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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단화 Oct 03. 2024

열여덟 유럽일기 017

십자가와 음표

2016.09.23

Leipzig, Deutschland


 어제 야경과 야식의 여파로 늦은 아침을 맞이했다. 매번 이렇게 게을러지는 게 아쉽다가도 또 이렇게 늦게 일어나서 다녀도 충분한 일정에 그냥 '내 여행은 이렇구나' 받아들이기로 했다.

 오늘의 목표는 할레에서 조금 떨어진 문화의 도시 '라히프치히'다. 바흐가 일생을 마친 도시이자 <파우스트>의 무대가 된 비어홀이 있으며 독일 근대사의 사건인 '월요데모'의 발생지이기도 하다.


 어제 DM에서 사 온 렌즈를 착용해 보았다. 예상보다 훨씬 편한 느낌에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무거운 안경대신 가벼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니 모든 게 다 잘 풀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숙소를 나서 할레의 중앙역으로 향하고 거기서 다시 라히프치히의 중앙역으로 향했다.


 1시간 반을 걸려 도착한 도시는 반짝였다. 비유가 아니라 진짜 그냥 반짝이는 도시였다. 길 가다 보인 은행건물이 번쩍이고 관공서가 반짝였다. 온몸으로 '우리 동네 잘살아요'를 과시하는 듯한 거리였지만 그게 껄끄럽거나 부담스럽지는 않은 신기한 동네였다. (날이 좋아 유리창마저 반짝였던 날이었다)

말 그대로 번쩍이던 은행건물


 음악이면 음악, 문학이면 문학, 심지어 근대역사까지 볼게 많은 도시였지만 나는 그 모든 걸 다 발만 걸쳐보기로 했다. 어느 하나 깊게 아는 분야가 없고 그렇다고 보지 않기에는 흥미는 한 스푼씩 있었던 터였다.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바흐가 지휘자로 있으면서 일생을 마친 성 토마스교회였다.

 내게 음악은 조금 먼 선배 같은 존재였다. 가끔 얼굴 보고 인사도 나누지만 개인적인 친교는 없다. 그리고 동경의 대상이었다.

 막연한 동경이지만 그렇기에 바흐의 흔적을 따라가 보기로 했다. 아는 게 없기에 보이는 것만 다 보고 오자 싶었다.


 교회 입구로 다가가니 예배가 있는지 어수선했다. 브레멘을 교훈 삼아 재빨리 뒷걸음질을 쳤다. 목적을 바꿔 시내를 먼저 둘러봤다. 반짝이는 구 시청사와 비어홀 앞에 <파우스트> 조각을 빠르게 구경했다. 독일에서는 합법적 음주가 가능하다지만 대낮부터 처음온 도시에서 혼자 맥주를 마시기에는 조금 무서웠다. (지금의 나라면 망설임 없이 들어갈 것이다.)

 동네를 한 바퀴 돌다가 인지도로는 바흐에게 약간 묻힌감이 있지만 역시나 뛰어난 지휘자인 '멘델스 존'에 관해 전시된 멘델스존 하우스도 관람했다.


 시내구경을 마치고 다시 찾아간 교회는 소리로 가득 차있었다. 멀리서도 들리던 연주소리는 가까이 갈수록 더 선명하게 들렸다. 입구로 들어가자 2층 한쪽 벽면을 채운 오르간이 보였다. 고개를 쳐들어야 보이는 자리에서 평범한 셔츠를 입은 연주자가 조음인지 연습인지 모를 연주를 하고 있었다.


 공간을 메우는 소리 뒤로 작은 잡음들이 끊임없이 섞여 들어간다. 관광객들의 발소리, 관계자들의 토론소리. 잠시 멈추었다가 관을 정비하고 다시 같은 음계를 눌러본다. 내 귀에는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하지만 무언가가 바뀌었는지 연주자는 연주를 멈추지 않고 이어나간다.


 그 흔하다는 피아노도 쳐본 적 없지만 거대한 오르간을 보며 저런 악기를 연주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손끝에서 시작된 울림이 온몸으로 전해지는 기분을 느끼고 싶었다. 내 손에서 피어난 음계가 공간을 가득 채우는 경험을 하고 싶어 졌다.

