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학교 때 미친 짓을 했다. 미쳤다는 스케일은 자퇴나 퇴학을 불러일으키는 스케일이 아니다. 그 미쳤다는 스케일은 내 내면 안에서 일어난 스케일이다. 대학교 생활은 이 에세이의 제목인 '나를 잃고, 나를 찾다.' 중에서 '나를 찾다.'에 해당한다.
대학교 1학년 때부터 나 자신과 싸움을 했고 졸업까지 나 자신을 되찾는 모험을 했다. 내가 쓴 에피소드를 모두 읽은 사람 중에 이런 생각을 한 사람이 있으리라 예상했다.
'이 사람 움직이는 시한폭탄 같은데?'
정답이다. 외국인이 되기 싫어서 6년 동안 침묵한 과거, 자기 자신을 부정하고 그러한 기억을 지우려는 태도, 낯선 세상을 보고 속으로 경악한 마음. 이런 마음과 태도가 합치면 움직이는 시한폭탄으로 변한다. 나는 내가 움직이는 시한폭탄이라는 사실을 의식하지 않은 채 대학 생활을 시작했다.
연세대학교, 그리고 나의 과거
국제 캠퍼스내 이름은 Ryla Mae, 유학생입니다.
입학하기 전에 송도에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했다. 나는 긴장감을 삼키고 대강단 문을 열었다. 그 안에서 신입생들의 어색함과 불편함을 느꼈다. 얼른 자리를 잡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스마트폰을 만졌다. '어색할 땐 역시 스마트폰이야.' 하면서 그 누구와 마주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이때 오리엔테이션 담당 선배가 출석을 부르기 시작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는 내 한국 이름인 '차미화'를 듣고 '네'라고 대답했고 고등학교 때 '라일라'를 듣고 '네'라고 대답했다. 대학교는 달랐다.
'Ryla Mae Chamos.'
한국어 발음의 '라일라 메이 차모스'가 아니라 'Ryla Mae Chamos'의 원어 발음을 듣고 속으로 움찔했다. 감회가 새로웠다. 차미화와 라일라로 살았을 때와 다른 기분이다. 그 다른 기분이 무엇인가. 다시 태어난 기분이다. 차미화로 9년 동안 살았다. 그리고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친구들이 나를 라일라 혹은 메이라고 불렀다. 한국에서 차미화와 라일라, 그리고 메이로 살았다가 이제야 Ryla(라일라)로 살게 되었다.
Ryla Mae Chamos. 그 이름을 듣고 진짜 학교 가는 기분이 들었다. 사람들이 그제야 나를 Ryla로 인식하는 것 같았다. 차미화와 라일라가 아닌 Ryla가 이제야 세상 밖으로 나온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대학교 생활은 라일라가 아닌 R와 Y가 발음되는 롸일라, Ryla로 처음 살게 되었다.
너도 외국인, 나도 외국인?
대학 생활은 나에게 '맞다, 나도 외국인이었지?'라는 깨달음을 주었다. 내가 소속된 학부는 외국인과 해외 생활을 오래 한 재외국민으로 구성된다. 한마디로 현지인을 찾기 힘든 외국인의 세계에 발을 들인 것이다. 정말 새로웠다. 그동안 현지인만 보았던 나는 나와 같은 외국인을 보았고, 나와 같은 한국인도 보았다. 그런데 나는 그들과 친해지는데 어려움을 느꼈다. 이유는 나 때문이다. 그들에게 문제가 없다. 내가 문제였다.
외국인 학우들과 친해지기엔 나는 완벽한 외국인이 아니었고, 재외국민 학우들과 친해지기엔 나에게 한국 정서가 있었다. 그렇다고 현지 한국인과 있으면 외국인 정서 때문에 힘들다. 웃기다. 나도 방금 썼던 문장들을 보고 '이게 뭐야, 미쳤어.'라는 생각을 하면서 웃었다. 지금의 나는 웃고 있지만, 그 당시 진심으로 환장할 것 같았다. 내가 도대체 누구와 친하게 지내야 하는지 알 수 없어서 인간관계 형성 부분에서 앞길이 막막했다.
