 선배들은 그 순간은 여성이 아니라 남성이었다. 강자는 여성의 신체를 감상하는 남자로, 신체의 존엄성을 침해당한 약자는 여성으로 묘사된 것이 핵심이다. 다행히 이 행사는 다음 해에 악폐습으로 규정되어 사라지긴 했지만, 이는 선배의 후배에 대한 갑질이라는 문제제기였지 여성 인권 문제라는 것을 인식한 것은 아니었다.
이런 장면은 우리가 흔히 접하는 대중문화 콘텐츠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마크 윌버크 주연의 <론 서바이버>(2013)는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소재로 제작된 영화이다. 영화는 비밀 작전을 맡게 된 소규모 특수부대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초입부에 주인공을 중심으로 팀이 구성되는 모습이 묘사된다. 이 과정에서, 경력이 짧은 후임병이 선임들에게 인사드리는 과정에서 재롱을 부릴 것을 요구받는다. 이런저런 시도는 모두 퇴짜를 맞는다. 결국 후임병이 상의를 끌어올리며 복부를 드러내고 엉덩이를 강조하는 춤을 추자 비로소 선임들이 환호한다. 물론 이러한 장면이 들어 있다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고 앞으로도 매우 오랜 시간 그럴 것이다.
약자들이 여성이 되어 희롱당하는 장면은 너무나 흔한 것과 반대로, 대부분의 사회에서 여자들이 남장을 하고 남자 흉내를 내는 재롱잔치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여전히 남성이 사회에서 기득권층이자 지배 계급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강자는 함부로 흉내 내어 비하할 수 없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예전에 한 여성 수능 강사가 수업 중 군인 비하 발언으로 인해 큰 곤욕을 치렀고, 그녀는 장문의 사과문까지 게재했지만 결국 EBS 강의에서 해고되었다. 반면 한 유명한 남성 배우는 무대 행사 중 의자에 앉아있는 한 여성에게 남성 관객들을 위해 다리를 벌려 달라는 성희롱을 했지만 대충 소속사를 통해 밝힌 간단한 사과 한마디로 수습할 수 있었다. 이게 남성과 여성이 처한 현실의 차이다.
강한 남자, 약한 여자
언어는 지배층이 만든다. 사회의 기득권층인 남성은 남성성에 온갖 좋은 뜻을 꾹꾹 눌러 담았다. 남자답다는 말은 대체로 신체 능력이 강하고 사람들을 이끄는 리더십이 있으며 믿고 의지할 만하다는 뜻으로 쓰인다. 남자들 사이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는 의미도 있다. 반면 '여성'이라는 단어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단어들을 떠올려보자. 애초에 '여자답다'라는 말 자체가 쓰이지 않는다. 남자들은 힘과 통제에 기반한 질서에 적응하지 못하는 남성 출신 낙오자들에게 '여자 같다', '기집애같다'는 낙인을 붙인다. 군대의 수직적 질서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이 가장 먼저 듣는 평가이기도 하다. 이처럼 남자들의 사회에서 힘과 통제에 기반하는 질서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여성으로 비하된다.
강요된 남성성 추구가 초래하는 비극
남자들의 사회에서 자신이 남성성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게 되면 대인 관계 형성이 어려워진다. 이러한 사회적 고립이 극단화될 경우 이들은 무모한 선택을 하기도 하는데, 미국에서 잊을 만하면 벌어지는 총기 난사 사건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범인들은 대체로 남성들의 질서에서 인정받지 못한 경우가 많으며, 자신의 남성성을 인정받기 위해 범죄를 저지른다. 남성성을 확보하고 정글에서 알파 수컷의 자리를 확보한 남자들은 그러한 질서를 위협할 수 있는 무리한 선택을 하지 않는다.
총기 소지 금지에 대한 논쟁이 지속되고 있지만, 이는 근본적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남성성에서 낙오된 사람들 중 극단에 이르는 사람들은, 총이 없으면 칼로, 칼이 없으면 다른 무기로, 어떤 방식으로든 그러한 일을 벌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남자들 사이에 강요된 폭력적 남성 문화를 척결하는 것이다. 힘과 통제의 문화가 거의 없는 여성들은 총기 난사를 비롯한 각종 폭력 사건을 거의 일으키지 않는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개인을 억압하고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자율성과 상호존중이 남성 문화에 정착되어야 하며, 이는 성인 남성뿐만이 아닌 여성, 노인, 어린이, 외국인 등 모든 사회적 존재들에게 적용되어야 한다.
성별 카테고리에서 벗어나기
만약 여성이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사회였다면 남성성이 의미하는 바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대책 없이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하기, 강자 앞에서는 꼬리를 내리고 약자 앞에서 여포 노릇하기, 일단 저질러놓고 문제가 되면 발뺌하기 같은 것들이 아니었을까. 온갖 한심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에게는 남자 같다는 평가가 뒤따르지 않았을까.
애초에 긍정적인 의미를 특정 성별이 장악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어떤 사람이 고매한 인격과 뛰어난 능력을 갖추었다면, 그는 남자다운 것도 여자다운 것도 아니다. 그냥 훌륭한 사람인 것이다. 자주 말하지만, 언어는 사고를 지배한다. 남자다운 모습, 여자다운 모습보다는 사람다운 모습을 갖추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더불어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는 행동이 강자는 남성, 약자는 여성의 모습으로 형상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민감한 시선으로 점검하고 바꾸어 나가야 한다. 매우 피곤한 작업이지만, 세상은 그렇게 변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