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외국인의 터닝포인트 2편: 고향에 가다

한국 생활 2n년 차 외국인의 추억: 마지막 에피소드

by 라일라 메이

2016년 12월.

내 고향, 필리핀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나는 사연 있는 여자처럼 앉아서 창밖을 보았다. 밝아지는 하늘을 보면서 대학교 1학년 때 했던 미친 짓들을 생각했다. 그동안 들뜬 마음으로 비행기를 탔는데 이번에는 여러 감정 섞인 눈으로 생각했다.


'난 무엇 때문에 이런 삶을 감당하고 있지?'


강제로 외국인의 삶을 살아가고, 차미화라는 가짜 이름으로 중학교 때까지 살고, 고등학교 때 라일라로 살고, 대학교 들어가서 Ryla로 사는 그럼 삶은 이제 지쳤다. 나 자신을 되찾으려다가 오히려 나 자신을 잃어버린 기분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무엇 때문에 나 자신을 되찾으려고 노력했는지 까먹었다. 정신 차리니까 난 외국인이 되는 것이 싫었고 그런 마음을 계속 표현했다. 가만 생각해보면 내가 왜 외국인의 삶을 부정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 그 원인을 찾으려고 하면 초등학교 때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때 무슨 생각으로 낯선 세상을 부정했는지 알 수 없다. 그저 기억나는 건 낯선 세상을 향한 두려움과 외국인이 되기 싫은 마음뿐이다. '나는 왜 이토록 외국인의 삶을 싫어하는가'를 생각하다가 창밖에서 고향의 모습을 보고 새로운 고민거리가 생겼다.


'나에게 고향은 어떤 존재일까.'


나에게 한국은 낯선 세상이다. 그럼 고향은 나에게 어떤 존재인가. 내가 태어난 곳을 상징하는 장소일 뿐인가. 내 인생 속에서 고향을 정의하기 힘든 이유는 아마도 이것 때문일지도 모른다.


2년에 한 번, 그리고 한 달.


고향을 주기적으로 방문하는 기간이다. 2년에 한 번 고향에 갔고 주로 한 달 동안 그곳에 지냈다. 고향에서 보내는 시간을 모두 합치면 1년이 완성될까 말까 할 정도의 짧은 기간이다. 이 정도의 기간이라면 나는 필리핀 현지인의 자격을 가지고 있는 걸까. 아니다. 그 정도면 난 국적만 필리핀 사람인 것이다. 모국어도 못하고 고향 문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는데 당연히 고향에 대한 애정을 품고 있기 힘들다. 그래서 고향에 가면 소속감을 느끼기 힘들다. 한국에 가서 소속감을 느끼기도 힘든데 고향에도 그 소속감을 찾을 수 없다. 저절로 헛웃음이 나온다.


생각할수록 억울하고 짜증 났다. 난 나 자신을 잃었고 소속감도 잃었다. 난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고 정착할 곳도 없다. 이렇게 억울하고 짜증 나는데 더 짜증 나는 건, 이 순간에 작은 설렘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오랜만에 비행기를 타고 있으니까 해외여행 가는 기분이 들었다. 우울한 마음과 설렘 사이에 서 있는 내 마음 때문에 헛웃음을 지었다.



색달랐던 입국 심사

비행기가 착륙한 후 난 부모님을 따라 입국심사 줄로 향했다. 인천공항 입국 심사를 지나갈 때마다 늘 '외국인 전용' 줄에 서서 심사를 받고 통과했는데 고향은 다르다. '필리핀 사람' 또는 '현지인' 줄에 서서 기다렸다. 그냥 줄에 서서 기다리는 것뿐인데 그곳에서 신기한 경험을 했다. 외국인 전용 입국 심사 줄에 한국인들이 대기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나는 한국에 있으면 늘 외국인 전용 줄에 섰는데.


"여기서 난 현지인, 여기서 그들은 외국인."