프롤로그에서부터 지금까지의 글을 읽으면 내가 왜 환장하는지 눈치챌 수 있다. 2살 때 이민 생활을 오래 한 나는 정체성에 관한 내적 갈등에 시달렸다. 처음에는 보는 세상이 하나로 보였다. 난 구별 없이 세상을 보았다. 그런데 나중에 사람들은 내가 외국인이고 내가 사는 곳이 현지인들의 세상임을 가르쳤다. 그리고 내 고향이 비행기 4시간 거리의 필리핀이라는 곳임을 알려주었다. 어린 나이에 그러한 정보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나에게 '넌 외국인이야.'라는 뜻은 '넌 소속감을 느끼기엔 거리가 먼 사람이야.'라는 소리와 같았다. 내면에 한국 문화 50%와 필리핀 문화 50%가 들어 있는 외국인을 보면 어떤 나라 사람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는가. 국적으로 보고 '넌 필리핀 사람이야.'라고 할 수 있으나 '100% 현지인'이라는 기준으로 볼 때 그 어디에서 속하지 않는다. 외국인이라는 단어만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난 내가 외국인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인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나도 현지인들이 느끼는 소속감을 느끼고 싶은데 그럴 수 없다. 그러한 현실을 인정하기 싫어서 외국인이라는 나 자신을 부정했다. 부정하면 다 될 줄 알았으나, 역시 세상을 날 그렇게 두지 않았다. 부정의 끝은 결국 진실을 보는 것으로 끝났다. 대학교에 들어간 나는 다시 외국인의 세상을 마주하게 되었다.
대학교에 가면 나는 한국이 처음인 외국인 친구, 한국에 오래 살다 온 외국인 친구, 그리고 해외에 오래 살다가 한국에 귀국한 한국인 친구를 보게 된다. 방금 친구를 언급했지만, 이상하게 나를 소개하는 것 같다. Ryla Mae(라일라 메이), 한국이 처음이었던 외국인, 현재 한국 생활이 20년 이상인 외국인, 고향에서 재외국민인 사람. 그래서 같은 학부에 소속한 학우들과 친해지기 어려웠다. 그들을 보면 자꾸만 내 현실을 보게 된다. 한국이 처음이었지만 '외국인의 나라'로 인식하지 않았던 시절, 한국이 알고 보니 한국인들의 나라였고 나는 외국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시절, 그리고 외국인으로 살아가기 힘들어서 그 현실마저 부정했던 시절까지 떠오르게 된다.
난 이 모든 반응을 일시적인 반응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갔다. 누군가와 닮은 사람을 보고 '어? 닮았네?'하고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것처럼, 내 주변 환경이 내가 무시하던 현실을 닮아도 자연스럽게 넘어갈 거로 생각했다. 내가 이제 아이가 아닌 어른이라서 어른스럽게 넘어가고 자연스럽게 잊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내 의지가 그렇게 외쳤지만, 마음은 의지의 한마디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입학하자마자 송도 생활
새내기들은 1학년을 마칠 때까지 송도에서 대학 생활을 보내야 했다.
국제 캠퍼스 기숙사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기숙 생활이라니. 살면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전개였다. 부모님은 기숙사 내부를 보고 감탄하는 동안 나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그들을 따라갔다. 시설이 좋으면 뭐 해. 같이 사는 사람이 중요한데. 신입생들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3인실을 사용하게 된다. 낯선 환경에 두 명의 룸메이트. 난 낯선 환경에 혼자 살 준비가 안 되었는데 두 명의 낯선 사람과 1년을 보내야 했다. 굉장히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내가 앞으로 살게 될 방에 들어가서 자리를 잡았다.
기숙사 방 내부두 명의 룸메이트를 만난 순간 안도를 했다. 생각보다 좋은 사람들이었다. 분명 좋은 사람인데 내가 낯선 환경의 개복치라서 적응하는 데 한 달 넘게 걸렸다. 시설도 좋고, 좋은 룸메이트에 새로운 친구들도 생겼는데 그런 좋은 환경에 적응하지 못했다. 오히려 정신적인 체력이 점점 줄어드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낯선 환경에 있으면 체력이 쉽게 떨어지고 성격이 예민해진다. 그 상태로 아무런 일이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짓고 사니까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대학 생활을 하면 동아리 모임, 조별 활동 등 팀워크와 관련된 활동까지 해야 하는데 정신이 온전치 않은 상태로 그러한 활동들을 소화했다.
정말 힘들면 학점에 큰 영향이 없는 동아리 활동이라도 멈춰야 정신적으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간이 있을 텐데. 이런 생각을 하는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내가 혼자 있는 시간, 특히 혼자서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지면 더욱 위험해진다. 혼자 있는 시간을 갖게 되면 나를 괴롭히던 '무서운 현실'을 마주해야 한다. 그 당시 심적으로 지친 상태여서 무서운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래서 그 현실을 잊게 해주는 다양한 활동들을 계속했다. 결국, 이러한 환경을 참다가 결국 2학기 때 일어나면 안 되는 일이 터지고 말았다.
