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 9년 차 세 여자들의 별(임원)에 대한 고민
9년 전, 우리 셋은 목표가 명확했고, 거침이 없었다.
면접에 무리 없이 합격했고 10년 뒤, 대한민국의 주인공이 되겠다는 화려한 그림을 자기소개서에 당당히 녹였다.
우리에게 회사는 대학교와 다른 신선한 공간이었고, 내 스스로 연봉 계약서를 쓰고, 통장에 돈이 쌓이는 것 만으로 엄청난 동기부여가 되었다.
학교가 아닌 다닥다닥 붙여진 컴퓨터 앞에 않아 해외로 메일 보내는 것들도 신기했고, 전문 용어가 적힌 계약서를 정리하고 지시를 받는 내가 마치 이 회사 매출에 기여하고 있는 마냥 너무 뿌듯했다. 신입사원 딱지를 떼고 ‘야근’, ‘사수’라는 말이 익숙해질 무렵에도, 친구들이랑 회사 얘기를 하며 술잔을 기울일 때도 우리는 단단한 안전지대에 보호된 것처럼 안정감에 취해 있었다.
9년이 지난 지금, 한 명은 2년 동안 해외 유학길에 올라 산업을 바꿔 이직을 하였고, 한 명은 승진 후 퇴사, 1년간 스스로에게 주는 안식년으로 유럽 여행을 다니다가 5대 대기업으로 복귀했다. 나머지 한 명은 여전히 한 회사에서 공채부터 지금까지 좋은 평판과 실력을 인정받으며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었다.
올해 30대 초 중반이 되어 새해를 맞이한 우리 셋은 9년 차가 되자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였다. 좋은 평판과 실력을 인정받은 그녀는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고과와 상관없이 과장 승진에 누락이 되었고, 5대 대기업으로 이직한 경력직의 그녀는 기존 공채들과 비교되어 상대평가에 하향 점수를 받았으며, 올해 출산 휴가가 예정된 유부녀는 임신으로 인해 아쉬운 퍼포먼스를 내 결국 평균 고과에 만족해야 했다. 겉으로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았지만, 우리는 앞으로 보이지 않는 직급 밥그릇 암투를 계속할 수 있을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내년이면 직장생활 10년 차, 두 자리 수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확실히 혼란스러웠다. 우리는 알고 있다. 실력만 좋다고 인정받고 평화롭게 피라미드의 꼭대기로 올라갈 수 있는 청정구역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물론 9년 전에 비해 근무환경이 많이 좋아지고 우리의 워라밸은 많이 지켜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남성 중심의 보수적인 승진 문화와 그들만의 리그는 무시할 수 없다. 공채가 아닌 경력직에게 보이지 않는 차별 고과도 인정해야 하고, 출산 후 보이지 않는 한계도 곧 느끼게 되겠지.
사내 정치에 휩쓸려 사람에게 헌신하다가 헌신짝이 된 선배들을 보면 남 얘기 같지 않았다. 사람이라도 관계를 잘해 두어야 회사가 나를 ‘팽’ 했을 때 이직 소개를 받기도 한다. 분명 자신의 자리를 지키려고 노력한 것일 텐데 외부 환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낙오하는 경우도 있다.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회사에서 실력뿐만 아니라 외부의 운과 사내 정치에 버틸 수 있을만한 비위가 나에게 있는 것인가, 더 때가 묻고 내 자신을 버리라고 암묵적 강요를 하는 회사에게 나는 틀에 박혀진 인간으로 보답해야 하는 것인가. 윗사람을 대신해서 악역과 젊은 꼰대의 행세를 하면서 내 윗분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 드리면 그들은 나를 그들의 리그로 들여보내 주는가.
그런데도 임원이 되지 못하면? 회사 밖에서 만원도 벌어보지 못한 내가, 회사 밖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가? 요즘 같은 100세 시대에 회사가 나를 몇 살 까지 책임져 줄 수 있으며, 우리 회사는 급변하는 산업의 환경에 안전한 곳인가?
이런 말들을 봇물처럼 쏟아내다 보니 우리는 9년 전 꿈꾸던, 예쁘고 하이힐 신은 걱정 없는 여성은 결혼 속 신데렐라 이야기 같은 판타지였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마무리되지 않은 직장인의 무게를 뒤로 한채 잠이 들었다.
회사 문화는 외부적으로나 내부적으로 좋아지고 있는 것이 확실했다. 매년 파격적인 인사이동, 85년생 젊은 여성 임원, 증권가 업계 최초 여성 임원의 기사는 나왔으며, 이직에 대한 인식도 커리어 업그레이드 측면에서 변화하고 있었다. 하지만 반대로 회사는 우리를 이제 더 이상 책임져 주지 않을 거며, 퇴사하지 않을 정도의 연봉을 주며 원하는 것을 빼먹으려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물의 온도를 점점 높여서 자기가 죽어가는걸 인지 못하는 끓는 물속 개구리처럼 한 통(회사) 안에서 안주하기에는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우리는 어디까지 책임지고, 어디까지 선을 긋는 피고용인(employee)이 되어야 할까?
우리는 이런 난관을 극복하고 별(임원)이 될 수 있을까?
사회가 원하는 대로, 기성세대들의 정석대로 열심히 살았는데 이 길이 맞는지 알기에 30대 여자 셋은 너무 어린 나이인가. 9년 차는 여전히 세상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