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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이 Dec 22. 2020

결혼을 합니다

근데 이게 마냥 좋은 건 아니네요.

제가 원했던 건 사랑, 신뢰, 농담, 보호, 위로, 따뜻함, 지지, 대화, 타협, 수용, 이해.... 와 같은 것들이 잘 구현되는 관계였습니다. 이런 모든 긍정적 가치들을 함께 누릴 수 있으면서도, 갈등과 번목 속에서 대화를 통해 접점을 찾아내는 사이. 곁에 서로가 있어 좋은, 믿고 의지하는 그런 관계를 아주 오랫동안 찾아 헤맸습니다.


누군가를 만났고,


그는 그런 관계가 가능한 사람이었습니다.


 어찌 보면 다른 어떤 점보다 그런 가치들이 가능한 사람이기 때문에, 나에게 중요한 부분을 채워주는 사람이었기에 저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기도 합니다. 타이밍이 맞았고, 그 사람은 그런 자질을 갖고 있었고, 잘 때 코를 골지 않고, 음식을 맛있게 먹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나는 이 사람과 헤어질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한두 번의 위기는 있었지만, 우리는 그 이후로 더 단단해지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었지요.


그리고 무턱대고 같이 살기 시작했습니다.  꼼지락 거리며 하루하루 보내다 보니 시간이 흘렀고, 1년 정도 지나 어느새 우린 결혼을 준비하는 커플이 되었지요.


양가 방문과 상견례까지는 순조로웠습니다(피곤하긴 합니다). 여기까지는 퀘스트 하나씩 완료하듯 즐거운 마음으로 진행했었지만 문제는 "결혼식 준비"입니다.


웨딩박람회에서 업체 계약을 하고,

식장 알아보기,

드레스 알아보기,

메이크업 알아보기,

예식 세부 내용 정하기

이런 업무(?) 들을 봐야 하는 데..... 사실 별로 하고 싶지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1. 기본적으로 웨딩 가격에 거품이 많고(늘 호갱 된 기분),

2. 장사치들이 많아 어딜 연락해도 공격적인 영업이 있고,

3. 늘 예비부부에게 뭔가를 팔고 싶어서 혈안이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4.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거절 잘 못하고, 단호한 입장 표명을 주저하는 저나 애인 같은 사람들에겐 아주 곤혹스럽습니다.


웨딩시장도 얼어붙었고, 성수기 때 확 당겨야 된다는 건 이해합니다.

하지만 결혼식은 정말로 아주 사소해 보이는 하나도 다 돈이기 때문에 살면서 이렇게 큰돈을 팍팍 쓰며 살지 않아 온 사람들에겐 모든 게 다 조심스럽고 이렇게 진행해도 되는 건지 의심스럽고 그 와중에 또 누군가 영업을 하려고 전화를 자꾸 하고 카톡을 보냅니다. 그래서 그렇게 시달리다 보면 "아 다 엎어버리고 전화도 꺼버리고 싶다" 싶은 마음이 들다가 현자 타임도 오고 그럽니다. 내가 이렇게 시달리려고 결혼하는 게 아닌데.....


여하튼 결혼을 향한 즐거운 여정이었는데, 지금은 결혼식 자체에 벌써 약간 질렸습니다.

뭐랄까, 삶의 새 출발을 준비하는 마음은 온데 간데 사라지고, "(잠재호갱) 소비자" 라는 납작한 정체성만 부여받은 불쾌한 기분입니다.

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이라는 용어 자체도 웃기고... 왜냐면요 저 단순해 보이는 3가지 안을 조목조목 뜯어보면 또 세부적으로 따져야 하는 것들이 엄청 많습니다. 업체들은 수백 개인데 그중 이상한 곳들도 많아서 잘 거르고 걸러야 합니다. 눈 뜨고 코베이지 않으려면 약간의 진상짓과 까탈스러움을 장착해야 한다, 라는 것이 최근 내린 결론입니다.


다소 무난하게 시작한 글이 약간 날 선 상태로 미무리되어 저도 유감스럽긴 합니다. 하지만 흥정 귀찮아 재래시장도 안가고, 백화점 점원들이 웃으며 말 거는 것도 가끔 부담스러워 하는 저같은 사람들에게 웨딩시장은 참으로 고역입니다. 이젠 업체랑 무슨 이야기 하기도 전에 한숨부터 나와요. 오늘은 또 뭘 거절해야하나? 난 또 어떤 걸 결정해야 하지? 돈은 얼마나 나가는 걸까?


자꾸 생각하면 피곤하니, 세상 물정을 알아가는 과정으로 생각하는 게 심신에 이로울 거 같습니다. 세상이 원래 내 맘같지 않으니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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