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미정 Aug 08. 2023

06 너의 불안을 들켜라

테이크루트, <임포스터> 저자 리사손님의 웨비나 후기

prologue

해외, 이주, 여성. 이 세 가지 단어 중 내가 진짜로 이해했던 단어가 있었을까? 돌이켜보면 나는 20대 후반이 되도록 '해외'하면 '여행'이 떠올랐고, '이주'라는 단어를 입에 담아본 적도 드물었다. '여성'은 어떤가? 대수롭지 않게 여겼기에 낯설게 내 주위를 떠돌던 그 단어들은 2013년 유학생 부인 비자(F2)로 미국 출국을 앞둔 내게 날 선 두려움으로 찾아왔다. 비행기가 뜨고 내린 뒤, 나는 그렇게 해외 이주 여성이 되었다.

 

"잘 지내? 미국 생활이라니... 너 정말 부럽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친구들의 목소리가 더 이상 반갑지 않게 된 건 미국에서의 생활을 시작한 지 6개월이 채 되지 않아서였다. 영화에나 나올법한 화려한 미국생활을 즐기고 있는 그녀들의 상상 속 안미정과 현실 속 내 모습 간의 괴리가 커질수록 견디기 힘들었다. 그러나 어리석게도 그 누구에게도 나의 외로움을, 나의 두려움을 드러낼 순 없었다. '더' 잘 살기 위해 미국으로 떠나온 나의 포부와는 달리, 말 못 하는 어른이 되어 차가운 현실을 부정하기 시작한 것도 그때쯤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하루하루가 행복하지 않다고, 당장 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손을 부르르 떨다가 아주 좋은 가면 하나를 손에 넣었다. 그것은 F1 유학생 가면이었다.


가고자 했던 대학원에 보기 좋게 떨어진 뒤 함께 시험을 치른 타 대학원에서 좋은 조건으로 입학을 제안했을 때 나는 그것을 마다할 수 없었다. 당시의 나는 너무나 절실히 소속감이 필요했고, 나를 짓누르는 종합적 결핍의 무게와 무너진 자존감을 들어 올려 줄 필살기가 필요했다. 그리고 때마침 절묘하게도 나의 1촌이 찾아왔다. 여성이 이렇게 여성일 수 있구나 싶었던 고통은 멀리서 딸을 걱정하는 부모와 나눌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라 생각했고, 곁을 지켜주는 0촌에겐 이해받지 못한다고 오해했다. 그렇게 나는 해외, 이주,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도무지 가늠할 수 없어 유학생 가면에 목숨을 걸었고, 그러면서 흔들리는 양육자의 모습을 들키지 않기 위해 많은 날들을 마음속 깊이 묻어버렸다. 


지난 2022년, 나는 해외 이주 여성이 된 지 9년이 되었다. 근래에 자리 잡게 된 지역적 특성상 해외로 처음 이주 온 여성들을 만나 대화할 기회가 늘었는데 이야기를 나눌수록 낯섦보다는 그들과의 공통분모가 더 많이 드러나면서 지난날 꽁꽁 감춰뒀던 기억들이 내 안에서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다. 


"나도 처음에 두려웠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제 와서 그런 말을 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나 이제 가면을 벗을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 때쯤 나는 리사손 교수님의 <임포스터> 책을 읽게 되었다. 책에서는 임포스터 증후군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임포스터(남을 사칭하는 사람, 사기꾼이라는 의미) 증후군이란 자신은 남들이 생각하는 만큼 뛰어나지 않으며 따라서 자신이 주변을 속이며 산다고 믿는 불안 심리를 말한다. 


 나는 길고 긴 터널에서 한줄기 빛을 발견한 듯 간절히 리사손 교수님께 연락을 드렸다. 리사손 교수님의 저서 <임포스터> 출간 후 100일 파티 겸 웨비나는 그렇게 마련되었다. 2회로 기획된 웨비나 전에 2회의 북클럽이 해외 이주 여성 문지선 님의 진두지휘아래 다음과 같은 세 개의 질문을 품고 진행되었다.  

 

질문 1. 엄마가 되기 이전부터 내가 썼던 가면은 무엇인가?

질문 2. 해외 이주 여성으로서 쓰게 된 나의 가면은 무엇인가?

질문 3. 가면을 벗기 위해 내 삶에 어떤 변화를 주고 싶은가?


 북클럽을 마치고 한주 뒤 이어진 리사손 교수님의 2회 웨비나 내용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리사손 교수님 웨비나 요약*

*웨비나 내용과 <임포스터> 책 모두 참조


 '해외'로의 '이주'가 야기하는 부족 또는 결핍은 '나만 다르구나'라는 불안에서 시작된다. 이는 임포스터가 느끼는 핵심 정서와도 같다. 그리고 이에 따른 다섯 가지 어려움은 해외 이주 여성들이 다양한 가면들을 쓰도록 이끈다. 선진국으로 알려진 미국에 사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한다는 통념이 해외 이주 생활에서 발생하는 불평불만을 허용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분위기에 따라 상대적으로 자신감이 떨어지는 현지어의 사용이 줄면서 이를 만회할 다양한 가면들을 찾게 된다는 것. 이때 정 반대의 두 가지 성향, 전혀 한국 사람들과 이야기하지 않는 inactive 성향과 모든 일에 다 참여하는 active 성향, 이 나타난다고 한다. 즉, 언어적 (또는 문화적) 차이에서 기인한 오해를 통해 '나답지 않은 모습'을 발견하며 이를 감추기 위해 겸손 가면 혹은 운동 가면을 찾게 되는 것이다. 


첫 번째 어려움 - 나의 다름을 들킬까 봐 절대로 말하지 않고 조용하게 공부하면 행복할 수 있다는 착각. 