기분이 이상했다. 언제나 한국인을 현지인으로 바라보았다. 그래서 그들이 다른 나라의 외국이 되었을 때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그들은 이곳에 외국인이고 나는 이곳의 현지인이다? 앞 문장에 마침표가 아닌 물음표가 붙은 이유는 내 정체성 때문이다. 한국인은 필리핀에 가면 외국인이 된다. 나는 필리핀에 가면 어떤 사람인가. 머리로는 이곳이 나의 고향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데 무언가가 날 망설이게 한다. 당당하게 난 이곳의 현지인이라고 말할 수 없다. 내 성장 배경을 생각하면 당연히 필리핀 현지인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럼 나는 도대체 필리핀에 가면 어떤 사람인가. 나는 그 질문을 안고 가족들이 있는 곳, 바기오 도시로 향했다.



바기오 도시 그리고 나의 정체성

부드러운 모래, 야자수, 그리고 시원한 바다. 이것이 사람들이 흔히 기억하는 필리핀의 모습이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는 고향은 시원한 바다와 모래 그리고 야자수의 조합이 아니다. 내 고향은 야자수 대신 소나무, 바다 대신 높고 거친 산, 그리고 더운 바람 대신 시원한 바람이 부는 곳이다.

바기오 도시는 안개가 파도치는 곳이다.

마지막 에피소드의 1편이 무겁게 끝나고 이번 편도 나름 무겁게 시작했는데 갑자기 관광지 소개가 나타나서 당황할 수 있다. 이번 편은 한국이 아닌 낯선 나라가 배경이기 때문에 우선 고향을 소개하는 것부터 시작하려고 한다.


바기오 도시는 내가 태어난 곳이다. 고원지대에 있어서 봄과 가을 같은 날씨를 가지고 있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에어컨이 없어도 사는 데 큰 지장 없는 곳이다. 물론 날씨에 예민한 사람들은 필요할지도 모른다. 시원한 날씨를 자랑하는 바기오, 사람들 사이에서 '여름 수도' 혹은 '소나무들의 도시'로 불린다.

보기만 해도 춥다


'그래도 더운 나라인데 반팔 입고 가면 문제없겠지?'


바기오가 처음인 사람이 그런 생각을 할 가능성이 높다. 나도 그런 생각으로 내 고향을 만만하게 보다가 몸살감기에 걸렸다. 4월은 바기오에서도 여름 계절이기 때문에 그때 반팔만 챙겨도 문제가 없다. 비가 자주 오는 8월과 한국에서 겨울인 계절에 방문하면 최소한 따뜻한 카디건을 챙기는 것이 좋다.



다시 고향과 가족 얘기로

공항에서 색다른 경험을 한 후 머릿속에 있던 고민을 떠올랐다. 내가 마지막으로 했던 고민은 나와 고향의 관계였다. 고향을 방문한 목적은 언제나 가족 때문이었다. 이번에도 가족 때문에 고향에 갔다. 나는 어릴 때 필리핀을 내 고향 그리고 내가 만난 사람들이 내 가족이라고 생각했다. 어른이 된 나는 그런 단순한 생각을 하기 힘들어졌다. 가족. 지긋지긋하면서도 아무에게 줄 수 없는 그 단어. 나는 내가 태어난 집안의 가족인데 정말로 내가 그들의 가족인지 고민했다. 나는 정말 그들의 가족이 맞나. 형식적으로만 가족이 아닐까.


생각해보라. 당신에게 해외에 쭉 살다 온 사촌이 오랜만에 한국에 귀국했다. 그 사촌은 2년에 한 번, 그리고 한 달이라는 기간으로 주기적인 방문을 했다. 그러다가 입시 때문에 3년 동안 귀국하지 않고 외국에 계속 살았다. 대학생이 된 그 사촌은 당신의 집으로 방문하게 된다. 이때 당신은 그 사촌과의 관계를 이렇게 정의할 것인가. 이러한 가족 사이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형식적으로나마 가족 사이라고 할 가능성이 높다.


고향 갔을 때 나는 내 주제를 알고 있기에 화목한 사이가 아닌 서먹서먹한 사이를 예상했다. 가족들은 분명 미소를 짓고 나를 반갑게 맞이하겠지. 그런데 거기서 끝나겠지. 그런 생각을 안고 본가에 도착했다. 그들의 얼굴을 보자마자 내 예상과 다른 장면이 펼쳐졌다.


