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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츄츄 Mar 27. 2024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시작

관계의 시작과 함께 드러나는 나의 애착유형

동생의 말에 얼어붙어서 눈동자만 양옆으로 또 위아래로 열심히 움직이고 있을 때였다. 그가 내 앞에 와서 섰다.


"혹시... oo에서 부산 놀러 오신 분 아닌가요?"


나는 아... 네 맞아요라고 답하고는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반갑다고 말했던 거 같다. 손 끝만 어색하게 잡은 정말 이상한 악수였다. 악수라니. 악수라니.


"어떻게 이렇게 만나지? 왜 답장 안 했어?" 그가 물었고 대화를 잠시 나누고는 그가 돌아섰다. 나중에 그가 말했다. 내가 그때 악수를 하길래 더 말 걸지 말란 얘긴 줄 알았다고. 나는 그때 어색해서 고장 난 것뿐이었다.


누가 들어도 황당한 만남이었으니까. 나는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며 다시 동생과의 대화에 집중했다. 귀한 내 동생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당장 전화해서 그런 관계를 끝내라는 나의 설득에 동생이 전화를 하러 나갔을 때였다. 그가 다시 내 앞에 와서 섰다.


"괜찮으면 번호 받을 수 있을까? 내일 일정이 어떻게 돼? 점심 같이하자."


_





여기까지가 내가 자칭 운명적 만남이라고 생각한 우리의 첫 만남 이야기다. 다음날 만난 우리는 사귀기로 했다가 3분 만에 이건 아니다 싶어 다시 헤어지자 했다가 난리법석을 떨었다. 눈만 마주쳐도 손 끝만 스쳐도 웃음이 나는, 반사적으로 샘솟는 애정에 이게 무슨 호르몬의 장난질인가 싶어 함께 혼란스러워했다. 이틀 뒤, 내가 사는 곳으로 찾아온 그와 나는 서로의 공식적 연인이 되기로 했다.


그리고 '행복하게 잘 만나고 있어요'가 끝이면 참 좋겠지만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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