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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하남 Apr 16. 2022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연기 투혼, 진심일까요

영화 <내부자들>에 나타난, 미디어가 여성을 소비하는 방식

영화 속 난교 파티에 대한 단상

영화 <내부자들>은 기득권층의 추악한 이면을 드러낸 명작으로 인기가 높다. 나도 매우 재밌게 보았다. 영화에서는 협잡꾼들이 친목을 다지는 모습을 난교 파티로 묘사했다. 남성들은 헐벗은 채 술을 마시며 동원된 여성 접대부들의 '서비스'를 받는 장면이 적나라하게 연출되었다. 해당 장면에 출연한 여성 배우 이엘은 과감한 노출을 감수하는 '연기 투혼'을 발휘했다. 실제 현실에서도 그러하거나, 아니면 더 심한 모습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찝찝했다. 난교 파티 장면을 보면서, 기득권층의 저열한 모습에 혀를 차기보다는 여성 연기자들의 신체를 감상하기 바쁜 내 시선을 느꼈기 때문이다. 굳이 여성들의 신체 주요 부위를 드러내고 성행위 장면을 디테일하게 묘사하지 않았다고 해도 감독이 목표로 하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불가능했을 것 같지도 않다. 영화의 전체적 완성도를 보았을 때, 감독의 역량은 섹스 코드를 넣지 않아도 충분히 같은 수준의 영화를 완성하는 게 가능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장면은 굳이 촬영되었다. 상대적으로 배우로서 입지가 취약하던 이엘과, 함께 출연한 배우들은 눈요깃거리로 소비된 것이다. 이들이 가슴을 드러내야 한다는 요구가 없었어도 굳이 자청해서 신체를 노출했을까? 술자리 장면이 필요했다면, 그냥 입을 건 다 입고 옆에 앉아있는 정도로 충분하지 않았을까. 출연했던 배우들은 이 장면을 보면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을까. 사회의 모순을 드러낸다면서 무명 여성 배우라는 약자는 소모품이 되었다. 그나마 이엘은 영화 속에서조차 해피엔딩을 맞이하지 못했다. 그는 살해당하며 남자들의 멋진 결말에 함께 서지 못하고 들러리 역할로만 끝이 났다.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권위와 폭력으로 후배들을 통제하고, 조직 내에서 발생한 성폭력을 대의의 이름으로 숨겼으며, 똑같이 고생하면서도 위원장 같은 감투 및 그에 따르는 잿밥들은 남자들만 차지했던 학생 운동의 이면이 생각난다면 지나친 걸까.


미디어는 현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

그 수위나 표현 방식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다른 콘텐츠에서도 여성이 그저 남성의 장식물 역할을 하는 장면은 자주 접할 수 있다. 조선 초기 배경의 드라마 <나의 나라>에는, 남선호(우도환 분)가 한희재(설현 분)로부터 실연을 당한 후 슬픔을 달래며 술을 마시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그 옆에 기생 두 명이 술시중을 들며 그를 위로한다. 여성에게 거절당한 아픔을 왜 다른 여성이 어루만져 주어야 할까. 연출자는 전근대 사회에서 남자가 밖에서 술을 마시면 기생을 끼고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일까.


다른 사극에서도 연회 장면에서는 대체로 기생이나 궁녀의 시중 장면을 접할 수 있으며, 현대극에서는 권력자가 룸을 잡고 술을 마실 때 항상 접대부가 비치되어 있다. 물론 현실이다. 하지만 미디어는 그것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하고 변화된 모습을 보여야 한다. 기생들을 불렀어도 부르지 않은 술자리로 바꾸고, 난교파티를 했어도 여성들의 신체를 소비하지 않는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주연 배우의 무게감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그만큼 주목받지 못하고 코미디라는 장르에 그 메시지가 가려지고 말았지만, 영화 <정직한 후보>에서 거짓된 정치인들을 연기한 라미란과 배우들이 즐겁게 음주가무를 즐기는 장면이 훨씬 바람직한 방식으로 현실을 비판했다고 생각한다. 콘텐츠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드러내고자 한다면, 콘텐츠의 표현 방식에 대한 세심한 검토를 통해 소외되거나 함부로 다루어지는 약자는 없는지 성찰하는 과정이 동반되어야 한다.


유튜브와 각종 1인 미디어의 성장으로 매스 미디어는 점점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 보지도 않는데 TV 수신료를 왜 내야 하냐는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매스 미디어가 살아남으려면 그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역시 제대로 조직된 전문가 집단이 만드는 콘텐츠는 다르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나는 그것이 품위를 지키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며, 사회의 발전을 선도하는 콘텐츠를 제작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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