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세이는 내가 쓴 글 중에서 부끄러울 정도로 제일 솔직한 글이다. 실물 사진을 보여주고 마음 아픈 과거를 자주 언급했다. 원래 재밌는 기행문을 쓰는 것이 내 목표였다. 그런데 막상 쓰니까 나도 모르게 자아 성찰과 내 인생을 향한 진심을 썼다. 남들에게 쉽게 털어놓지 못한 내 속마음을 나도 모르게 이 글에 남겨버린 것이다. 의도와 다르게 흘러갔을 때 나는 멈칫하고 '다시 갈아엎어야 하나?' 생각했지만, 나중에 '에라, 모르겠다.'하고 이야기의 주도권을 마음에게 맡겼다.
그 외국인의 마지막 미션
내 인생을 글로 이야기하고 있을 때 나는 한 가지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에세이가 Ryla를 되찾기 위한 마지막 미션이었다.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나는 Ryla가 숨었던 아픈 과거를 뒤늦게 발견하고 그 과거로부터 해방되는 내용을 썼다. 그런데 무언가 부족하지 않은가. Ryla만 좋은 엔딩을 맞이한 기분이 들지 않은가. 차미화는? 라일라는? 가만 생각해보면 두 이름은 억울하게 악당 역할을 한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나는 온전히 Ryla를 되찾았다고 말할 수 없다.
지금까지 차미화, 라일라, 그리고 Ryla를 성격이 다른 세 사람처럼 언급했다. 차미화를 Ryla의 경험을 훔친 악당처럼 표현했고 라일라를 20% 부족한 Ryla의 복제처럼 표현했다. 마지막 에피소드를 다시 읽으니까 내가 차미화와 라일라를 억누르고 Ryla를 되찾은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되면 Ryla만 남고 차미화와 라일라가 부정당하게 된다. 에필로그까지 달려온 이 에세이는 Ryla, 차미화 그리고 라일라의 화해를 도와주는 발판이 되었다.
'현재의 나는 Ryla다. 그리고 과거의 차미화는 나였고, 라일라도 나였다.'
Ryla뿐만 아니라 차미화와 라일라도 '나'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이게 나를 되찾기 위한 마지막 미션이다. 차미화는 Ryla와 정반대의 삶을 살았지만, 여전히 나였다. 라일라는 Ryla의 20% 부족한 복제 같았지만, 그것도 나였다. 세 이름 모두 다른 사람이 아닌 '나'라는 사람이다.
알다시피 나는 내 한국 생활을 알리기 위해 이 에세이를 썼다. 목적이 처음에 자아 성찰이 아니었다. 그런데 점점 쓸수록 나도 모르게 숨기고 싶었던 과거까지 털어놓게 되었다. 난 과거를 회상하면서 자연스럽게 '나'라는 인간이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왜 그랬는지 이해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글을 쓰면서 처음으로 글을 통해 내면적인 힐링을 받았다.
차미화를 떠오르면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느꼈는데 이젠 그 느낌이 없다. 라일라를 떠오르면 그저 유쾌했던 고등학교 시절만 떠오르게 된다. 차미화와 라일라도 모두 Ryla인 나였기 때문에 이제 과거를 제대로 놓을 수 있게 되었다.
과거의 사람들이 나를 '미화야' 또는 라일라 메이(Ryla Mae)의 '메이야'라고 부르면 이해한다. 그들이 익숙해진 이름이고 과거의 내가 '그렇게 불러도 돼'하고 허락했으니 어쩌겠는가. 그래도 아는 지인 중에 이 글을 읽고 있다면 그 점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Ryla는 R와 Y발음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건 알고 있으니 나를 '라일라'라고 부르면 나는 엄청 기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