뒤늦게 깨달은 우울증
10월과 11월 사이에 내 몸이 우울증을 감당하고 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 확실히 알고, 무엇을 원하는지 확실히 알아야 무너지지 않은 사람이다. 나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지만 왜 그것을 원하는지 몰랐다. 혹은 기억하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내가 누구인지 확실히 알지 못했다.
차미화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 초등학교의 차미화는 외국인의 삶을 부정하는 아이였고 중학교 때 차미화는 뒤늦게 자신의 현실을 깨닫고 낯선 세상의 사람처럼 되려고 했다. 라일라가 누구인지도 알고 있다. 라일라는 고등학교의 Ryla로 차미화로부터 해방되어 낯선 세상의 사람처럼 살고 있었다. 그런데 Ryla는? Ryla는 누구지?
나는 차미화로 살았던 인생이 마음에 안 들었다. 6년 동안 침묵하고 고집만 부리는 그런 아이였는데 그 모습이 창피하고 수치스러웠다. 그래서 고등학교 되자마자 그 이름과 존재를 머릿속에 지웠다. 라일라를 살았을 때 그나마 모든 것이 괜찮다고 생각했다. 차미화를 지우고 라일라로 살아온 후 Ryla로 살고 있다. 어두운 과거를 가지고 있지만, 끝에 Ryla로 살게 되었으니 나쁘지 않다. 나쁘지 않은 인생이다. 괜찮다. 그런 식으로 나 자신을 토닥였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모든 것이 괜찮다고 생각한 내 마음이 착각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진정으로 내가 억누르고 있는 존재가 차미화가 아닌 Ryla라면? 방금 생각했던 것이 틀린 말이 아닐 수도 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나를 Ryla라고 부르면 익숙하지 않은 기분이 들었다. 차미화로 불릴 때와 비슷하지만 다르다. 차미화는 낯선 기분을 들게 하지만 Ryla는 아니다. 그냥 익숙하지 않다. 그동안 Ryla로 살아가는 기간이 비교적 짧아서 내 본명인데도 익숙하지 않다. 내 이름인데 이름 같지가 않다. 9년의 차미화, 3년의 라일라. 기간조차 가늠하기 힘든 Ryla로 살아온 인생.
'그 이름을 오래 달고 살면 하나의 자아가 된다.'
Ryla로 살다가 오랜만에 나를 '미화야!'라고 불렀던 친구들을 만나게 되면 Ryla에서 차미화로 변한다. 반대로 누군가가 나를 '라일라'라고 부르면 고등학교의 라일라가 다시 살아난다. 내 반응을 보고 이름 하나에 자아가 생길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대학 때 Ryla라는 소리를 들으면 어색한 감정과 함께 '맞다. 이게 원래 내 이름이었지?'라는 생각을 늘 했다. 문제는 Ryla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냐는 것이다. 차미화로 변하면 차미화의 성격과 특성이 나오고 라일라로 변하면 라일라의 성격과 특성이 나온다. 그런데 Ryla로 변하면 혼란스러움이 나온다.
세상을 다채롭게 바라보고 있는 줄 알았는데, 눈을 떠보니 아직도 흑백이었다.나는 원래 어떤 사람이었지? Ryla였던 내가 어떤 사람인지 기억하려면 초등학교 이전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 기억이 흐릿했다. 기억이 없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흐릿하다. 최초의 기억 중에 제일 명확한 기억은 외국인의 삶을 싫어하는 차미화의 모습이다. 그 이전의 Ryla가 어땠는지 알 수 없다. 그래서 혼란스럽다.
잃어버린 꿈
나는 내 세계를 표현하고 싶어서 작가의 꿈을 키웠다. 중학교 때는 차미화의 세상을 표현했고 고등학교 때는 라일라의 세상을 표현했다. 대학생이 된 나는 당연히 Ryla의 세상을 표현하면 된다. 그게 가능한가. 이미 Ryla가 누구인지 모르는 상태인데. Ryla의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 몰라서 글을 쓸 때마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이를 악물고 글을 썼지만 갈 길을 잃은 글만 방출했다.
