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생활 2n년 차 외국인의 추억: 마지막 에피소드
이전에 일어난 일들을 다시 생각해보자. 내적 위기를 맞이한 나는 고향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고 Ryla(라일라)를 되찾았다. 이제 남은 건 무사히 졸업하는 것과 꿈을 이루는 것이다. 끝 옆에 시작이 따라오는 법. 나를 되찾았으니 이제 나를 알아가는 여정이 시작됐다.
고향에서 터닝포인트를 맞이했다고 Ryla가 완성된 것이 아니다. 자기 자신을 정의할 때 내가 어디서 왔는지부터 시작해서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알아야 한다. 나는 Ryla가 어디서 왔는지 알게 된 것뿐이다. 이제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그리고 몰랐던 성격까지 찾을 때가 됐다.
Ryla가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알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했다. 주로 차미화와 라일라가 하지 않을 짓을 했다. 다양한 성격을 받아들이면서 다양한 활동을 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애는 진짜 이상한 사람이야.'라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그만큼 주변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했다. 그 당시 일관성 없는 성격을 보여줬기 때문에 부모님조차 딸이 어떤 사람인지 정의하기 힘들었다. 그래도 나는 포기하지 않고 마음에 끌리는 행동을 했다. 그리고 그러한 행동을 하면서 Ryla의 특성을 찾았다.
다른 사람의 세상을 본다는 것은 모험이다. 왜 모험이라고 비유했는가. 그만큼 힘들기 때문이다. '난 모험할 거야!'하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시작했다고 처음부터 끝까지 그 모험이 긍정적인 모험이 될 거라는 보장이 없다. 내 모험도 즐거움과 힘듦이 공존했던 모험이었다.
한국 문화가 어려운 멘티에게 문화 설명을 잘해야 한다. 반대로 멘티에게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을 발견하면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멘티 혹은 동료 멘토가 이해할 수 없는 태도를 보여주면 이것이 그 사람의 성격에서 나온 태도인가 아니면 문화에서 나온 태도인가 생각할 때가 많다. 이러한 생각이 '도대체 사람을 어떻게 보아야 한단 말인가.'라는 철학적인 고민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때의 나는 그 사람의 성격으로 해석하기도 했고 그 사람이 속한 문화 때문에 생긴 태도인가 하면서 고민하기도 했다.
문화 배경이 다른 사람과 함께 활동하면 타인을 이해하는 과정이 얼마나 힘든지 몸과 마음으로 느끼게 된다. 같은 외국인인데도 나와 다른 시각을 가진 사람을 만났고 과거의 나처럼 자신만의 세계 속에 갇힌 사람도 만났다. 이렇게 자신만의 색이 강한 사람들을 이끌고 멘토로 활동하니까 즐거운 경험과 힘든 경험을 모두 겪었다. 그래도 멘토링 경험 덕분에 나와 다른 세계의 사람을 마주하게 되면 그 '다름'을 감당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사진을 보아라. 사진 속 인물을 좋게 표현하자면 자기표현 욕구가 강한 사람이고 나쁘게 표현하자면 관종이다. 대학생이었던 나는 관종 레벨이 은밀하게 높았다. 대놓고 '나 이런 사람이야!'라고 하지 않았고 은밀하게 나 자신을 표현했다.
'난 Ryla야! Ryla라고!'
터닝포인트를 겪기 전까지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되어보지 못했다. 외국인의 삶을 부정하고 내 안의 혼돈을 감당하느라 바빴다.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겪은 후 나 자신이 보이기 시작했고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되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그러한 욕구가 자연스럽게 자기표현으로 이어졌다.
주로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에서 자기표현을 했다. 인스타그램에서 스토리(My story)가 있고 페이스북에서 마이 데이(My day)라는 것이 있는데 자신의 하루를 표현하는 기능이다. 대학생 때 올렸던 페이스북 마이 데이와 인스타그램 스토리가 기록된 아카이브를 열면 똘기 혹은 관종으로 물든 사진과 영상을 발견할 수 있다. 사진과 영상의 내용은 모두 '난 Ryla이고 난 이런 사람이야'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친구들이 영상을 보고 좋은 반응을 해주면 나라는 사람이 인정받는 기분이 든다.
대학교 때 친구들은 내가 왜 그렇게까지 행동했는지 궁금했을 것이다. 내가 특이하고 미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 텐데 왜 그런 사람이 되었는지 궁금할 수 있다. 그때의 Ryla에게 질문하면 '몰라, 그냥 미치는 거야.'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지금의 나는 제대로 대답할 수 있다.
"나 그때 Ryla가 된 지 얼마 안 된 상태라 나 자신을 표현하고 싶었어. "
Ryla는 그동안 인생의 주인공이 되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자기표현 욕구가 강한 사람이다.
