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저 사람처럼 또라이가 되면 어떡하지?
최악의 상사였지만, 최악은 아니란다.
첫 회사를 공채로 들어갔기에 회사 생활 초년 윗사람들 욕을 하며 술 마실 동기도 있었고, 모르는걸 속 시원하게 물어볼 수 있는 타 부서 지원군도 있었다. 타 부서 팀장님들도 너가 ㅇㅇ랑 동기지? 라는 말로 시작했고, 그런 공감대는 회사 생활을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팥빵에 팥 역할이었다. 동기들 중 몇 명은 ‘더 나은 세계’라는 이상적인 명목으로 이직을 했고, 모험가 성향인 나는 뒤도 볼 것 없이 그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
이직 후 내 나름 최악의 상사라고 정의되는 인간을 만나게 되었다. 가르쳐 주지도 않고, 일을 할 줄 모르는, 앞뒤 말을 섞어서 해서 포인트가 파악되지 않는, 그런데 모든 자기의 초점이 윗사람한테만 맞춰져 있는… 소위 아부하는 멍부(멍청 & 부지런한)였다.
나에게 관심은 없었지만, 내가 내는 아웃풋을 가로채 윗사람에게 기가 막히게 포장하는 재주가 있었다. 잔머리는 잘 돌아가는지 업무의 짬이 있어서 그런지 일은 안 하는데 자기가 한 것처럼 잘 만들고, 입이 무거워서 그런지 윗사람의 피드백이나 업무의 방향성은 나에게 절대 발설하지 않는 기막힘도 보였다. 이 정도 쪼잔함이면 당연히 성격은 꼬여 있었고, 사람들에 대한 분노가 많아 적도 많은 사람이었다. 겁이 많아서 뒤에서 속닥속닥 담배와 술 타임에 업무 중대 사항을 결정했으며, 회사에 가십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고 그걸 또 윗사람한테 보고하면서 신임을 받는 식이었다. 인간의 밑바닥을 보고 사는 일상은 지옥 같았고, 전례 없는 예민함은 극에 달했다.
이쯤 되면 회사를 때려치워야 하는게 맞지만, 나는 회사를 그만두지 못했다. 이 회사를 입사할 때 몇 년은 있어야지라는 생각과 여기서 무엇을 배워야지 하는 커리어 목표가 있었다. 또 매달 나오는 안정적인 월급처를 다시 찾으려니 이력서부터 커리어 계획까지 시간적, 정신적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마지막 구차한 이유는 '나의 커리어맵은 이거 이거야'라고 당당하게 떠들고 다녔는데, 적응 못하고 몇 개월 만에 나뒹구는 내 자신과 그것을 수습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나는 다른 직장인들보다는 강하고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친한 지인들이나 인생 선배들에게 물어보면 어디나 또라이 중력의 법칙은 존재해서 그런 사람이 랜덤으로 걸릴 확률은 50:50이란다. 결국 내가 최악이라고 생각하는 상사가 선배네 회사에도 존재하고 내가 때려치우고 갈 회사에도 존재할 수 있다는 한숨이 절로 나오는 논리였다.
나도 저 사람처럼 또라이가 되면 어떡하지?
‘나도 저 사람처럼 또라이가 되면 어떡하지’ 위기감이 느껴졌다. 회사 생황을 오래 하면 저렇게 또라이가 되는 건지 저 사람은 신입사원 때부터 성격이 뒤틀린 또라이인지 알 길은 없었다. 성격은 왜 그렇게 뒤틀렸는지, 친구는 있는지, 혹시 성장 배경이 이상한 건 아닌지, 저런 사람은 회사에서 왜 안 내보내고 있는 건지 생각에 꼬리를 물수록 나는 점점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저 사람은 갈 곳(이직)이 없고, 여기(지금 회사)는 안 맞고, 생계를 위해 돈은 벌어야겠고 그래서 안 맞는 걸 자꾸 끼워 맞추다 보니 돌연변이로 변한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스쳤다. 나도 지금이야 주니어 레벨이고, 집안의 책임이 무겁지 않지만, 나중에 애를 낳고 지출이 늘어났을 때, 적성에도 맞지 않는 회사에 꾸역꾸역 일을 해야 한다면, 저렇게 될 수도 있나?라는 무서운 생각이 스쳤다. 연봉이 높아지고 중견 관리자 급이 되었을 때, 무언가를 시도할 용기가 사라진다면, 갈 데가 점점 줄어들고 회사에 올인해야 하는 순간이 다가올 것이다. 그때가 되면 제때 들어오는 안정적인 월급쟁이 궤도에 벗어날까 두려워 어떤 고통도 순응할 것 같았다. 그럼 물을 서서히 뜨겁게 데워 자기가 죽는지도 모르는 솥 안에 개구리처럼 서서히 죽어가는게 아닐까. 갑자기 회사생활 = 호러물 같았다.
선배들의 숨통 ‘부동산, 주식, 로또’
직장 선배들은 어떻게 버티지? 그들은 모두 이게 다 ‘돈 때문’이라는 암묵적인 원인 분석에 동의했다. 그래서 경제 신문을 보고 부동산이니 주식이니 이런 것들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어차피 직장인의 월급은 정해져 있고, 물가는 상승하고 집값은 치솟으니, 한정된 월급 내에서 뭐라도 해야 했다. 내 집 마련을 목표로 대출이자를 갚으며 아끼고 아끼다가 작은 꼬마 아파트라도 찾으려 서점에 기웃기웃거렸다.
급변하는 경제 뉴스는 나의 돈을 지키기 위한 필사적인 정보들이었다. 스마트폰 안에 깔아놓은 주식 어플은 화장실 갈 때건, 출퇴근 길이건 계속해서 들락날락거리면서 조금이라도 돈을 불릴 수 있는 투자처에 투척했다. 스스로 투기는 아니고 투자라고 하지만, 월급만큼 벌 그날을 생각하며 주식시장의 그중 한 개미(One of ant)가 되고 있었다.
매주 로또를 사며 상상을 하는 선배도 있었다. 월요일에 로또를 사서 일주일 동안 1등 당첨이 되면 뭐부터 할지 상상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제일 먼저 돈이 생기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나의 속내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식으로 우리는 희망(로또)을 사고, 한주를 버티고 있었다.
작지만 나의 세상을 만들고 싶다
엄마는 내가 무슨 선택을 할 때 고민을 말하면 ‘인생에 정답은 없다’고 하셨다. 나는 그 말이 너무 무책임하고, 싫었었는데 그 말을 다르게 해석해보니 깊은 의미가 있었다. 어떤 선택을 하든 옳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세상은 정해진 게 없다. 인생에 정답이 없고 미래의 변화도 예측할 수 없다면, 남들 다하는 거에 질질 끌려가는 직장인이 아닌 작지만 내 세계를 만들고 싶었다.
50만 원이든 100만 원이든 그게 1000만 원으로 커질 수 있는 온전히 나의 수입으로 인지하는 나만의 세계. 그래서 나는 내일(사업)이 하고 싶다. 돌이켜보면 취업도 만만치 않게 관문을 뚫었고, 대학 입시도 어려웠다. 사업도 어렵다고 생각해야 하는데 다시 직장인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낙낙한(모자람 없이 넉넉함을 나타내는 전라도 지방의 말) 마인드로 접근하니, 못하겠다고 생각했다 보다. 뭐든 힘든 과정을 겪지 않으면 얻을 것이 하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