결국 글 쓰는 활동을 중단했다. 예전 같으면 시간이 없어도 하나의 스토리를 완성했는데 그때의 나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우울함이 깃든 슬럼프에 빠지고 말았다. 슬럼프를 극복하기 위해 좋은 작품을 감상하고 내가 왜 글쓰기를 좋아하는지 되새기는 방법을 썼다.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왜 작가가 되고 싶은가.'
차미화, 라일라, 그리고 Ryla. 세 이름이 모여서 그 질문을 받으면 과연 똑같은 대답을 했을까. 내 이름들이 만약 살아있는 사람이었다면 이런 장면이 펼쳐질 것이다. 꿈을 찾는 과정에도 끼어들지 못했던 Ryla가 발끈하면서 '내가 어떻게 알아? 나 말고 저 애들이 알고 있겠지!'하고 차미화와 라일라를 가리킬 것이다. 두 사람은 '그냥 이 길이 내 길인 것 같고 내 세상을 잘 표현하니까.'라는 대답을 하게 된다. 맞는 말인데 나는 이제부터 Ryla의 세상을 표현해야 한다. 차미화와 라일라에게 'Ryla의 세상을 어떻게 표현하지?'라는 질문을 하면 두 사람은 침묵하게 된다. 차미화와 라일라에게 도움이 안 되는 대답을 얻었으니 질문한 사람인 내가 미쳐갈 수밖에 없다. 애초부터 차미화, 라일라와 Ryla를 나눠서 바라보는 것부터 정상적인 일로 보기 힘들지만.
결국 터져버린 Ryla의 분노
초등학교 시절은 차미화가 아닌 Ryla가 차지했어야 했다. 중학교 때 꿈을 찾은 과정은 차미화가 아닌 Ryla의 경험이었어야 했다. 그렇게 되면 고등학교 때 Ryla는 '라일라' 혹은 '메이'로 불릴 때 큰 불만이 없어야 했다. 내 또래들은 청소년 때 자신만의 세상을 깨닫고 대학교 때 자신의 세상을 확장하고 있을 텐데, 나는 원래 내 세상의 주인인 Ryla를 되찾았다. Ryla인 상태로 세상을 확장하기엔 불안정한 상태였다. 세상을 확장하기 전에 Ryla의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 알아야 한다. Ryla의 세상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있긴 하다. 과거의 기억을 떠오르면 된다.
Ryla로 살았던 기억을 모두 꺼내면 남들처럼 세상을 확장할 수 있는데 난 그 과정마저 쉽지 않다. 초등학교 이전, Ryla로 살았던 기억은 흐릿한 상태다. 그럼 학교 끝나서 집으로 돌아가면 Ryla가 되는 것이 아닌가. 학교 밖으로 가면 바로 Ryla가 되는데 그때의 기억이 있지 않은가. 내 글을 읽은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그때 그 기억을 떠올랐다. 더 심한 결과가 나왔다.
그동안 부정하고 애써 무시해왔던 Ryla의 상처들이 밖으로 나왔다. 외국인으로 살면서 느꼈던 외로움, 낯선 세상을 마주해야 하는 고통, '나'라는 사람을 보는 타인들의 시선, 그런 아픔을 인정하지 않고 잊으려고 했던 나 자신. 내가 그 상처들을 치유하지 않고 그대로 방치했으니 Ryla가 터져버린 것이다.
자아가 온전치 않았던 상태로 낯선 환경의 두려움과 낯선 사람들과의 인연을 감당하니까 정신적인 체력이 바닥났다. 아직도 내가 정확히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는데 그 상태로 대학 생활을 감당해야 한다. 그래서 너무 힘들었다. 그 힘든 감정이 우울증으로 변했다. 내 안의 Ryla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내게 외쳤다.
'Ryla로 살기 힘들어. '나'로 살기 힘들어. 이제 그만할래.'
말 없는 외국인에서 말하는 외국인으로 변한 내 모습을 보고 시련을 극복한 줄 알았다. 차미화에서 라일라로 이름을 바꿨을 때 드디어 나 자신을 되찾을 줄 알았다. 그리고 마지막 대학교 들어가면서 Ryla로 살아갈 때 난 이제야 모든 것을 되찾았다고 생각했다. 난 내가 떳떳한 외국인으로 변했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을 극복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난 극복한 것이 아니라 내 아픔을 무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픔을 기억에서 지우려고 했다. 그 방법이 나를 치유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래, 극복했으면 처음부터 낯선 환경과 낯선 사람을 보고 부정적인 반응을 하지 않았겠지.'
