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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단화 Aug 24. 2024

열여덟 유럽 일기 001

시작하는 글

 

 2016.09

모든 이야기에는 시작이 있다.


 내 여행의 시작은 기억도 안 날 만큼 오래전 혼자 할머니 집으로 간 것이었다. 아빠가 보는 앞에서 버스에 올라 할머니가 기다리는 정류장까지의 아주 짧고, 안전한 여행이었다.

 내 노동의 시작은 열다섯이었다. 학교를 그만두고 우울과 죄책감을 벗어나고자 시작한 일이었다. 그리고 운이 좋게도 나는 내 능력과 내 또래에 비해 안전하게 돈을 벌 수 있었다.

 모든 것의 시작이 뚜렷하게 기억난다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많은 시작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덮어지고 잊혔다. 그 잊힌 시작들이 아까워 오래된 일기장을 뒤지고 앨범을 찾아보지만 이미 희미해진 기억은 미미한 추억만 꺼낼 뿐 시작을 찾고 싶은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

 그래서 10년이 다 되어 가는 여행을 이제야 끄집어내 글을 쓴다. 나의 시작 중에서도 특별히 빛나고 잊기 싫은 소중한 시간을 기억하고 싶어서.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이며 항상 성공적이지는 않았던 열여덟의 나를 기억하고 싶어서.


 이 글에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사진은 없을 것이다. 여행기 주제에 여행지에 대한 정보는 엉성하고 비루하며 그것마저도 이미 오래되어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나는 그저 내가 걸어온 여행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을 뿐이고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커피 한 잔과 함께 아주 오랜만에 만난 이의 여행담을 듣는다고 생각 주시길 바란다. 


 많이 서툰 나의 글을 읽어주실 모든 이들에게 미리 감사를 전한다. 그리고 넓은 아량으로 당신의 시간을 낭비해 주기를 청한다. 


 열여덟의 여행을 시작하려면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온 삶을 되짚어가야만 한다. 우습게도 유럽 여행이 내 18년 삶의 전환점이자 목표점의 역할을 했기에 조금 지루하더라도 옛날이야기를 먼저 들어주었으면 한다.


 열넷. 학교를 때려치우고 인생에 다시없을 백수 라이프를 보냈다. 목적과 의미 없이 보내는 하루하루는 삶보다는 생존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하루에 16시간을 넘게 잠을 잤다. 밥은 먹을 때도, 먹지 않을 때도 있었다. 이불 속에 들어가 눈을 감고 멍하니 누워있는 것이 나의 전부였다. 숨 막히는 정적이 나의 요람이었고 친구였다.

 부모님은 그런 나를 탓하지 않았다. 그저 이런저런 것들을 권하며 내가 이불 밖을 나오기를 기다렸다. 이대로 거대한 우울 덩어리가 되어버리는 게 아닌가 싶었던 어느 날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사촌 언니와 함께 공부를 핑계 삼아 도서관에 틀어박혔다. 영화를 빌려보고 손에 잡히는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어댔다. 나에게 도서관은 정적과 생동감이 공존하는 이상하고도 재밌는 장소였다. 그렇게 이불 대신 의자를 선택했다. 고입검정고시를 준비하며 커피를 공부했다. 거창한 꿈이 있던 것은 아니지만 나도 '능력'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게으름과 우울은 이제 나와 뗄 수 없는 일부가 되어버렸다.

 몇 개월 동안 열심히 바리스타 교육과정을 듣고 정작 자격증 시험에 응시하지 않았다. 그저 내용을 알았으니 되었다는 미미한 자기만족과 함께 나는 커피를 잊어버렸다.


 그렇게 잊어버릴 줄 알았다. 고졸검정고시를 보고 알바를 다닐 때도 커피는 나와 별 접점이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반복되는 지루함 속에서 나는 변화를 원했고 그때쯤 나의 아버지는 나에게 거대한 선물을 물어다 주었다.

 바쁜 경마장 구석의 테이크아웃 커피점이었다. 엉망인 외부와 관리가 안 되는 시설들이었지만 처음 도전으로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나는 내가 알바와 저축으로 모은 돈을 그곳에 다 때려 넣었다. 반쪽이지만 내 돈 이 들어간 내 가게, 그렇게 길고 긴 엄마와 나의 카페 동업이 시작되었다.

 결과적으로 말한다면 그곳에서 얻은 것은 돈과 인간 불신과 근육통이었다.