"정말 오랜만이야!"

"언니 오랜만이야!"

"누나!"


예전에 헤어진 절친을 오랜만에 만난 그 기분 아는가. 가족들이 나를 보더니 지겹도록 매일 보던 얼굴을 오랜만에 만나서 신이 난 사람처럼 반응했다. 난 가족들의 태도를 보고 충격받은 동시에 깨달음을 얻었다.


'가족들이 아직도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니. 난 잊었는데. 심지어 포기했는데.'



가족을 잊기로 선택한 외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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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에 있는 내 가족. 이들을 향한 내 속마음을 알려주자면 엄청난 그리움이다. 나는 언제나 마음 깊은 구석에 그 그리움을 안고 살았다. 초등학교 때 고향 가서 무엇을 했는지 기억이 잘 안 나지만 한국에 있을 때마다 내가 고향을 그리워했던 건 확실하다. 그런데 청소년이 되자마자 고향을 향한 그리움을 접을 때가 됐나 생각했다. 한국인 같은 외국인 소리를 들었을 때 나는 이런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아, 이제 고향 사람들과 같아질 수 없구나. 나는 이제 완전 이방인이구나. 그럼 가족과 같아질 수 없겠네.'


한국인 같은 외국인이어도 '한국인 같다'라는 이미지가 있어서 그나마 한국에 오래 살아도 문제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고향을 다르다. 나는 중학교 때부터 고향을 외국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당연히 고향 문화에 적응하기 힘들었다. 그것을 넘어 모국어도 못 한다. 나는 한국에 오래 살았고, 모국어를 못해서 필리핀 현지인의 자격을 잃었다.


나라는 존재가 고향 사람과 다른 존재가 되었는데 가족을 향한 그리움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래서 혼란스러웠다. 나는 이미 가족과 다른 사람이 된 거나 마찬가지인데. 내 마음속에 남아 있는 그리움도 이제 놓을 때가 된 것이 아닌가. 그래서 나는 고등학교 때 가족을 향한 그리움을 포기하고 현실을 바라보았다. 내가 외국인이라는 현실을 바라보면서 앞으로 나아가려고 했는데 그것이 오히려 대학교 1학년 때 겪은 우울증으로 이어졌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나는 그 질문의 해답을 고향에서 찾았다. 가족을 본 순간 내가 왜 자아 충돌과 현실 부정이 심했는지 알게 되었다. 문제의 원인은 모두 가족을 향한 그리움 때문이었다.


"난 가족과 함께 살고 싶었구나."


고향에 가면 소속감을 느끼기 힘들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곳을 포기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는 가족 때문이었다. 나는 한국이 아닌 필리핀에 정착해서 가족과 살고 싶었다. 가족과 함께 성장하는 인생. 그것이 어린 시절의 내가 원하던 꿈이었다. 그런데 내 꿈은 이민 생활 때문에 박살 났다. 심지어 낯선 세상을 마주할 자신도 없었고 그러한 삶을 원하지 않았다.


이제야 모든 것이 말이 된다. 초등학교 때 말을 안 하는 외국인 어린이로 살아온 이유가 따로 있었다. 단순히 낯선 세상이 무섭다는 이유로 끝내기엔 무언가 부족했다. 이보다 더 큰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 모른 채 답답하게 살아갔다. 고향에 있는 가족을 본 순간 드디어 그 이유를 찾았다.


Ryla는 사실 고향에 살고 싶어 했다. 그녀는 가족들과 함께 살면서 그곳에 성장하고 꿈을 이루고 싶었다. Ryla는 고향의 현지인이 되고 싶었고 그곳에서 소속감을 느끼고 싶었다. 그 마음을 깨닫고 잊고 있던 기억을 떠올랐다. 난 외국인으로 살아갈 때 가족과 함께 지내는 현지인들을 수없이 보았다. 난 그 모습이 부러웠다. 한국에 있을 때 난 그런 말을 했다.


