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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하남 May 05. 2022

성폭력, 피해자가 죽어야 하는 사회

진주논개제를 보며 생각한다

의로운 기생 논개에 대한 생각

매년 5월 초순 진주에서는 논개의 충절을 기념하는 축제를 개최한다. 임진왜란 당시 적의 장수를 끌어안고 뛰어내렸다는 논개의 전설을 활용한, 전형적인 역사 마케팅이다. 그런데, 사실 논개의 실체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으며 논개라는 기생이 실제로 있었는지, 있었다면 실제로 그러한 일을 했는지는 역사적 근거가 명확하지 않고, 신분이나 가족 관계도 불명확하며 이설이 많다.


개인적으로 민간에서 논개 전설이 구전된 것은, <박씨전>, <임경업전>에서 청과의 전쟁을 승리로 묘사한 정신 승리와 유사한 맥락으로 생각한다. 지역민, 정확히는 진주의 기득권 양반들이 논개의 공적을 인정받기 위해 노력한 것은 사실이나, 이는 중앙정부에게 혜택을 받기 위한 지역 이익 추구 행위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거주 지역에 이름 있는 열녀가 배출되면 이런저런 혜택이 많이 제공되었기 때문이다.


어찌 됐건 논개의 행적은 백성들 사이에 구전되다가 유몽인의 <어우야담>에 기록되면서 본격적으로 주목받고, 조선인들은 이를 역사적 사실로 여기기는 했다. 진주 지역민들은 지속적 노력 끝에 중앙정부로부터 의로움을 기리는 각종 기념물을 세울 수 있도록 허락받으면서 논개의 충절을 공식적 역사로 인정받았다.


논개는 여성을 숭앙한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할 수 있고,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니 축제까지 열리고 있다. 그러나 논개 우상화는 백성들을 지켜주지 못한 지배층의 무능을 감추는데 여성에 대한 정절 관념을 이용한 것이다. 조선의 여성들은 왜란 당시 약탈과 더불어 끔찍한 전시 성범죄에 노출되었다. 실제로 논개와 같은 선택을 한 여성들도 있었겠지만, 목숨은 쉽게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논개를 정부 차원에서 띄워준다는 것은, 반대로 성폭력을 당하고도 목숨을 부지한 여성에게는 어떻게 대했을 것인지를 고민하게 한다.


환향녀, 강간당하고 살아남은 게 죄

고민한 지점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사례는 환향녀이다.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환향녀는 호란 때 포로로 끌려갔다 돌아온 여성들을 일컫는다. (어원에 대한 논쟁은 있는 것으로 알지만, 일단은 이 용어가 익숙하기에 그대로 사용한다.) 전란의 희생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감히 더럽힌 몸을 부지한 죄로 사회에서 버려졌다. 정부 차원에서 그들을 구제하려는 노력은 없지 않았으나, 정부의 시책과 남성 사대부들의 실제 행동은 별개였다. 부인들은 갖은 명목으로 이혼당하고 처녀들은 쫓겨나거나 자결을 강요당했다.


이 역시 정책과 국방 실패를 자초한 남성 사대부들이 자신들의 무능을 가리기 위해 여성의 정조 관념을 이용했다는 점에서 논개의 사례와 본질적으로 같은 맥락에 서 있다. 논개는 죽음으로써 사회에서 살아남았고, 환향녀들은 살아남으로써 사회에서 죽고 말았다.


여전히 여성들을 억압하는 논개 신화와 환향녀 포비아

논개와 환향녀의 사례가 당대 여성들에게 시사하는 바는 명확했다. 강간당할 위기에 처했으면, 확실하게 벗어나거나, 벗어나지 못했으면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사회의 압력은 현대 한국 사회에도 여전히 남아 성폭력 피해 여성들을 막다른 길로 내몰고 있다.


여성가족부의 2019년 국가지표체계 자료에 따르면, 2019년 총 27만 6122건의 성폭력 상담이 이루어졌으나, 2018년 한 해 검찰에 고소된 성폭력은 3만 2104건에 불과하다. 상담조차 하지 않은 성폭력 사례는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여성들이 성폭력, 특히 강간 피해 사실을 밝히고 신고하지 못하는 이유는 복합적이지만, 일단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신고하더라도 피해 사실을 인정받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 그리고 피해 사실을 인정받더라도 강간을 당해 더럽혀진 몸이라는 인식 속에서 주변으로부터 배척당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다. (전자에 대해서는 다른 글(<피해자 다움, 죽어야 인정받는 성폭력>)에서 다루었으니 참조하기 바란다.)


강간당하지 않은 깨끗한 몸에 대한 신화는 여전히 우리 사회에 진하게 스며들어 있다. 당신이 만약 결혼 적령기 아들을 둔 부모라고 생각해보자. 아들이 결혼할 사람이라며 추석 때 데려온 여성이 알고 보니 강간 피해 경력이 있다면, 전혀 거부감을 느끼지 않고 그대로 며느리로 인정할 자신이 있는지 말이다.


현재 한국 사회의 전반적 분위기에서, 강간 피해 사실을 시부모가 알게 됐을 때 과연 보듬어줄 확률이 높을지, 아니면 왜 하필 많고 많은 여자들 중에 네가 우리 집안에 들어왔냐고 비난을 들을지 떠올려 보라. 결혼 시점뿐만 아니라 사회의 온갖 영역에서도 자신이 강간 피해자라는 게 주변에 알려지면, 그는 절대 그 이전과 같은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강간 피해자에게 피해 사실 촬영을 통한 협박과 피해의 장기 지속이 초래되고 마는 것은, 강간 피해자를 기피하는 사회 구성원이 그 책임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논개가 죽고 환향녀들이 돌아온 지 400년이 넘게 흘렀음에도, 강간 피해를 당한 여성은 죽어버리지 않으면 존재 의미를 잃게 만드는 사회의 본질은 아직 변하지 않았다.


진주논개제, 그리고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

논개라는 여성이 정말 존재했고 그러한 행위를 했다면, 기본적으로 그는 전란이라는 불운을 만나 죽음을 당한 희생자이다. 나는 논개로부터 배워야 할 것은 개인적인 애국 행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가 그러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을 찾아 반성하고, 다시는 그러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사회를 개혁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논개의 사례에서 바뀌어야 하는 것은 두 가지이다. 적장이 우리 영토를 점령했던 것, 그리고 강간을 피할 수 없을 때 목숨을 버리는 선택을 하게 만든, 논개를 세뇌시킨 정절 관념이다. 지금과 같이 논개의 행위를 찬양하는 사고방식으로는 튼튼한 국방과 여성의 안전을 확보할 수 없다. 전시 성범죄 피해자를 잘 죽었다고 찬양하는 사회는 성폭력에 노출된 여성들을 보호하기 어렵다. 이러한 일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적장이 우리 영토에 깃발을 꽂지 못하도록 국방을 철저히 하는 것과 더불어, 여성들이 강간 피해를 당해도 그 사람의 가치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뿌리내려야 한다,


진주논개제는 논개를 우상화하는 것에서 벗어나, 용감히 싸운 군인들을 위로하고, 전시 학살 및 성범죄에 희생된 약자들을 위로하는 행사로 성격을 변화시켜 나가야 한다. 현재의 논개 찬양을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공유해온 사회, 그리고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우리의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인간의 몸은 어떤 행위로도 결코 더럽힐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일상에서 실천하고, 알리고, 성찰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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