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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하남 Apr 10. 2022

성폭력 뉴스, 쓰는 목적이 뭔가요?

관음증에 기반한 클릭 장사에 매몰된 미디어의 성폭력 보도

남성 중심 구조의 미디어 환경

미디어는 사회의 남성 중심적 구조를 매우 잘 보여주는 영역이다. 뉴스부터 예능까지 방송 콘텐츠에서 남성은 정치나 거시경제 등 공적 영역에서 주로 등장하며, 여성은 건강이나 일상생활 분야 위주로 등장한다. 심지어 가장 대표적으로 여성의 영역이라 간주되는 요리조차 전문성이 강조되는 수준에서는 남성들이 장악하고 있다. 


15분 안에 주어진 재료만으로 고급 요리를 완성시키는 미션 대결을 주제로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냉장고를 부탁해>에 출연한 요리사 중 여성은 한 명도 없다. 광고에서 여성의 신체는 그것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제품을 광고하는 양념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가슴을 부각한 의상을 입은 여성이 새로 출시된 스마트폰을 웃으며 들고 있는 장면은 익숙하다. 일단 여성의 신체적 매력을 통해 눈길을 끄는, 오래되었지만 매우 효과적인 마케팅 기법이다. 유튜버들이 동영상 클릭을 유도하기 위해 섬네일에 많이 활용하기도 한다. 


성폭력을 가십으로 소비하는 언론

수많은 비판을 받더라도, 이익을 추구하는 미디어 생태계에서 이러한 모습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사회의 문제를 다루고 그 상태를 개선하는데 기여해야 하는 언론조차 그러한 유혹에 빠져들어 있다는 것이다. 일부 꼰대 연예인들의 구시대적이고 성차별적인 발언을 옮기는 연예뉴스는 그렇다 치더라도, 여성이 피해자인 성폭력 뉴스조차 같은 방식으로 소비되고 있다. 다음의 뉴스 기사를 보자. 


14년간 친딸 3명 성폭행한 父, 법원 판결은.. 태형은 면제(2021.3.10., 한국일보)
무려 14년간 자신의 친딸 3명 모두를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싱가포르 남성이 징역 33년 형을 선고받았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태형은 면제됐다. 딸들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10일 스트레이츠 타임스에 따르면 싱가포르 법원은 2005년부터 2019년까지 친딸 세 명을 성폭행한 청소노동자 A(55)씨에게 9일 징역 33년 형을 선고했다.
법원은 "세 딸 모두에게 심각한 신체적, 정신적 피해를 입혔으며 아버지에 대한 신뢰를 심각하게 침해했다"라고 밝혔다. 판결문에 의하면 A 씨는 음란물을 본 후 2005년 당시 11세이던 장녀를 성폭행하기 시작했다. 성폭행은 장녀가 16, 17세가 될 때까지 지속됐다. 이어 이 무렵 12세가 된 둘째 딸을 성폭행했다. 둘째 딸에 대한 성폭행은 일주일에 몇 번씩 9년간 이어졌다. 마지막 성폭행은 2019년 10월 밤 A 씨 아내가 거실에서 자고 있는 동안 부엌에서 이뤄졌다. 장녀와 차녀는 아버지의 협박 때문에 아무에게도 성폭행 사실을 알리지 못했다.
A 씨의 추악한 범행은 막내딸의 신고로 세상에 드러났다. 2019년 10월 22일 당시 12세이던 막내딸은 아버지의 성관계 강요를 눈물로 저항했다. 막내딸은 이전에도 성추행을 당했고 아버지가 둘째 언니를 성폭행하던 장면을 목격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날 막내딸은 학교 친구와 담임교사에게 알렸고 학교 신고를 받은 경찰이 A를 붙잡아 조사하면서 혐의를 밝혀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과 우울증 진단을 받은 A 씨의 세 딸은 현재 치료를 받고 있다. A 씨는 소아성애 장애 진단을 받았으며 재범 위험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A 씨는 9일 법정에서 성폭행 혐의를 인정했다. 검찰은 최소 35년 4개월의 징역형을 구형했다. 그러나 성폭행에 함께 부과되는 태형은 면제됐다. 태형 처벌 대상 연령 기준이 18~50세인데, A 씨의 나이가 현재 55세이기 때문이다. 싱가포르는 성폭행 등 40개 중범죄를 저지른 남성에 대해 3~24대의 태형을 반드시 적용하고 있다. 


