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원과 유치원의 차이점
꽃 피워가는 존재와 꽃이 지는 존재에 대한 관심의 차이일지도 모른다.
요양원에 대해 한참 고민하던 내게, 옆자리 선생님이 들려준 말이었다.
이곳에서는 아빠가 부디 잘 지냈으면 좋겠다.
노인공동생활가정에서 요양원으로 거처를 옮겼다. 입구에는 건강보험공단 최우수 등급을 받았다는 자랑이 걸려있어 신뢰가 갔다. 이곳은 5층 건물 전체가 요양원으로 운영되고 있었고 입소한 분들도, 케어 인력도 많았다. 홈페이지에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에 참여하는 어르신들의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육체가 건강했던 70대 초반의 아빠에겐 이곳이 더 잘 맞겠지 싶었다.
요양원 입소 첫날. 노래교실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노래 부르기 좋아했던 아빠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한껏 목소리를 깔고는 진성의 ‘안동역에서’ 노래를 불렀다. 박수에 힘입어 앙코르 곡으로 신유의 ‘시계바늘’을 불렀다. 거한 환영의 박수였다.
아빠가 새로운 요양원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던 동생은 요양원에 양해를 구하고, 일주일 동안 같이 생활했다. 운영하던 매장 일을 거의 멈춰둔 채 본인의 도시락을 싸들고는, 낮에 요양원에 가서 아빠를 돌보고 요양원 취침 시간에 집으로 돌아왔다.
동생이 예상치 못한 얘기를 했다.
“언니.. 근데 여기는 밥을 쥐똥만큼 밖에 안 줘. 김치도 막 조각을 내서는 이만큼만 줘.”
“노인 분들이 소화를 잘 못 시키니깐 그런 거 아니야?”
“... 그래도 너무 심해.”
점심시간에 맞춰 같이 방문을 했다. 식탁 앞에 선 아주머니가 철제 식판에 음식을 나누어 담고 있었다. 형체를 알 수 없는 벌건 색 작은 뭉텅이와 김치, 나물 등이 반찬 칸을 다 채우지 못하고 휑하게 담겼다. 국그릇은 멀건 국물이 절반 정도까지만 채워졌다. 서로 말이 없었다. 식탁에 앉은 할아버지들은 말없이 식사를 했다. 식탁 위는 식사도, 대화도 양껏 채워지지 못했다.
기저귀를 찬 채 방안에 누워계시는 할아버지들이 보였다.
똥오줌을 줄이기 위해서. 식사량을 줄여서 똥오줌 횟수를 줄이는 것이 많은 어르신들을 돌봐야 하는 요양원 입장에서는 편했을 것이다.
어느 날부터 아빠가 사용하는 방 안의 화장실 휴지가 치워져 있었다. 동생은 색칠공부 종이로 아빠가 뒤처리를 해둔 것을 보았다. 자꾸 많은 양의 휴지를 변기에 넣어버려서 휴지를 치웠다고 했다. 그렇다면 화장실에 갈 때 곁에서 사용할 만큼의 휴지를 챙겨줬어야 했지만, 도울 사람은 없었다. 그럼 어떻게 뒤처리를 할 거라 생각을 한 걸까.
이후, 일주일 만에 마주한 아빠의 입에서는 처음 맡아보는 고약한 냄새가 났다. 양치질을 거부하니 며칠째 포기한 모양이었다. 옷도 양말도 여러 개를 겹쳐 입고 있었다. 발에서 심한 냄새가 났다. 꾀죄죄한 몰골을 하고 우릴 천진하게 바라봤다.
'다수의 인원을 돌봐야 하는 요양원의 현실 속에서 세세한 건 케어를 할 수 없는 거겠지. 이런 부분을 더 요구해도 괜찮은 걸까?'
아빠를 모시는 게 힘들어서 내가 선택했던 일이니깐. 요양원에 돈을 내고 서비스를 이용함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을 스스로 모시지 못했다는 자책과 죄책감으로 그 역할을 대신해주는 요양보호사분께 이것저것 요청하기가 어려웠다.
매체에서 요양보호사 1인당 돌봐야 하는 인원수가 많다는 걸 누누이 봐왔다. 요양원의 현실을 변치 않는 기준으로 두고 그곳에 들어간 아빠가 맞춰야 한다는, 체제에 순응적인 내 생각 때문이기도 했다.
답이 없어 보이는 아빠의 치매 증세에 대해 눈감아 버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내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에서 관리가 어렵다는 이유로 화장실에 휴지를 모조리 없앴다면, 아이들이 대소변을 자주 보는 걸 줄이기 위해 밥을 개미 코딱지만큼 주는 걸 알았다면, 나는 당장 유치원에 이게 말이 되냐며 항의 전화를 했을 것이다. 내 아이를 대신 봐준다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가지며 위축되지 않았을 것이며, 무엇이 잘못이었는지 명쾌하게 답을 내서 요청했을 것이다.
부모가 어린 자녀에게 쏟는 사랑과, 자녀가 아이가 된 부모에게 쏟는 사랑이 다르기 때문일까.
죽음에 가까이 가는 존재에 대한 체념과 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는 아빠는 그렇게 내가 머뭇거리는 사이 그 불편들을 홀로 감내했다.
건강보험공단 최우수 등급 요양원이라는 명패만 봤다면, 일주일에 한 번 면회실에서 1-2시간만 만났다면 몰랐을 것이다. 요양원 홈페이지에 올라온 식단만 봤다면, 요양원에서 보내준 웃고 있는 아빠의 사진만 봤다면 몰랐을 것이다.
대화가 없는 적막함을, 식단과 일치 여부를 구별할 수 없을 만큼의 적은 양의 국 건더기를, 양치질을 하지 못해 나는 고약한 입냄새를, 번지르한 건물 안에서 색칠공부 종이로 뒤처리를 하고 있는 상황을. 물을 달라 요청할 수 없어 화장실에서 수돗물을 마시고 있는 상황을.
“내가 아빠랑 사는 게 지옥 같아서, 아빠를 요양원에 보냈는데... 이젠 아빠가 지옥에 있는 것 같아.”
아빠가 떠난 집에서 동생은 울었다.
치매 증세에 따라 누군가에게는 잘 맞는 곳이였수도 있다. 우리 아빠의 증세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방안에 개인 물병을 두게 해 달라는 요청조차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쉽게 통제되는 시스템에서는 허용될 수 없는 것이었다.
한 달도 못가 우리는 요양원에서 아빠를 집으로 모시고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