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하남 Apr 28. 2022

여경을 대체 왜 뽑는 거야?

여경에 대한 남자의 시선

여경 이슈는 여성 혐오를 주도하는 이들의 좋은 먹잇감이 되는 소재다. 난동을 부리거나 흉기를 휘두르는 범죄자를 여경이 제대로 제압하지 못하는 상황이 뉴스에 보도되면, 유튜브의 사이버 렉카들은 신이 나서 여경을 월급 도둑으로 몰며 여경 무용론을 주장하는 영상을 올린다. 남자들은 댓글로 여경 별도 선발 제도의 불합리성을 비난하는 잔치를 벌인다. 여성과 남성 모두 같은 기준으로 통합 선발하고, 능력 있는 남성의 일자리를 빼앗지 말라고 한다.


이들의 주장은 언뜻 보면 타당해 보이기도 한다. 범죄자는 경찰이 여성이라고 힘을 조절해서 쓰지 않는데 기계적으로 여성에게 선발 기회를 할당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잊을 만하면 보도되는 여경 관련 사건 사고가 보도되면서, 여성들 입장에서도 여경 이슈는 쉽게 말할 수 없는 분위기이다.


남성 경찰들의 실책이나 범죄에 대한 뉴스도 나오지만, 이는 남자 경찰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폭력 시비를 회피한 여경 한 명의 모습은 여경 전체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지지만, 성폭력을 저지른 남경 한 명의 사례는 그냥 그것으로 끝난다. 만약 같은 기준으로 비판한다면, 성폭력 사건을 처리할 때 남경은 믿을 수 없으니 관련 업무 부서에는 모두 여경을 배치하라고 해야 균형이 맞는 것 아닌가? 공권력의 세계에서도 강자인 남자의 잘못은 개인화되고 약자인 여자의 잘못은 집단화된다.


경찰 선발 제도의 문제

여하튼 현재 일부 여경들이 보여주는 미숙한 모습은 분명 개선되어야 할 점이다. 하지만 그 원인은 여성 별도 선발이 아니라 경찰 선발 방식 자체의 문제이다. 객관식 필기시험으로 1차 시험을 합격해야만 면접과 체력테스트 응시 기회가 주어진다.


이 방식대로라면 경찰이 되고 싶은 응시생에게 신체 능력 향상은 뒷전이 될 수밖에 없다. 필기시험에서 합격하지 못하면 신체 능력은 선보일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몸은 적당히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을 정도로만 관리하고 1차 시험에 높은 비중을 둘 수밖에 없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니 2차 시험 응시생의 신체 능력이 범죄자를 압도하는 수준으로 성장하길 바라는 것은 어렵고, 이는 태생적 근력이 약하고 대련 경험이 적을 수밖에 없는 여경들에게 더 취약한 부분이 될 수밖에 없다. 신체 능력이 법 조항을 암기하는 것 이상으로 강조되고 1차 시험의 당락을 좌우할 수 있다면 응시생들은 그에 맞게 준비하는 방식을 바꾸거나, 혹은 그에 더 적합한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경찰을 지망할 것이다. 합격한 여경들이 보여주는 모습도 달라질 것이다.


체력 테스트의 현실적 문제는 이해가 가는 측면도 있다. 모든 응시생이 동일한 조건으로 한날한시에 실기를 치를 수 있는 공간 확보는 사실상 불가능하고, 예산도 훨씬 많이 소요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것인가. 전문가를 고용하고 연구 용역을 통해 좀 더 합리적인 기준으로 경찰을 선발할 수 있는 제도에 대한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당장은 그 비용이 비싸 보여도 장기적으로 더 직무에 적합한 사람들이 경찰이 될 수 있다면 사회 전반의 치안 향상으로 인한 이익이 그것을 상쇄하고도 남을 것이라 생각한다. 논의를 한발 더 발전시키자면, 아예 경찰 선발 자체를 분야 별로 별도로 실시하는 방식도 고민해 보면 어떨까 싶다. 경찰은 직무수행의 범위가 굉장히 넓다. 교통 통제, 범죄 수사 및 범죄자 체포, 민원 해결, 각종 시비 중재 등이 그 예시가 될 수 있는데, 요구되는 역량이 각 업무에 따라 매우 상이하다. 당장의 폭력 시비를 제압해야 하는 경찰과 경제사범을 추적해야 하는 경찰이 같은 기준으로 시험을 치는 것이 맞는 걸까.