기사의 묘사 수준은 포르노와 다르지 않으며, 피해자의 정보는 지나치게 상세하게 나열되어 있는 반면, 가해자에 대한 정보는 간략하게 적혀 있다. 성폭력 묘사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우리가 피해자들이 어떤 상황에서 강간을 당했는지 이렇게 구체적으로 읽을 필요가 있을까. 피해자 여성들은 자신들의 피해 사실이 이렇게 전 세계의 불특정 다수에게 적나라하게 알려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어떤 생각이 들까. 사건이 보도되는 것에 동의하는 절차는 있었을까. 


이 기사를 쓴 기자는 어떤 목적으로 이 사건을 보도했을까. 끔찍한 성폭력 사건에 진심으로 분노하여, 이런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길 바라며 이후 후속적인 심층보도를 하고 있을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이 사건은 그저 대중의 관음증에 기대어 클릭을 유도하는 미끼로 소비되고 말았다. 기사의 상세한 개인정보 나열로 인해, 피해자 주변 사람들은 대체로 이 사건의 피해자가 누구인지 파악하기 쉬워졌다는 점에서 2차 가해 우려까지 크다. 그렇다고 특별히 성폭력 발생 원인이나 재발 방지에 대한 탐색 노력이 보이지도 않는다.


수익을 원하는 언론사와 자극적 소재에만 반응하는 대중들

인용된 기사는 해외 사건이지만, 국내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을 다루는 뉴스가 소비되는 방식도 다르지 않다. 기자가 수위가 높은 성폭력 사건을 알게 되면, 그 내용을 상세히 기록하여 기사를 내보낸다. 자극적 헤드라인은 필수다. 호기심에 클릭한 대중들은 가해자를 욕하며 성폭력의 발생 원인을 개인의 인격 탓으로만 돌리는 댓글을 작성한다. 언론사는 기사의 파급력을 보고 판이 좀 커진다 싶으면 후속보도로 가해자 추적 및 심판 현황을 중계한다. 별 반응이 없으면 접고 또 다른 자극적인 사건을 찾아 떠난다. 사건이 유명해지든 그렇지 않든, 성폭력의 근본적인 해결 방안을 논하는 기사, 혹은 피해 여성의 입장을 대변하는 후속 기사는 거의 생산되지 않는다. 


기자들이 처음부터 이런 식의 메뚜기식 사건 사냥에 나선 것은 아닐 것이다. 그들도 처음에는 저널리즘의 실천을 꿈꾸며, 사회의 부조리를 파헤치고 정의 실현에 기여하는 이상을 꿈꾸었을 것이다. 하지만, 언론사도 결국 사람이 먹고사는 직장이다. 어느 순간부터 높은 클릭수를 유도해 회사에 수익을 벌어다 줘야 하는 압박감에 시달린다. 쌈박한 사건을 물어가지 못하면 상사의 압박이 들어오고, 물어가면 물어 가는 대로 다음 실적에 대한 기대로 압박을 받는다. 여기서 실적이란, 해당 사건에 대한 심층보도가 아니라 비슷한 임팩트의 또 다른 사건을 물어오는 것이다. 


성폭력은 인간의 말초 신경을 자극하는 최고의 소재다. 성폭력 가해자를 욕하는 대중들도 결국은 그 짜릿한 쾌감을 이기지 못하고 낚시 제목을 클릭하고서는, 성폭력 가해자를 제대로 응징하기 위해 여론을 조성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은 양 정의감에 취한다. 성폭력 사건에 대한 분석이나 재발 방지 방안 등의 후속 기사에도 대중들이 같은 수준의 관심을 보여주고 클릭을 하고 댓글을 달아주었다면 언론사는 그러한 기사를 생산할 것이다. 하지만 대중들은 해결에는 관심이 없고 자극적 묘사에만 반응하니 수익이 필요한 언론사는 그에 맞게 한정된 인력을 새 사건 탐색 위주로 배정하는 것이다. 