'나도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만나고 싶어! 사촌들이랑 놀고 싶어!'


세상을 구별하지 않고 살았던 그 어린 시절, 나는 현지인처럼 살아가려고 했다. 교육받기 이전의 나이였으니 가족들은 만나면 다른 현지인처럼 차를 타고 가는 줄 알았다. 그때 부모님이 내게 현실을 알려주었다. 내가 사는 세상이 구별이 있음을 알려주었다. 나는 외국인이고 내가 사는 곳은 현지인들의 나라다. 가족들은 현지인의 나라가 아닌 고향에 있다. 그리고 난 그들을 만나려면 자동차가 아닌 비행기를 타야 한다. 고향은 2년에 한 번만 갈 수 있다. 무엇보다 나는 한국에 살면서 외국인의 삶을 감당해야 한다. 이러한 현실을 듣고 충격받았다. 난 그런 삶을 원하지 않았다. 가족들과 함께 살면서 현지인이 되고 싶었다. 난 그러한 소속감을 원했다. 그런데 이민 생활 때문에 억울하게 현지인의 삶을 놓치고 말았다. 그 억울한 감정을 표현하는 단어가 있다.


Frustration

[불만/좌절감]


기대하거나 원하던 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느껴지는 감정이다. 오랫동안 고향에 지낼 수 없는 사실, 그리고 가족들을 자주 만날 수 없는 현실 때문에 불만과 좌절감을 느꼈다. 내가 생각하는 행복 시나리오를 이루어질 수 없어서 무의식적으로 화가 난 것이다. 불만과 좌절감을 처음으로 느꼈던 어린 시절의 나는 그 감정들을 무시한 것 같았다. 그러한 감정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몰랐을 것이고 있는 그대로 느끼기엔 아팠을 것이다. 그래서 그 감정을 무시하고 부정하는 태도를 선택했다. 불만과 좌절감을 느끼기 싫었던 외국인 어린이는 그 감정을 무시하고 부정하기로 선택했다. Ryla 어린이의 선택 때문에 Ryla 어른은 자기가 왜 미쳐갔는지 기억하기 힘들었다.


나에게 가족이 어떤 존재이기에 한국에 있으면 무의식적으로 고향을 그리워했는가. 고향 갈 때마다 느껴지는 가족들의 따뜻한 관심 때문인가. 이보다 더 뜻깊은 이유가 있을 텐데. 한국에 있을 때와 고향에 있을 때의 기억을 떠오르면서 생각했다. 한국에 있으면 내가 위험한 이방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알려야 한다. 모든 사람이 외국인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건 안타까운 장면이 아닌 당연한 장면이다. 나도 나와 다른 세계의 사람을 보면 저절로 긴장하게 된다. 미지의 두려움에서 오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고향에 가면 가족들은 나를 외국인 Ryla가 아닌 그냥 가족 Ryla로 인식한다. 한국에 있으면 모든 것이 낯설고 두려운데 고향에 가면 가족들이 나에게 '넌 우리에게 소속된 사람이야.'라는 안심을 준다. 어린 시절의 나는 그 시선이 좋아서 고향에 살고 싶었던 것 같았다. 그래서 늘 마음속에 가족을 그리워했다.



한국에 있어도 나는 여전히 그들의 가족

중요한 사실을 알았다고 바로 해피엔딩으로 가는 것이 아니다. 나는 여전히 외국인이고 내 현실은 한국에 있는 상태다. 고향은 나에게 한여름 밤의 꿈같은 존재다. 꿈처럼 머무는 기간이 짧고 여운이 길다. 이제 와서 그 꿈을 현실로 만들기엔 늦었다고 생각했다. 고향 사람이 되어 가족과 함께 살아가려면 많은 것을 잃어야 한다. 고향에 사는 꿈. 그 꿈을 이루기에는 나는 먼 길에 가버린 상태다. 그래서 결심했다. 미련을 버리기로.


'깨달았으니 그 미련을 놓을 때가 됐어.'


