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실 cctv 설치 이슈로 보는 성폭력 문제
남자 의사들의 잇따른 성범죄와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2021년 8월, 국회에서는 수술실 내 cctv 설치 의무화 법안을 통과시켰다. 세계 최초다. 2년의 유예 기간을 설정했고 응급 수술 등 몇 가지 예외 조항을 두긴 했지만, 여러 변수를 맞이하는 수술실에서 자신을 감시하는 눈길을 의식해야 하는 의사들의 입장이 유쾌할 리 없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이런 식으로 전문가의 영역을 충분한 고민 없이 침해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법안이 결국 통과된 원동력은, 여러 사유가 있지만 일부 의사들이 여성 환자를 대상으로 성폭력을 저지른 사례가 쌓인 탓이 크다.
사람들은 관련 뉴스가 전해질 때마다 남자 의사들을 욕하며 변태 집단으로 호도했으며, 수술실에 당장 cctv를 설치해야 한다고 성토했다. 물론 범죄를 저지른 당사자들은 어떤 비난을 들어도 할 말이 없다. 그런데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남자 의사들은 유별나게 성적으로 타락했고, 다른 직업을 가진 남성들과 뭔가 다른 성적 판타지를 가지고 사는 걸까?
다른 직업군의 남자들은 과연 다를까
다른 사람의 의사를 무시하고 성욕을 채우고 싶은 성향을 가진 남성들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공부를 잘하는 두뇌를 타고나도록 DNA가 설계되진 않았을 것이다. 소아과에서 우리 부부의 귀여운 쌍둥이를 정말 친절하게 살펴봐 주시는 의사 선생님들만 봐도 의사라는 직업이 성적 타락에 특별히 더 영향을 미치진 않는 것 같다. 그럼 무언가 의사들만 겪게 되는 다른 상황이 있다고 봐야 한다. 그 상황은, 의사들이 무방비 상태의 여성을 은밀한 공간에서 만날 수 있는 상황을 다른 직업에 비해 많이 맞이하는 것이다. 과연 다른 직업을 가진 남자들은 동일한 상황을 같은 수준으로 겪을 때, 의사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비율보다 낮은 수치를 보여줄까? 아마 별 차이가 없을 것이다.
클럽에서 여성을 술이나 약에 취하게 해서 모텔로 데려가는 것이나 마취 상태인 여성의 신체를 탐하는 것은 다르지 않다. N번방은 또 어땠는가. 이 추잡한 모임에 참여한 남자들의 직군은 다양했다. 교사들도 있었다. 교대 남학생들이 단톡방을 만들어 동기 여성들의 외모를 품평하며 성희롱을 일삼다 적발된 사건도 있었다. 화장실 불법 카메라가 적발됐다는 뉴스는 심심하면 나온다. 학교 화장실에 설치된 불법 카메라의 범인을 잡고 보니 그 학교의 교장인 적도 있었다. 이들이 과연 폐쇄된 공간에서 무방비 상태의 여성을 대할 때 다른 모습을 보였을까? 수술실에서의 성폭력은 남자 의사들이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그냥 남자들이 저지르는 것이다.
성폭력의 근원 : 여성에 대한 대상화를 은밀히 지속하는 남성 문화
예전에 비해서는 성폭력을 대하는 사회적 인식 수준이 어느 정도 발전했기 때문에, 남자들은 최소한 공적인 영역에서는 여성을 대등한 인격으로 대하는 척 가면이라도 착용한다. (물론 그조차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도 여전히 많다.) 하지만 남자들끼리 모인 사석, 혹은 익명의 인터넷 공간에서는 여지없이 여성에 대한 희롱과 모욕적인 언사들이 넘쳐난다. 이에 반대하며 여성에 대한 존중을 요구하면, 혼자 깨끗한 척하면서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든다며 핀잔을 듣는다.
