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이룬 시니어를 보고 세상에 다시 반항하다
안녕하세요, 충성스러운 신입사원입니다.
신입사원 시절, 나는 화장실 가는 것 외에 모든 것을 허락받고 갔다. 오늘 점심은 동기들이랑 먹어도 되는지, 저녁에 가족모임이 있어 오늘은 먼저 퇴근하겠다느니, 회의실 세팅하고 오겠다느니. 부사수의 모든 것을 통제해야 속이 편하신 사수님은 내 모든 보고를 듣기를 원하셨고, 그게 정석인 줄 알았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나자 사춘기에 났던 여드름이 목부터 시작해서 두드러기처럼 돋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화장품 때문인 줄 알았고, 피로가 몰려서 인 줄 알았다. 피부과에 가서 진단을 받고 아픈 압출과 레이저를 반복해서 없애 놓으면, 또 얼마 지나지 않아 여드름이 솟아 나왔다. 미관상도 보기 안 좋았지만, 원인모를 성인 여드름에 내 몸이 잘못된 건 아닐까 겁이 났다.
어느 날은 출근길에 지하철에서 환승하려는데 천장이 노래지면서 평형감각을 잃으며 주저앉았다. 엥? 이게 뭐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나는 균형을 잃고 지하철 바닥에 누워버렸고, 도시철도 직원들을 통해 119 구급차에 실려갔다. 그 순간에도 지각하는 걸 알려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고,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시간을 확인하고 대리님께 전화를 걸었다. ‘괜찮니? 알았다.’ 걱정해주는 건지, 빨리 오라는 건지 알 수 없는 대화 내용에 머리가 복잡해져 병원에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며 출근을 해버렸다.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고, 병명도 없는 컨디션의 변화를 의사들은 스트레스라고 했다. 나의 신입사원의 기억은 아무런 생각 없이 시키는 일을 열심히 수행한 기억만 있다. 입사 1주일도 안돼서 선배가 해준 말 ‘그냥 생각하지 말고, 시키는 대로만 해’를 가장 충성스럽게 수행한 신입이었다. 집-회사의 기억이 전부고, 회식자리가 숨을 돌리는 정도였다. 야근은 모든 팀원들이 했기에 당연했고 번아웃이나 스트레스에 대해 인지할 만큼 여유가 없었다. 오리는 태어나서 처음 본 존재를 엄마라고 생각한다고 했던가. 나의 첫 사회생활은 그렇게 길들여졌다.
안녕히 계세요,
그냥 평범한 직장인이었습니다.
하나둘 취업하는 친구들의 회사 스토리를 들어보면, 상황은 조금씩 달라 보이나 나와 별 다를 바 없는 햇 병아리 경험들이었다. 나는 커리어에 욕심이 생겨 더 큰 배움을 찾아 떠난다는 명목 하에 이직을 하였다. 다른 회사를 겪고서 30대 초반에서 중반으로 넘어가자 회사를 통해 나는 무엇을 얻었나? 돌이켜 보게 되었다.
사회 초년 월급 받는 재미는 대학생 시절 대외활동, 과외 수입과 비교도 안될 만큼 신선한 경험이다. 내가 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세금을 내고, 경제 주체가 되었다는 징표이기 때문이다. 이 수입들은 과분한 소비와 다양한 여행을 선사하며 색다른 경험들을 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주었다. 몇 년이 지나니 이것도 더 이상 새롭지 않았다.
나는 그저 튀지 않고 주어진 일을 잘 수행하는 것에 도가 튼 평범한 회사원이 있었다. 잡일을 아주 잘하고 까라면 까는 상사와 이걸 왜 해야 하는지 불평하는 후배들 사이쯤에 위치하고 있다. 입사의 열정은 사라 진지 오래고, 이 회사에서 언제까지 있을지, 언제 이직할지, 연봉은 잘 받고 있는 건지, 종잣돈으로 주식, 꼬마 아파트를 해볼까. 등 현실적인 고민들을 해나가는 대한민국 회사원 중 한 명이 되어 있었다.
이러려고 신입사원이 된 건 아닌데... 답답하고 정형화된 일상
분명한 건 나의 꿈은 회사 밖에서 펼칠 수 있는 것이었다.
멋쟁이 시니어, 좀 일찍 되어볼까?
퇴직을 해서 꿈을 이룬 ‘멋쟁이 시니어’ 기사를 보게 되었다. 너무 부러웠다. 그 나이에 가지고 있는 열정과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것이... 원하는 삶을 사려면 시니어까지 기다려야 하나 싶었다. 내 주변엔 거의 모두 직장인이니까 그게 맞는 길이라고만 생각했다.
시니어가 되기 전에 이상적으로 살아보는 것은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니어들이 살아온 세월의 고작 반밖에 살지 않은 내가 그들의 행복을 격하게 공감하고 있었다. 사실 이게 직장인을 고수하지 않고, 내 일을 찾고 싶은 가장 간절한 일일지도 모른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한정된 수입이 아닌 능력에 따라 늘어날 수 있는 수익처가 필요하다는 것,
내 자신이 좋아하는 게 뭔지, 그걸 찾고 배우고 성장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진리를 알게 되었다.
이젠 기초 수급자가 되어도 괜찮습니다.
당장 회사원을 벗어나게 되면 나의 수익은 불규칙하거나 ‘0’이 될 수도 있다. 최소한의 생활비로 살아가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 지금 당장 나간다면 내가 얻을 수 있는 수익은 회사에서 했던 일들을 토대로 하는 프리랜서 활동과 대학생 과외 정도이다. 하지만 이것도 노동 시간만큼만 돈을 버는 구조라면 단순 밥벌이이고 직장인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나의 일을 시스템화해서 일하는 시간을 계속해서 줄여나가도 수익은 늘어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취미든 도전이든 내가 좋아하는 일을 꿈꾸면서 살아갈 수 있다.
직장 생활하면서 현재 모은 돈과 월별 생활비를 계산하여 ‘최소 버틸 기간’을 설정했다. 그리고 회사 생활에서 일해왔던 9 to 6 시까지는 무조건 내가 무엇을 해 먹고살지 찾아보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당분가나 나의 행복을 위해 꿈을 좇는 최소 수급자로 살기로 했다. 가만히 있는 것보다 무언가를 끊임없이 쫒아 시도해보는 것이 용기 있다고 생각한다. 당장은 커리어가 끊길지라도 꿈을 좇는 가능성 있는 사람이 되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