 2년 후 그곳을 나올 때 나는 그전에 비해 한층 더 지쳤고, 우울했고, 힘들었다. 엄마는 지금까지도 그때의 일을 후회하곤 한다. 너무 어린 나이에 시작한 일이 나에게 상처만 남겼을까 봐 걱정하신다. 반쯤은 맞았다.

 나는 상처를 입는 대가로 돈을 얻었다.


 가게를 옮기고 더 안정된 생활이 시작되었다. 평균의 또래보다 많은 돈과 많은 시간이 주어졌다. 그럼에도 그것들이 나에게 큰 의미를 가지지는 못했다. "평균의 아이들"이 스펙을 쌓고 미래를 설계할 때 나는 그저 반복되는 일의 굴레에 갇혀 멈춰지는 기분이었다. 고졸에 특출 난 재주도 없는 내가 언제까지 돈을 벌고 일을 선택하며 할 수 있을까. 먹고살 길이 최대의 관심사였던 초여름, 아이러니하게도 여행을 꿈꿨다.

 시작은 오기와도 같았다. 지친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잠깐의 휴식 시간에 가족 모두 여행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다. 여자 혼자서 대륙을 횡단하는 내용이었고 이국적인 풍경과 다양한 사람들이 화면을 밝히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화면 앞에 앉아 혼자 여행하는 사람을 보며 그 사람이 여행할 수 있는 수많은 이유와 내가 가지 못하는 수천의 변명을 지껄이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무엇 하나라도 트집 잡고, 깎아내리고, 비난하고 싶은 사람이었다. 

 내가 힘들고 지친 만큼 나보다 나아 보이는 사람이 내 눈에 보이지 않았으면 싶었고 모든 일은 때려치우고 하루 종일 잠만 자고 싶었다.


 "그냥 하면 되지"

 나의 변명들 사이로 장난스레 들려온 아빠의 말이 나의 버튼을 꾸욱 하고 눌렀다.

"저 사람은 영어도 잘하고 문제를 해결해 줄 스태프들도 있고 이미 다른 곳도 많이 여행해 본 사람이잖아, 나처럼 영어도 못 하고 나이도 어리고 여권도 없는 사람이랑은 다르지."

 그렇게 변명만 한가득 내뱉었다. 어릴 적 막연하게 동경하고 꿈꿔오던 배낭여행은 이제 나에게 너무도 먼 이야기가 되었고 아마존 오지도 갈 수 있을 것 같았던 자신감은 바닥으로 떨어져 나뒹굴었다. 

 "그냥 하면 되지 왜 못해? 너도 해봐."

 눈치가 없는 건지 있는 건지 살살 약 올리며 말하는 아빠가 그렇게 얄미울 수가 없었다. 씩씩거리며 변명하는 나와 친구의 아는 사람이 독일에 있다며 그냥 가보라는 아빠의 대치가 이어졌다. 홧김에 "싫어!"를 외치고 방으로 들어갔지만 굳이 따져보면 그게 내 유럽 여행의 시작이었다.


 나는 돈이 있었고 엄마는 내게 시간을 주었다. 유럽 여행 카페와 커뮤니티에 가입하고 가이드북을 살펴보았다. 나의 '못 가!'가 '왜 못 가?'로 바뀌고 '그래 가보지 뭐.'로 바뀌는 건 순식간이었다.

 처음은 독일의 작은 도시에서 두달살이를 해볼 생각이었다. 나도 잘 아는 아빠의 친구분이 독일의 지인과 연결해 주었고 비행기 표를 끊고 여행을 준비했다. 그러나 독일의 집에서 출국 한 달 전 문제가 생겼다며 연락이 왔다. 그러고선 출국 일주일 전까지 내가 얼마나 머물 수 있는지 확답을 주지 않았다.

 그렇게 어쩌다 보니 나의 두달살이+한달여행이 석 달 여행으로 바뀌었다.

 한 달 동안 독일을 돌고 한 달 정도를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할애한다. 내가 출국 직전까지 생각한 일정의 전부였다. 비행기 인아웃이 같은 도시였고 그 도시가 독일에 있었기에 결정된 계획이었다. 거기에 더해서 예전부터 꼭 가보고 싶었던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과 스페인에 둘러싸여 있는 포르투갈까지 넣었다.


 그렇게 나는 이틀 전 부랴부랴 구매한 가이드북을 배낭에 쑤셔 넣고 빈틈투성이 계획과 함께 여행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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