성폭력 뉴스, 어떻게 쓸 것인가

앞서 인용한 성폭력 뉴스로 다시 돌아가자. 같은 소재의 사건을 가지고, 어떤 내용은 덜고 어떤 내용은 더 심도 있게 다뤄야 할까. 일단 성폭행에 대한 설명은 최대한 간단히 해야 한다. 한 남성이 14년 간 친딸들을 강간했다는 것 이상을 서술할 필요가 없다.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몇 번이나 피해 사실이 발생했는지 독자들이 아는 것은, 그 장면을 상상하는 것을 구체화하는 것 말고는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피해 사실의 구체적 수치와 수위를 알아야 하는 곳은 가해자에 대한 처분을 내려야 할 법원뿐이다.


그럼 어떤 내용을 더해야 할까. 내가 기사를 쓴다면, 우선 학교 친구나 담임 선생님이 사건을 알게 된 맥락을 자세히 다룰 것이다. 다른 성폭력 피해자들이 어떻게 주변에 피해 사실을 알리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실례를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가해자가 시청한 음란물의 내용을 취재한 내용을 분석하여 보도할 것이다. 음란물을 본 후 범행이 시작되었다면, 음란물은 가해자의 성욕을 충분히 해소시켜주기는 커녕 오히려 범죄를 부추겼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영상의 소재와 등장인물, 전개 방식 등이 검토되어야 하며, 무차별적으로 금기를 묘사하고 왜곡된 성관념을 드러내는 음란물이 계속 합법적으로 생산되는 것이 적절한 것인지 문제를 제기할 것이다. 후유증으로 고통받고 있는 성폭력 피해자들의 사례를 탐구하여 성폭력 범죄의 심각성을 일깨우는 심층보도를 할 수도 있겠다. 기사를 쓸 때, 몇 가지 가이드라인의 설정도 필요하다. 다음의 내용은 내가 생각해 본 항목들이다. 비전문가의 입장이기에 허황되거나 현실에 맞지 않을 수 있다.


1) 강력 범죄 사건을 보도하는 경우, 장소 혹은 행위에 대한 묘사는 최소화한다.

2) 범죄 피해자에게 범죄 유발 요인이 있었다는 뉘앙스는 없는지 점검한다.

3) 가해자가 범죄를 저지른 동기를 설명하는 것은 자제한다.

4) 범죄 사건을 보도하는 경우, 사전에 피해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5) 범죄 사실 전달에 그치기보다, 예방책이나 사회체제 개선에 대한 지향을 담도록 노력한다.


2번과 3번 항목에서 다룬 내용의 경우 이 글에서 다룬 기사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각종 폭력 사건을 다룬 뉴스에서 가해자가 피해자의 잘못을 빌미로 범죄를 저질렀다는 내용이 제목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아 기입하였다. 


저널리즘 실현을 위한 사회적 합의의 필요성

언론사는 메뚜기식 보도행태에 대한 자정노력을 해야 한다. 경찰서 출입과 인맥, 외신기사 번역에 의존하는 기사 생산을 지양하고 정말 사회를 보다 정의롭게 만들기 위한 진심이 담긴 뉴스를 담아야 한다. 그리고 앞서 말했지만 성폭력을 비롯한, 가부장적 권위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각종 범죄에 대한 보도 행태가 이렇게 저렴해진 것은 대중의 뉴스 소비 행태에도 큰 책임이 있다. 뉴스의 소비자도 미디어 리터러시 능력을 갖추고 진짜 사회 정의 실현에 도움이 되는 기사를 위주로 소비해야 한다. 제목만 봐도 감이 오는 황색 기사는 넘기고, 책임감을 가지고 기사를 생산하는 언론사를 찾아 구독료를 내야 한다. 저널리즘을 제대로 실천해도 언론사가 밥을 먹고 생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노력 없이 클릭 후 기레기라고 욕만 하는 것은 노력 없이 도덕적 우월감을 지키려는 욕망의 시각화일 뿐이다. 기자들을 기레기로 만든 것은 대중들이다. 야설은 그만 찾고 진짜 기사를 찾아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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