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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뭉클 Oct 27. 2022

요양원에 아버지를 두고 돌아섰다


차에 탄 사람 중 아버지만 목적지를 몰랐다. 짠짠짠자라~ 휴대폰에서 ‘안동역에서’ 노래가 연신 재생 중이다. 아버지 손을 붙잡고 있는 동생은 노래 장단에 함께 박수를 치며 포도맛 나는 달짝지근한 젤리를 입에 넣어주었다. 오랜만에 차를 탄 아버지는 오물오물 젤리를 씹으면서도 머리 위 손잡이를 오른손으로 꽉 붙들었다.      


벌써 다섯 번째 입소 날이다. 어젯밤 수건, 속옷, 티셔츠에 노란실로 아버지 이름을 수놓았다. 종종 식탁에 앉혀서 머리를 맞대고 대화 나누는 작은 인형도, 숫자 세기 놀이를 하는 젠가, 벽에 붙어두었던 알파벳 교구도 돌돌 말아 큰 가방에 넣었다. 어린 자녀를 멀리 떠나보내는 부모의 심정이 이와 비슷할까. 


최근에 머물렀던 요양원은 약을 많이 써서 몸에 이상이 왔는데도 모른 채 했다. 요양원 측에 항의를 했다가 돌려 말했으나 결국 나가라는 이야기를 듣고 퇴소했다. 동생이나 내가 직장을 관두고 간병을 할 수 없는 상황이기에 또 다른 요양원을 찾았다. 갈 곳이 마땅치 않았다. 치매가 일찍 와서 뇌의 나이보다 신체나이가 더 젊은 남자 어르신, 게다가 폭력성이 있다면 요양원 기피대상 1순위이다. 동생이 치매 정보를 나누는 인터넷 카페에서 한 요양원을 찾았다.      


춥다. 남편이 입던 검은색 노스페이스 파카를 입은 아버지는 옷에 파묻혀 더 작아 보인다. 트렁크에서 큰 가방 두 개를 꺼내 바닥에 내려놓았다. 남편은 양손에 가방을 나눠 들고 앞서 걸었다. 아버지 손을 붙잡고 동생이 뒤따랐다. 나는 종종걸음으로 동생을 앞질러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코로나로 인해서 생활실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고 했다. 이전 같았으면 요양원에서 같이 시간을 보내다가 저녁쯤 일하러 간다하고 인사하고 나왔을 텐데, 오늘은 로비에서 헤어져야 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한 요양보호사님이 어서 타라고 손짓을 하고, 다른 한분은 상냥하게 팔짱을 끼고 같이 가자 끌었으나 버티고 섰다. 아버지는 우리와 떨어져 혼자 엘리베이터를 탈 생각이 전혀 없었다. 실랑이가 한참 벌어졌지만 요지부동이다.      


잠깐만 같이 올라가겠다고 부탁했다. 딸이 엘리베이터를 타자 아버지도 그때야 안심한 듯 발을 뗐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겨울의 햇빛 냄새 나무 냄새는 모두 휘발되고 둥글어진 공기가 들어왔다. 거실에 앉아있던 할아버지 할머니의 몇몇 시선이 잠잠하게 꽂혔다.       


중앙 식탁에 앉았다. 아버지는 공손하게 앉아 접대용 빈 웃음을 짓고 있다. 간식으로 챙겨 온 조청유과 과자를 꺼내 봉지를 펼쳤더니 구수하고 달큼한 냄새가 올라온다. 단 음식을 좋아하는 아버지에게 과자 하나를 입에 넣어 주어 주니 아삭아삭, 고맙다며 맛있게 먹는다. 곁에 요양보호사님이 과자를 챙겨주었다. 아버지가 과자에 한눈이 팔려있는 사이 쏜살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로비로 내려왔다. 


사무실에 들어가 입소 관련 서류를 작성했다. 여러 장의 서류에 사인을 하며 둘러보니 정수기 옆 CCTV 모니터가 생활실들을 비추고 있다. 화면 하나에 아버지의  정수리가 보였다. 우리가 곁에 없는지도 모르고 아직까지 과자를 열심히 집어먹고 있다.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이 장면이 나를 줄곧 따라다니며 아프게 할 줄은.     


조청유과를 입에 넣고 맛있다며 웃던 아버지의 얼굴, 잽싸게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뱉었던 숨, 그건 안도의 숨이었다는 걸. 말을 약간 더듬으며 서류작성을 돕던 사무실 직원의 음성, 하얀색 사무실 벽, 청색 CCTV 화면, 클로즈업되어 보였던 아버지의 정수리.   


화면 속 아버지의 모습을 눈이 아닌 심장이 보는 것 같았다. 


이만하면 되었다고 말하고 싶다. 충분히 떠올리고 아파했으니 그 기억은 휴지통에 갖다 버려도 된다고, 나도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서 그랬으니 그만 놓아달라고. 그렇게 아버지를 두고 오는 게 아니었는데 내가 잘못했다고.      


그렇게 사정해도 별 소용이 없다.   

   

기억을 붙잡아야 하는 아버지 곁에 나는 지우고 싶은 기억들이 차곡차곡 쌓여간다. 





- 2021년초의 기억






*대문사진 출처 : 마음건강길 https://www.mindgil.com/news/articleView.html?idxno=69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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