남성들만의 공간은 여전히 여성은 성욕을 채우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여성을 존중하지 않는 온갖 사회적 금기를 담은 포르노로 자극받고, 서로 음란물을 공유하며 주변 여성들의 신체 사이즈를 평가한다. 남자들은 이러한 문화적 환경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직업과 관계없이 남자들 중 일부는 여성에 대한 존중 의식을 완전히 망각하고 성욕을 채우기 위한 도구로만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특정 직업군을 악마화하는 방식으로는 성폭력을 근절할 수 없다. 근본적으로 남성 문화를 수술해야 한다.
더디지만 나아가야 할 성폭력 근절의 길
우리 부부가 키우는 쌍둥이 중 첫째는 남자 아이다. 정말 귀엽고 잘생겼고 순수하다. 성폭력을 저지르는 남자들도 어릴 때는 그랬을 것이다. 이 땅의 순수한 남아들이 타락하지 않으려면, 근본적으로 여성을 대상화하고 여성을 존중하지 않는 방식으로 성욕과 판타지를 채우려는 욕구가 사회에서 제어되어야 한다. 성폭력의 본질을 확실하게 인식시키고, 그것이 여성의 삶을, 이 사회를 어떻게 파괴하는지 알게 해야 한다. 변화는 비정상적 욕구를 자극하는 환경을 제거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몇 가지 구체적인 방안을 생각해 보았다. 비전문가 입장이기에 허황될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하길 바란다.
우선, 이미 퍼질 대로 퍼져 버렸지만, 지금이라도 금기를 다루는 포르노는 제작 및 유통이 제한될 필요가 있다. 강간 및 성관념을 왜곡한 소재는 제작이 금지되어야 한다. 최소한 강간으로 성욕을 채우는 방식이 자극적으로 묘사되는 것이라도 제한해야 한다. 표현의 자유는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을 때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영상에 출연한 배우가 동의한 내용인데 왜 제한하느냐고 반박할 수 있다. 하지만 보편적 인권에 기초한 사회적 합의를 깰 수 있는 창작물은 제한을 받아야 한다. 만약 지금 할리우드에서 흑인이나 동양인을 대놓고 비하하는 작품을, 흑인 배우와 동양인 배우를 고용해 촬영한다면 온갖 지탄을 받고 영화는 개봉하지 못할 것이다. 음란물의 제작 자체는 막기 어렵겠지만, 최소한 여성의 신체를 다룬 영상물에도 다른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것과 같은 기준은 적용될 수 있지 않을까.
온갖 불법 카메라 영상을 공유하는 동영상 사이트도 전면적으로 단속해야 한다. 동영상 사이트 단속의 경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안 되는 것은 결국 의지 문제라고 생각한다. 개개인이 각자 불법 자료를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모두 없앨 수는 없지만, 국가 별로 주로 유통에 활용되는 플랫폼을 압박하면 충분히 효과를 거둘 수 있다. 포르노 배우가 아닌, 불법 카메라 피해 여성의 영상이 게시 상태로 방치되는 경우 사이트 운영정지 등의 제제를 엄격하게 집행하면 많은 피해자들이 좀 더 숨 쉴 수 있을 것이다. 하다못해 미성년자에게 비의도적으로 술을 판매한 업주도 처벌할 수 있는데, 왜 안된다고 생각하는가.
성인용이 아닌 광고나 영화, 뮤직비디오 및 서덕 등 일반 콘텐츠에서도 여성을 대상화하는 부분은 없는지 민감한 시선으로 점검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여성을 대상화하는 문화적 환경을 제거하는 작업이 장기 지속되어야 한다. 물론 어려운 일이다. 사회적 합의가 국내를 벗어나 국제사회에서 연대가 이루어져야 가능한 수준이다. 하지만 멀어 보여도 지속적으로 추구해야 한다. 여성이 투표권조차 없었던 시절이 있었고, 남편이 아내를 구타하는 것이 법적으로 인정받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은 갈 길은 멀더라도 여성이 목소리를 낼 수 있고, 연대하는 남성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믿는다. 쌍둥이 중 둘째는 딸이다. 최소한 이 녀석이 공중화장실이라도 걱정 없이 이용할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