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의 꾸밈말 9
몇 날 며칠 내 입꼬리가 쳐져있었다. 웃을 일도 없었거니와 실제로 모든 것이 우울해 보였다. 나의 시선에 우울의 장막을 걸친 건 아이러니하게도 사랑이었는데 그 시작을 알 수 없어 답답하기만 했다. 내가 인지할 수 있는 것은 '내 맘 속 미움싹'이 한 달 전쯤 피어났다는 것 정도.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던 그 주간에 나는 몹시도 가라앉았었고 나를 향한 모든 말들에 무척 예민하게 굴었다. 나의 첫 미움싹은 예민한 물줄기에 힘입어 그렇게 싹을 틔웠을 것이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단 말에 무뚝뚝했던 남편의 반응과 아무렇지도 않았던 아들의 표정과 괜찮은 듯 보였던 나의 덤덤함은 세상을 향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했다. 왜 그렇게 열심히 살아? 죽음 뒤에 남겨진 쓸쓸한 공허함을 생각하면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가는 그저 말짱 도루묵'이었다.
삐딱한 마음이 가장 먼저 찾은 관계는 남편과 나의 사이였다.
나: 할머니가 돌아가셨어. 지금 연락받았어.
남편: 아... 그 치매 걸리신 할머니?
나:... 아니.
남편이 묘사한 나의 친할머니는 내가 결혼하고 나서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었다. 나의 소중한 관계를 이토록 쉽게 져버리는 사람과 살을 비비며 살고 있다니 생각하니 소름이 돋았다. 아니, 누군가는 그렇게까지 생각할 일은 없다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나는 아니었다. 아주 찰나였지만 내 마음이 아주 굳게 닫혔다. 그리고 나도 시들어갔다. 과하게 보다는 적당히가, 적당히 보다는 조금 덜한 것이 맘이 편했다. 사랑에 자리 잡은 미움은 내가 조금 덜 자라도록 얽매였다. 그리고 머지않아 아들과 나의 사이에도 삐딱한 마음이 들이쳤다.
나: 도시락을 왜 이렇게 많이 남겼어?
아들: 맛없어서.
나: 도시락 싸준 사람 생각도 안 하고 무슨 말을 그렇게 하니? 지금부터 굶어!
정성을 담지 않은 음식의 맛을 가감 없이 표현한 아들의 진언에 화가 났다. 나를 화나게 하려고 그런 말을 뱉은 것도 아닐 텐데 그렇게 서운할 수가 없었다. 역시 '잘해줘 봐야 말짱 도루묵'이라고 생각했다. 더 주고 덜 받는 느낌이 지금 이 순간만큼은 너무도 싫었다. 그러고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올해 장만한 내 책상에 앉아 일을 하고 있는데 살며시 방문이 열린다. 아들이었다. 조곤조곤한 발걸음이 방문을 향해 걸어오는 것을 들었을 때부터 방문을 열고 들어올 주인공이 아들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들이 그 말을 할 줄은 몰랐다.
아들: 엄마 미안해요. 내가 엄마한테.. 속상한 말.. 해서 잘못했.. 어요.
꺼이꺼이 울면서 두 문장을 완성한 아들의 두 눈은 이미 뻘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그 눈을 바라보는데 내 눈에 씌워진 우울의 장막이 사라졌다. 아들은 진심을 다해 나에게 사과하고 있었고, 못난 어미 앞에서 '세상에 말짱 도루묵은 없다'라고 말해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