아직도 두려움을 느끼고 있고, 트라우마를 벗어나지 못해서 여전히 인간 개복치로 살고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후 자존감이 낮아졌다. 성장에 성공했다고 생각했는데, 실패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나 자신에게 부끄러웠다. 나 자신이 수치심을 느꼈다. 나 자신에게 죄책감이 들었다. 나 자신이 분노를 느꼈다.
위험한 악몽
정신적으로 힘들고 지쳤지만 내가 극복해야 하는 현실이 따로 있어서 참아야 했다. 신입생 때, 등록금의 전액을 마련하기 힘들어서 장학금 받으려고 학업 성적에 집중했다. 다행히 기적적으로 1학년 때 50% 이상의 장학금을 받았다. 다음 학기까지 장학금을 받고 싶다면 좋은 성적을 유지해야 한다. 이러한 조건 때문에 성적을 유지하지 못하면 다음 학기를 다닐 수 없다는 불안감에 시달렸다.
장학금 때문에 남들처럼 즐거운 새내기 생활을 하기 어려웠다. 여유로운 시간이 있어도 불안감 때문에 즐겁게 지내기 힘들었다. 자아 충돌과 불안정한 현실을 모두 감당하려고 했으니 당연히 미칠 수밖에 없다. 정신 상태가 온 전지 않아서 불길한 꿈을 꾸기 시작했는데 그중에서 잊을 수 없는 꿈이 있다.
눈 앞에서 나와 똑같이 생긴 여자가 있었는데 그녀가 소름 끼치게 웃었다. 난 그녀를 보자마자 '그녀를 죽여야 내가 살아남아.'라는 생존본능이 일어났다. 이유를 알 수 없다. 그녀를 내버려 두면 내가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살기 위해 두 손으로 그녀의 목을 잡고 죽이려고 했다. 또 다른 나는 그 상태로 괴로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향해 웃으면서 이런 말을 했다.
'너 때문에 일어난 거잖아. 이게 다 네 탓이야.'
그 말을 듣자마자 꿈속에서 깨어났다. 나는 눈 뜨자마자 울거나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그저 기분이 나빴다. 그 후로 기분 나쁜 꿈이 일어났다. 어두운 무언가에게 쫓기는 꿈을 자주 꾸게 되었다. 가끔 마녀가 나타나서 날 죽이려고 달려들기도 했다. 귀신과 괴물 꿈은 당연히 일어났다.
위험한 용기
기분 안 좋을 때마다 산책했다. 산책 장소는 늘 송도 캠퍼스 옆에 있는 강가였다. 우울증이 심해지고 나쁜 꿈도 자주 일어나서 산책을 자주 했다. 원래 산책만 하려고 나간 거였는데, 나도 모르게 차가 지나가는 대교 위에 서게 되었다. 우울증 걸린 사람이 대교로 향했다. 모두가 생각하는 그 불안한 장면이 맞다. 나는 죽으려고 했다. 홀린 듯이 대교까지 가게 되었고 지나가는 강가와 아름다운 도시의 밤을 보면서 생각했다.
'뭔가, 죽기 좋은 풍경이다.'
이상하게 무언가를 끝내고 싶은 용기가 생겼다. 내가 죽든 생존하든 상관없었다. 그저 몸을 던져서 내 아픔을 표현하고 싶었다. 큰 용기를 일으키기 전에 다시 생각했다. 난 왜 이러고 있는지. 왜 이런 용기가 생겼는지. 외국인의 삶이 싫어서? 그동안 Ryla가 부정당했기 때문에? 희망이 이제 안 보여서? 이런저런 질문을 하다가 속으로 기도를 했다.
'내가 살아가야 할 이유가 있다면, 그 이유를 보여주세요.'
나는 기도를 한 후 다시 강가를 보았다. 신기하게 죽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마법처럼 갑자기 내게 희망의 빛이 내려졌거나 마음속에 빛의 희망이 자라는 일이 없었다. 그냥 '오늘은 죽는 날이 아닌가 봐.'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기숙사로 돌아갔다. 난 처음에 변심이 생겨서 일어난 일이라고 확신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게 아닌 것 같았다. 이유는 그 변심 이후에 일어난 일 때문이다.
원래 1년의 송도 생활이 끝나면 겨울 방학 때 고향으로 가게 된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돌아가는 것이 아닌 휴식의 의미로 한 달 동안 고향에 지낼 예정이다. 내가 정신적으로 망가진 상태여서 한국에 혼자 남으려고 했지만, 부모님이 그런 내 의견을 반대했다. 결국 난 대학 생활을 마친 후 가기 싫은 고향에 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