 이는 나를 행복한 사람이라고 알고 있는 지인에게 내 본모습을 드러내기가 쉽지 않았다는 책의 내용에서도 알 수 있다. 불안해하는 내 모습, 즉 완벽하지 않는 내 모습을 지인에게 들키는 것이 큰 두려움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의 실체 위로 가면을 덮어쓰는 임포스터일수록 임포스터이즘에서 벗어나고자 할 때 타인의 도움을 받기도 어렵다. 


두 번째 어려움 - 나의 다름을 들킬까 봐 말이 필요 없는 종목을 열심히 하면 행복할 수 있다는 착각. 

 말을 하지 않으면 한 개인이 느끼는 심리적 고통이 타인에게 보일 리 없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나'와 '타인이 생각하는 나' 사이에 점점 격차가 생겨나면 사람들은 이를 감추기 위해 가면을 쓰기 시작한다. 


세 번째 어려움 - 나의 다름을 들킬까 봐 내적 친밀감이 있는 타인에게만 과장해서 말하는 불안감. 

 내 고통이나 슬픔을 지인과 나누면 타인이 부담을 느낄까 봐, 가능하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 혼자서 어려움을 해결하려 하는 성향은 실패를 숨기도록 이끈다. 하지만 내적 친밀감이 있는 타인에게는 과장해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드러내기도 한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내적 친밀감이 있는 타인이 없는 경우 힘들어하는 자신을 숨기며 '가면 쓰기' 연습을 시작하게 된다.


네 번째 어려움 - 나의 다름을 들킬까 봐 나는 그냥 운이 좋다고 믿어 버리는 착각. 

 성공을 거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여 정확한 메타인지 사용에 어려움을 겪는다. 겉으로는 행복해 보일지 몰라도 마음속에서는 불안 증상들에 끊임없이 시달린다. '나에게 중요한 사람들이 내가 그들이 기대하는 만큼 실력이 좋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될까 봐' 불안에 떠는 것이다.  


다섯 번째 어려움 - 해외 이주 학습 경험이 없는 양육자에게 의존해야 하는 해외 국적 취득 자녀들의 아이러니.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을 당하고도 아이는 철든 모습을 하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행동할 때가 있다. 양육자가 알면 너무 슬퍼할 테니 혼자 묵묵히 견뎌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해외 이주 임포스터의 어려움이 아이에게 대물림되지 않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메타인지를 통해 용기와 믿음을 갖자.

 남보다 느리거나 남과 다르다는 생각에 창피함을 느끼거나, 힘든데도 괜찮은 척하며 실수를 저지를 까봐 입을 다무는 행동들은 용기가 많이 부족하여 나타나는 임포스터 행동이다. 리사손 교수님은 이를 막기 위해서 우선 양육자가 메타인지를 적극 활용할 것을 권한다. 책에서는 메타인지를 용기와 믿음이라고 정의한다. 학습이 이뤄지려면 정말로 많은 용기가 필요하며 용기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믿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양육자 다음으로, 아이의 메타인지가 적극 활용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자. 아이가 메타인지를 통해 자기 내면의 거울을 표현하는 용기를 가질 수 있도록 말이다. 특히 배우는 과정에서 완벽하지 않은 자신을 받아들이는 용기는 실수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하고, ' 불완전함이 곧 행복'이란 사실을 자연스럽게 깨달을 수 있도록 한다. 


안전하게 실수할 수 있는(들킬 수 있는) 기회를 주고 기다리자.

 임포스터들에게 잘 나타나는 행동 특성은 완벽주의다. 학교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낸 어려운 문제를 앞에 나와서 풀라고 하면 정답을 완벽하게 알지 못하는 학생들은 뒤에서 쭈뼛거리기만 한다. 완벽의 가면을 쓰고 자신의 '생각의 길'을 숨기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의 해답을 찾아가려면 '생각의 길 Learning Path'에서 머무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사람은 누구나 시행착오와 실수를 경험한다. 이때 ' 실수했던 과정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양육자는 아이가 스스로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 주어야 한다. 너무 느리다던지 혹은 무언가를 빨리 해내라고 다그치면 아이는 자신이 만들어 나가고 있던 생각의 길에 더 이상 믿음을 갖지 못하고 쉽게 포기하며 이를 숨기기 위해 잘하는 척 가면을 쓸 가능성이 높다. 

 

직접 알아보고 필요하면 도움을 청하자.

아이가 뭔가를 잘 배우고 익혔다면 "지금까지 참 잘 배웠구나. 앞으로는 어떤 부분을 더 배워보면 좋을까?"라고 격려하며 자발적으로 앎을 추구하도록 도움을 청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좋다. 또 사람들의 칭찬이 성공에 대한 부담을 지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격려하고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이란 것도 알려줘야 한다. 그렇지 않고 이제 더는 배울 게 없다는 식으로 아이를 칭찬하면, 아이는 앞으로는 노력 없이도 완벽해져야 한다고 여겨 더 불안해질 수 있다. 


epilogue

나는 지난날 꽁꽁 감춰뒀던 기억들을 하나하나 꺼내어 나눌 준비가 되었을까? 글쎄.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소화시키지 못한 추억의 결정들을 보석을 대하듯 하나씩 꺼내보는 것만으로도 치유를 넘어 성장에 다가감을 느낀다. 앞으로 찾아올 선택과 연결의 순간들을 가면을 벗고 맞이해야지. 용기와 믿음을 가지고. 

 

아이에게 '생각의 길'을 온전히 걸어볼 기회를 준다는 것: 여행지에서 아이의 동선과 시선과 발검음에 맞춰 걸으며 기다림을 아주 조금 맛보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