여경이 필요한 이유

이렇게 이야기를 해도, 굳이 여성을 별도로 선발하지 않고 그냥 통합 선발하면 해결될 문제가 아니냐고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이러한 주장은, 경찰의 직무를 범죄자를 물리적으로 제압하는 것으로 한정해서 인식하는 것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경찰은 해야 하는 일이 많다. 힘이 세고 남을 때려눕힐 수 있다는 것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어둠의 세계에서나 찾을 수 있다.


여경은 필요하다. 경찰은 경찰서 밖에서 범죄자를 잡기도 하지만 시민들이 믿고 의지하는 존재이다. 우월한 신체 능력 이상으로 경찰은 약자의 어려움에 공감할 줄 아는 정서도 갖추고 있어야 하며, 그냥 그 자리에 있고 보이는 것만으로 안심할 수 있는 존재여야 한다. 최선을 다하고 약자를 보호하는 자세를 잘 갖추고 있는 남경들도 많이 있겠지만, 여경이 그 존재만으로도 시민에게 큰 도움이 되는 경우가 존재한다.


바로 남성에 의한 각종 물리적 폭력 및 성폭력에 노출된 여성 피해자들의 경우이다. 사실 여경 선발 문제를 주제로 글을 쓸지 고민을 많이 했다. 경찰의 직무에 대해 상세하게 잘 알고 있지도 못하고, 어찌 됐건 경찰로서 범죄자를 압도할 수 있는 신체적 능력을 갖추는 것의 중요성을 부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루는 내용의 깊이도 얕은 것 같고, 논리적 비약이나 허점도 파고들면 대답하기 어려울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이 글을 쓴 것은 이 부분을 말하기 위해서다.


내가 여성이고 성폭력 피해를 당한 직후 경찰에게 간신히 도움을 요청했다고 생각해보자. 그때 경찰 중 같은 여성이 있는지의 여부는 피해자의 안정에 큰 영향을 미친다.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한 상태에서 내 몸에 다친 곳은 없는지 누가 봐줄까. 성폭력 피해 진술을 해야 하는데 그건 또 어떻게 할까. 남자에게 강간을 당한 상황에서, 다시 남자들만 득실거리는 곳에서 수건 하나 간신히 걸치고 자신의 신체에 대한 피해를 또 다른 남성에게 진술해야 하는 상황은 너무 힘들지 않을까.


성매매 혹은 N번방 같은 성착취에 희생된 여학생에 대한 최초 상담 및 피해 사실 조사, 남편의 가정폭력 혹은 남자 친구의 데이트 폭력에 노출된 여성에 대한 보호 등 다른 장면도 많다. 이때 여경의 존재는 피해 여성들이 회복하고 안심하는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여성들이 자신이 당한 피해를 신고하고 보호를 받고 싶을 때, 언제든 여경을 만날 수 있다면 훨씬 든든하지 않을까.


비슷한 관점에서 여군 장교의 존재 역시 중요하다. 실제로 전쟁이 발발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지금과 달리 군인과 민간인들이 접촉하는 상황이 다수 발생하게 되고, 병사들이 민간인의 집에 방문하거나 머무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민간인은 자국 시민일 수도 있고 적국 시민일 수도 있다. 총을 든 남자들이 득실거리는 상황에서, 그들을 통제할 수 있는 여군 장교의 존재는 민간인 여성들에게 매우 중요하다. 유의미한 지휘권을 가진 여성 장교가 충분히 배치된다면, 군대 내의 여성을 대상화하는 그릇된 성문화를 견제하고 전시 성범죄의 발생 가능성을 매우 낮출 수 있을 것이다.


경찰과 군대는 팔 굽혀 펴기와 윗몸일으키기를 더 잘하는 남자들의 취업처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시민의 안녕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공권력이다. 직접적 무력을 제공하는 남성들의 역할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여성만이 할 수 있는, 혹은 더 잘할 수 있는 영역이 존재하며 그 수요를 선발에 반영하는 것은 사회 안정과 치안 유지 목표에 부합한다. 이제는 여경 무용론은 졸업하고, 여경이 더 효과적으로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제도적, 사회적 합의를 찾아가는 방향으로 논의를 확장해야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