그리움 때문에 생긴 미련을 버리지 못하면 큰일 날 것 같았다. 가족을 향한 그리움을 안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현실을 직시하기 힘들 것 같아서 미련을 버리기로 했다. 그 미련을 버리려고 마음먹을 때 누군가가 내 앞에 나타났다.


"앨리스 안녕?"


내게 뜬금없이 '앨리스 안녕?'을 말한 사람은 내 사촌 남동생이다. 지금까지 내 글을 읽은 사람들은 알 것이다. 내 이름은 Ryla Mae Chamos(라일라 메이 차모스)이고 풀네임 중에서 앨리스가 없다. 앨리스는 고향에서만 쓰는 내 별명이다. 당연히 지어준 사람은 아까 나를 '앨리스'라 부른 사람이다. 사촌 남동생은 어릴 때부터 나를 따르던 동생이었다. 그가 지어준 별명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주인공을 뜻한다. 내가 고향에 갔다 온 추억을 한여름 밤의 꿈같다고 비유했다면 사촌 남동생은 그것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로 비유했다. 자신과 다른 세계로 떨어진 앨리스는 그 세계를 이상하게 여겼다. 사촌 남동생은 그런 앨리스를 보고 나를 떠올랐나 보다. 가만 생각해보면 틀린 비유가 아니다. 나는 한국에서도 외국인이고 필리핀에서도 외국인이다. 낯선 세상의 앨리스가 된 것과 비슷하다.


왜 갑자기 나를 앨리스라 불리는 사촌 남동생을 언급했는지 궁금할 수 있다. 이유는 당연히 있다. 고향에 있었던 일은 나에게 인생의 터닝포인트다. 그 터닝포인트에 중요한 인물이 있었는데 그 인물이 바로 나를 앨리스라 부른 사촌 남동생이다. 그가 영화나 드라마처럼 엄청나게 큰일을 한 것이 아니다. 그저 내게 세 마디를 했다.


"누나가 없으면 난 정말 울 거야."

"우리가 누나를 잃을 뻔했어."

"기다리고 있었고, 앞으로도 기다릴 거야."


첫 번째인 "누나가 없으면 난 정말 울 거야."는 사촌 남동생이 내 우울한 과거를 듣고 내뱉은 한마디였다. 가족이 죽으면 누가 안 울겠는가. 당연히 울지. 그런데 나는 '내가 죽으면 아무도 신경 쓰지 않겠지. 내 편 없으니까. 그래도 부모님은 울겠지."라는 우울한 생각을 했기 때문에 사촌 남동생이 내뱉은 한마디를 듣고 감동했다.


'아, 내가 죽으면 울어줄 사람이 있긴 있구나.'


사촌 남동생은 거기까지 끝나지 않았다. 그가 내 이야기를 다른 사촌에게 한 번 들려주는 것이 어떤지 제안했다. 나는 처음에 망설였다. 다른 사촌들도 나를 이해해줄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어서 머뭇거렸다. 사촌 남동생은 다른 사촌들도 충분히 이해해줄 수 있다고 설득했다. 그의 끈질긴 설득 끝에 나는 내 이야기를 다른 사촌들에게 들려주기로 했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사촌 남동생이 한마디를 했다.


"우리가 누나를 잃을 뻔했어."


순간 속으로 '뭐를 잃을 뻔했다고?' 하며 놀랐다. 더 놀라운 건 내가 이야기를 끝난 이후에 일어났다. 다른 사촌들이 '와, 진짜 Ryla를 잃을 뻔했네.' 하는 반응을 했고 그중 울컥한 사람도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익숙하지 않은 묘함을 느꼈다. 낯선 이방인으로 오래 살아서 그런지 '우리 사람이 갈 뻔했어.'라는 반응을 보고 당황했다. 이게 당연히 끝이 아니다.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사촌 남동생이 이런 말까지 했다.


"누나, 우리 늘 기다리고 있었고, 계속 기다리고 있을 거야."


