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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이 Aug 22. 2020

언제가 홀로 될 시간인지

조금씩 감을 잡아야 할 때이다

일주일 동안 ㅈ뺑이치고 일을 죽어라 했다.

금요일이 되니 그래도 내내 경직되어 있던 몸에 활기가 조금씩 돌아왔다.

그렇게 힘들었지만 이틀은 내 맘대로 쉴 수 있으니 기분이 좋았다. 토요일 오후까진 좋았다.


곧 스멀스멀 해가 지고 비까지 퍼붓고 피로감이 몰려왔다. 낮잠 한번 시원하게 때리면 참 좋겠지만

점심식사 전에 마신 커피 때문에 아주 잠깐 눈을 붙이는 정도로 누워있을 수밖에 없었다.

몸을 일으켜 세워 머리를 감고 말리고, 에어컨도 빵빵하게 틀었다. 하지만 여전히 우울했다.


옆에서 우울해하고 있다는 걸 감지한 애인이 아무래도 내가 혼자 있는 게 좋을 거 같다고,

자신은 안국역에 있는 자기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나는 혼자 있는 게 내 기분을 낫게 만들지 의문이 들었고, 집으로 가보라고 말할 수 없었다. 우물쭈물하고 있는 나를 보곤 그는 말했다. 어쨌든 자기는 로또를 사야 하니 밖에 나가보아야 한다고. 내가 더 깊이 우울해지지 않게 해 주려는 큰 배려였다. 빗발이 굵어지고 천둥까지 치는데 그러지 말고 그냥 있으라고 했다. 소음방지 매트를 세워서 파티션처럼 내 공간을 만들면 되지 않겠느냐 말했다. 하지만 그는 로또만 사서 금방 오겠다고 말하며 서둘러 현관문을 나섰다.


하지만 이미 로또를 두세 번 더 사고도 남았을 시간이 흘렀는데 그는 돌아오지 않고 있다. 어디선가 방황하고 있겠지. 내 기분이 조금이라도 나아지기를 바라 주면서.


애인이 나간 뒤 나는 토요일의 우울감에 대해 글을 쓰려고 컴퓨터의 전원을 켰다.

하얀색 화면에 글을 쓰려는데 우울이라는 단어를 쓸 수가 없었다. 왜냐면 그 우울한 마음은 이미 사라져 있었기 때문이다. 눈치 빠른 애인이 적당한 때에 빠져준 것이다. 내가 홀로 있어야 한다고 판단한 그의 섬세한 감각과 결단, 행동력이 새삼 고마웠다.


그래, 내가 혼자 있고 싶었구나. 일에 치여서 나 혼자 여유를 만끽할 시간이 없었구나.

혼자 있으니 호젓하고 조용하니 참 좋다.

혼자 조용히 글을 쓰고 있으니 잔잔한 즐거움이 가슴속에 피어오른다.


애인과 나는 주로 같이 지내고 거의 동거하다시피 붙어있다. 그러다 난 어느 순간 이유모를 우울감에 휩싸인다. 그리고 그 정체모를,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우울함이 이젠 ‘혼자만의 시간'의 부재 때문이라는 걸 이제야 안다. 우리 둘 다 그걸 인정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런데, 언제 얼마나 떨어져 있어야 하는 걸까?

얼마나 오랫동안 함께 있는게 적당하고, 언제 떨어져 있어야 우울하지 않게 될까? 그 적당한 선을 아직은 잘 모르겠다.

 앞으로 더 많은 시간이 흐르면, 최적의 alone time과 together time을 찾아낼 수 있을 거 같다는 확신은 든다. 우리는 서로에 대한 믿음과 애정이 있으니까, 서로 떨어져 있다는 게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는 걸 아니까 말이다. 이렇게 말하면 참 나쁜 사람일지도 모르겠지만, 그가 조금만 더 늦게 집으로 돌아와도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주말에 이렇게 잠시라도 각자의 시간을 갖는게 좋을 것 같다.


홀로 있는 토요일은 의외로 행복할 수 있다.

물론 당신의 전화를 세상에서 제일 반갑게 받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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