'나는 회사와 어울리는 사람인가.'
'내가 회사에 다니게 되면 어떤 사람이 되는 걸까.'
'남들처럼 회사에 취직해야 하나.'
그 질문의 답은 인턴십 끝나기도 전에 얻었다. 모든 질문의 대답은 NO다. 괜히 대문자로 쓴 것이 아니다. 왜 NO인지 알려주기 전에 내가 대학생 인턴으로서 무엇을 했는지 알려주겠다. 대학생 인턴으로 활동했을 때 주로 번역과 서류 정리를 했다. 사람을 긴장하게 만드는 그런 중요한 일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을 때 뿌듯함을 느꼈다. 그런데 내 몸이 자꾸 나에게 '회사는 아니야'라고 외치고 있었다. '왜일까' 생각하다가 회사에서 보았던 장면을 떠올랐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엑셀과 다른 프로그램을 두드리는 사람들, 수시로 오는 전화 문의, 매뉴얼대로 대답하는 모습. 열정과 피곤함이 동시에 느껴질 정도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을 보고 깨달았다.
'아, 여긴 내가 있을 곳이 아니구나.'
회사에서 보았던 장면을 떠오르면 답답함을 느낀다. 인턴십 활동했을 때만 그 답답함을 느끼지 않았다. 학교 프로그램 때문에 특정 회사를 방문한 적 있다. 사무실을 보자마자 숨이 막히고 답답한 기분이 들었다. 그곳에 있을 때마다 '도망가!'라는 무언의 신호를 받았다. 가끔 타인의 감정을 느낄 수 있어서 방금 느꼈던 신호가 직원들의 감정으로 여겼다. 그런데 관찰자가 아닌 업무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고 나니까 그 신호가 강하게 울렸다.
'도망가! 여긴 네가 있을 곳이 아니야!'
번역하고 서류 정리하고 수행 보조를 했을 뿐인데, 어려운 일을 하는 것 같았다. 무언가 숨이 막혔다. 결국 답답하고 숨 막히는 느낌을 인정했다. 나와 맞지 않은 환경에 있어서 숨이 막혔다. 다른 사람들은 맞지 않은 환경 속에 일해도 문제가 없는데 나는 아니다. 회사라는 환경에 적응하려고 노력했지만, 매번 실패했다.
Ryla는 차미화와 라일라처럼 글로 자신의 세상을 표현하는 것을 좋아한다. 터닝포인트를 겪기 이전에 나는 내 세상이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몰라서 이상한 글만 썼다. 고향에서 터닝포인트를 맞이한 이후로 막혔던 글이 풀리기 시작했다. 차미화와 라일라의 세상은 한국에서 시작됐지만 Ryla의 세상은 고향에서부터 시작됐기 때문에 고향과 관련된 글부터 쓰기 시작했다.
나는 대학교 2학년 때 다문화 스토리텔링 공모전에 나갔다. 고향의 신화와 전설을 동화로 바꾸는 것이 공모전의 주제였다.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전에 자료 조사를 했는데 그 기억을 다시 떠오르면 웃음이 난다. 과제를 조사한 것보다 더 열심히 했기 때문이다. 나의 세상을 조사하는 것이고 그런 세상을 알아가는 과정인데 즐겁게 조사할 수밖에 없다.
공모전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수상 결과를 발표하는 공지사항에서 내 작품을 발견했다. 내가 입상자라니.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오랜만에 쓰는 글이라서 기대하면서도 기대를 안 했는데 정말로 됐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때부터 글쓰기에 대한 열정과 끈기가 다시 피어나기 시작했다.
공모전 입상의 맛을 알게 된 나는 학업보다 내 꿈에 충실했다. 스토리텔링 공모전 이후로 나는 웹툰 스토리 공모전에 도전했다. 마감일이 중간고사 기간과 겹쳤는데 하라는 공부를 안 하고 공모전에 집중했다. 교재를 대충 훑어보면서 스토리의 플롯을 열심히 짰다. 이번에는 내 이야기를 썼다. 물론 지금의 글처럼 Ryla가 등장하는 것이 아니다. 나처럼 한국에서 외국인으로 살고 있는 주인공이 자신의 꿈을 이루는 내용이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때처럼 허구의 인물을 만들어서 나의 세상을 표현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작품을 제출한 후 그제야 중간고사에 집중했다. 자업자득으로 마음에 안 드는 학점을 얻고 수업을 준비하고 있을 때 공모전 결과를 확인했다. 스마트폰 화면에서 기적을 보았다. 두 번째 공모전에서 과연 입상할까 불안했는데, 정말로 입상한 것이다. 그것도 금상으로 입상했다. 놀라웠다. 그때부터 Ryla는 차미화와 라일라가 키웠던 작가의 꿈을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나의 세상을 표현하는 메인 도구를 글쓰기로 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