기다리고 있겠다니. 그런 말을 하면 당연히 미련을 버리기 힘들다. 그냥 해본 소리겠지. 그렇겠지. 그런 마음으로 받아들였는데 사촌 남동생은 마지막으로 날 할 말 잃게 만들었다.


'누나, 잊지 마. 누나는 우리 가족 사람이야.'


내가 어떤 사람이든 나는 그의 가족이라는 뜻이다. 사촌 남동생뿐만 아니라 다른 가족들도 간접적으로 그런 의미가 내포된 말을 했다. 그 말을 듣고 내 안의 두려움이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나는 고향 사람이 아닌 외국인이면 가족의 곁에 있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가족에게 '너는 우리 가족이야.'라는 말을 들었다. 가족들은 내가 어떤 사람이 되든 나를 가족으로 받아들일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그들과 멀어지려고 했다. 속으로 큰일 났다고 외쳤다. 포기하려던 애정이 되살아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애정, 이 그리움을 포기하지 않고 한국 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내 안에 타오르는 애정을 억누를지 아니면 내버려 둘지 생각했다. 가족들이 주는 따뜻한 관심을 믿고 계속 그리워해도 될까. 아니면 역시 그만둘까. 짧은 고민 끝에 내가 끌리는 대로 하기로 했다. 가족들의 애정을 믿기로 했다. 나는 그 애정을 받고 한국으로 돌아갔다.



결국 연장된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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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이라는 짧은 기간이 끝난 후 한국으로 돌아갔다. 인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내 안의 그리움 버튼이 바로 눌러졌다. 벌써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그래도 나는 참아야 했다. 나에게 새 학기라는 임무가 주어졌기에 '여름에 종강하면 고향 간다!'라는 생각으로 버텨야 한다.


이로써 어릴 때부터 간직했던 그리움을 다시 연장했다. 한국으로 돌아갔을 때 속 시원함과 그리움을 느꼈다. 당연히 제일 큰 감정이 그리움이었다. 그 그리움이 큰 나머지 인천 공항 도착하자마자 굉장히 삐진 표정으로 서울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더 오래 있고 싶은데 오래 있을 수 없으니 삐진 것이다. 다시 집에 도착했을 때 나는 새 학기를 준비하면서 USB 앨범에 있던 고향 사진을 살폈다. 고향 사진은 2016년에 찍은 사진이 아닌 옛날 사진들이다.


사진 속의 나는 정말로 행복했다. 카메라에 의식하지 않고 가족과 함께 있는 모습이 찍힌 사진에서 웃고 있거나 즐거워하는 표정이다. 사진을 보고 내가 무의식적으로 가족 바보로 살았음을 깨달았다. 가족 바보라서 누구나 할 수 있는 '보고 싶을 거야.', '기다릴 거야.' 같은 말을 가족이 해야 그 말뜻의 효과가 발휘되다. 이걸 보면 나는 어쩔 수 없는 가족 바보다. 우울한 상태로 고향에 갔는데 거기서 내가 알게 된 진실이 Ryla가 가족 바보라는 사실이 웃기다.


가족 바보라서 지금까지 고집을 부린 거라니. 가족 바보라서 외국인의 삶마저 부정했다니. 그래도 그것을 통해 문제의 원인을 찾았다. 기대 없던 고향 방문이 나에게 깨달음과 힐링을 주었다. 처음에 나만 그런 생각을 한 줄 알았는데, 고향 방문 이후로 친구들이 내게 그런 말을 했다.


"라일라, 예전보다 괜찮아졌네?"


나는 초반에 고향에 대한 소속감을 느끼기 어렵다고 언급한 적 있다. 고향 문화와 언어를 잘 몰라서 스스로 필리핀 현지인이라고 부를 수 없다고 했다. 고향에 가서 힐링받은 나는 여전히 필리핀 현지인이 아니다. 아직도 필리핀이라는 나라에서 소속감을 느끼기 힘든 상태다. 대신 가족에게 소속감을 느끼고 있다. 나는 한국과 고향에서 외국인이지만 가족 앞에서는 그냥 Ryla다. 가족에게 나는 그들의 가문 사람이다. 나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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