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우리의모든날들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담은 그림책 <우리의 모든 날들>에는 (놀랍게도) 우주선이 등장합니다.
이렇게요.
반전이라면 반전일 수 있는 이런 (놀라운) 사실을 꺼내서 보이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 책에 "우주선이 나온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게 있거든요.
바로 이 장면에서 우주선이 처음 등장하는 게 아니라는 거.
<우리의 모든 날들>을 처음 보면 이런 느낌이 드실 겁니다.
'예쁘네.' '색감 좋네.' '시간의 흐름을 표현했네.'
맞습니다. 이 책은 예쁘고, 색감이 좋으며, 한 공간의 변화를 섬세하게 담아낸 작품이죠.
그런데 이게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이 이 책을 만든 편집자를 애타게 합니다. 볼수록 새로운 것이 보이니까요!
먼저 우주선부터 얘기해볼게요.
아래는 이 책의 인쇄 감리날, 우연히 접한 뉴스입니다.
뉴스의 제목부터 자막의 문구까지, 마치 이 책 <우리의 모든 날들>과 연결된 느낌을 받았는데요,
이 뉴스를 보고 다시 위의 그림책 장면들을 보시겠어요?
어떤가요, 아까는 보이지 않던 '무언가가' 보이시는지. 찬찬히 보시고 꼭 "그것"을 발견하시면 좋겠네요.
+
사실 그림책은, 모든 사람에 따라, 그날 기분에 따라, 어떤 상황이냐에 따라, 혼자 보냐 여럿이 보느냐에 따라, 저마다 다 다르게 다가오는 책입니다. 그러니 이미 만들어진 그림책을 어떻게 느끼든, 그건 독자의 몫인 거죠.
이런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두 팔을 걷어붙이고 "작지만 중요한 그림책 tmi" 같은 글을 쓰는 이유는, 그렇습니다, 제가 이 책을 너무너무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모든 날들>처럼 이야기에 여백이 많은 그림책을 두고 "어렵다"고 느끼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미지가 예뻐서 넘겨 보긴 했는데, 내가 이 책에서 뭘 느껴야 하는지 한번에 딱 들어오지 않는 거죠.
조금 더 애정을 가지고 뒤적여봐도 '뭘 봐야할지' 모르시는 경우도 적지 않고요.
그래서 이런 책들에서는 어떤 부분을 신경써서 보면 좋을지 살짝 알려드리려고요. 저는 저처럼 이 책의 매력에 흠뻑 빠지는 분들이 많아졌으면 좋겠거든요.
<우리의 모든 날들>은 카메라로 계속 같은 공간을 찍은 장면들이 이어집니다. 밤낮도 변하고, 날씨도 변하고, 세월이 계속 흐르죠. 이런 변화의 흐름를 들여다보며 이런 질문을 던져봅니다.
'여기서 주인공의 집은 어디일까?'
힌트는 "연기"입니다. 굴뚝에서 연기가 난다는 건 거기서 사람이 생활한다는 얘기니까요.
그럼 어디서 연기가 나는지 살펴볼까요?
나무에 가려져 잘 보이지는 않지만 작가는 첫 장면부터 굴뚝에 연기를 피어올립니다.
'여기가 주인공의 집'이라고 힌트를 주는 거죠.
이제부터는 연기의 흐름을 따라가 봅니다. (당연히 모든 장면에 연기가 등장하지는 않습니다^^)
아래의 세 장면을 보시면, 굴뚝에 연기가 나는 집이 바뀌어요.
친절하게 설명을 드리면 첫 번째 집은 주인공이 태어나서부터 살던 집이고, 두 번째 집은 주인공이 고향에 돌아와서 사는 집입니다. (글과 그림을 맞춰가며 보면 이런 부분을 파악할 수 있지요)
그렇다면 세 번째 장면은...?
아마도 한동안 비워져 있었을 집에 누군가가 들어와서 살게 됐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이런 부분을 감안해서 그림책을 보시면 더욱 다양한 느낌을 받으실 수 있어요.
저는 나란한 두 집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면서 이건 단순히 '연기'가 아니라 가까이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온기'라고 느꼈습니다. 왜 연기가 온기처럼 느껴지는지는 직접 책을 보시면 알 수 있을 거예요.
+
이 책에서 절대 놓치면 안 되는 것을 하나만 꼽으라면 그건 바로 '무덤의 변화'입니다.
아래의 그림들을 한번 보시겠어요?
이렇게 보여드리면 '아니, 이렇게 뻔한 걸 누가 못 찾아?'라고 생각하실 수 있는데,
이건 그림책 장면 전체가 아니라 한 귀퉁이만 부분만 자른 거라서, 혼자 책장을 쓱쓱 넘기다보면 잘 안 보일 수 있다는 게 함정입니다.
사실 이런 부분은 그림책 독서 경험이 많은 사람들도 단번에 찾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 너무 당연한 사실이지만 혹시 모르실까 봐 말씀드리자면 - 그림책은 한번만 보는 책이 아니잖아요?
처음에는 느낌대로 쓱쓱 넘겨 볼 수 있지만, 그다음부터 찬찬히 들여다보면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새로운 것들을 어떻게 발견하면 좋을지 구체적인 팁을 드릴게요.
앞서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에 대한 이야기 때도 그랬지만, 이 그림들은 '그림책 속 장면'이기 때문에 당연히 텍스트와 연결된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
무덤이 하나 더 생기는 장면 옆에는 슬픈 표정으로 화분을 들고 가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이때의 텍스트는 '모든 것이 텅 빈 것처럼 느껴졌다'입니다. 그리고 다시 마을 풍경을 들여다보면 이 사람이 손에 든 것과 똑같은 화분이 새로 생긴 무덤 위에 놓여 있습니다.
혹시나 이 의미를 놓칠까 봐 다음 장면에서는 '혼자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는 텍스트가 주어지죠.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내고 혼자가 된 사람, 그 사람 곁에 다가온 누군가가 있다는 이야기를 그림책은 이렇게 전달합니다.
시간이 흘러 무덤이 또 하나 생기고, 두 개의 무덤 위에 나란히 화분이 올려진 장면을 보면, 누군가가 이들을 추모하고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이 작품의 나레이터(화자)라는 점이, 제가 이 책을 출간한 이유랍니다.
+
보자마자 이해되는 이야기들의 미덕이 있습니다.
책을 만드는 입장에서 늘상 고려하는 것은 '가독성'이니 그런 작품들의 장점을 모를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한번 봐서는 그 의미를 잘 알 수 없는 책을 만드는 이유가 대체 뭘까요?
그건 제가 이렇게 찬찬히 들여다보는 순간을 '아름답다'고 느끼기 때문인 것 같아요.
구구절절 말로 다 설명하지 않아도 알게 되는 것들, 천천히 스미는 감동을 느끼는 순간들.
이것이 여백이 많은 그림책의 묘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미지가 말은 거는 그림책 <우리의 모든 날들> 이미 보셨다면 다시 한번 찬찬히, 아직 안보셨다면 보드라운 마음으로 꼭 한번 보시라 권하고 싶어요.
이 책을 통해 일상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내 곁에 있는 이들을 소중하게 여길 수 있는 힘을 얻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