 

  악기를 다룰 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멋진가. 가족끼리 놀다 보면 한 번씩은 꼭 나오는 주제였다. 두어 번 악기를 배워보려 시도했지만 손에 익을 만큼 오래 하지는 않았다. 

 듣는걸 곧잘 하기는 하지만 굳이 찾아 듣지는 않았다. 클래식보다는 락과 팝이 더 익숙했고 악기라고는 '할아버지의 낡은 시계'도 연주라고 쳐준다면 리코더와 하모니카를 조금 연주할 줄 아는 정도였다. 그러나 모닥불 앞에서 치는 기타에 대한 동경이 있고 뮤지컬이나 오페라 영상을 두세 시간이고 봐도 질리지 않았다. 


 유럽문화에서 교회는 떼려야 뗄 수가 없는 사이이고 교회와 예술은 공생관계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든다. 거룩함과 신성함을 위해 교회는 금을 칠하고 노래를 연주한다. 예술가들은 그들의 지원을 받아 더 아름답고 뛰어난 창작물들을 내놓는다. 이 순환에서 가장 큰 수혜자는 이 모든 문화를 향유하고 팔아먹는 후대들이 아닐까.

교회를 가득채우던 오르간 소리와 교회 바깥에 세워져있는 바흐의 동상

 

 뜻밖의 귀호강을 마치고 발을 옮겼다. 음악과 문학을 (얼떨결에) 보았으니 이젠 역사의 차례였다.

 

 다음 방문지는 독일 역사박물관이었다. 박물관보다는 입구에 있는 동상이 더 인상 깊은 곳이었다. 주로 분단 당시의 동독과 통일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는데 애석하게도 나는 독어를 못하고 영어설명은 확연히 적어 안내판을 이해하는 게 어려울 정도였다. 그래도 물건과 사진 비율이 높아 다행히 전체적인 분위기를 보는 데는 무리가 없었다. 중간에 마주친 학생무리들과 찝찝한 분위기가 있었지만 그래도 무사히 관람을 마치고 나왔다.


 짧은 관람을 마치고 이동한 곳은 오늘의 최종 목적지이자 '독일 민주주의 성지'라 불리는 니콜라이 교회였다. 분단시절 매주 월요일마다 자유와 평화의 기도가 열렸던 이곳은 점차 참여자가 많아지며 '월요데모'라 불리는 민주화운동이 이루어졌던 곳이다.

 

 내부는 우아하고 조용했다. 분홍빛이라 해야 할지 상아라 해야 할지 모를 유백색의 기둥과 그 위를 장식한 월계관이 아름다웠다. 통일 이후 월요데모를 기념하여 만들어진 기둥은 그 자체만으로도 볼만했다.

 89년도에 이 자리에 서있던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같은 염원을 가지고 모인 수많은 사람들이 총칼 없이 자신들의 뜻을 외쳤다. 


 사람 사는 게 거기서 거기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게 아니지만 그래도 세계역사에서 공통점을 발견할 때마다 신기해진다. 어떤 나라든 사람들은 결국 자유와 삶을 위해 싸운다. 각자가 생각하는 자유가 다르다 하더라도, 서로의 삶이 대척에 서더라도 큰 틀에서 그들이 싸우는 이유는 비슷한 이유를 띄우고 있다.

 나 역시 그러하기에 그 싸움들이 신기하기도 하고 가엽기도 하다. 투쟁 없는 삶이 존재하기는 할까.


 교회 내부 사진을 찍지 못한 아쉬움은 바깥광장에 있는 기둥으로 달랬다. 내부에 있던 것과 똑같은 기둥은 혼자 두니 기념비적인 느낌이 강했다.

하나도 멋졌지만 혼자보다는 여럿이 보기 좋았다.


 할레로 돌아와 짐을 정리했다. 내일이면 이 도시를 벗어나 다시 베를린으로 향한다. 이곳에서의 짧은 여유도 좋았지만 베를린에서 부지런히 돌아다닐 일정도 기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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