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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비 Jan 29.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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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

  처음 만난 사람들에게 내가 애가 셋이라고 말하면 열에 아홉 이상 놀란 얼굴을 한다. 작금의 평균 초혼 연령을 6년 앞질러간 나는 작금의 합계 출산율 또한 3.75배 앞질렀다. 곤두박질치는 출산율이 사회 이슈 중 하나이지만 나는 주위에서 우리 집과 같은 다자녀 가정을 꽤 마주친다. 그러나 우리 집이 내 주변 다자녀 가정들과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시가와도 친정과도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일례로 남편 친구들 중에도 아이가 셋인 사람이 있다. 그는 병원을 개원하면서 부모님이 계신 고향으로 낙향하여 살고 있다. 독특한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아 일손이 달려 처가 어른들까지도 연고 없는 사위의 고향으로 이주해 살고 계신단 사실이다. 세상이 이럴진대 시부모님은 차치하고, 나의 부모님은 나의 육아를 도와주시지 않는다. 가장 큰 이유는 물리적인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왕복 8시간) 운전면허증 소지자이신 아빠는 은퇴 생활 2년 차로 시간이 여유롭지만, 면허증만 있지 운전은 하지 못하셔서 무조건 엄마의 동행이 필수적이다. 첫아이를 낳았을 때는 내가 육아에 매우 서투른 처치였으므로 거리도 시간도 무시하고 친정 부모님께 도움을 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둘째를 낳고, 셋째를 낳을수록 내가 힘들다고 부모님께 손을 내밀기란 선뜻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캐롤라인 냅의 저서 <명랑한 은둔자>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부모님 은혜의 시기’란 당신이 부모에게 복종하지 않아도 될 만큼은 나이가 들었지만 아직 부모를 걱정할 만큼은 나이가 들지 않은 시기, 그 짧은 기간을 뜻한다."(p. 119) 현재 나는 ‘부모님 은혜의 시기’ 안에 있는 운 좋은 사람이지만, 나의 엄마는 그 시기 밖으로 밀려나 있다. 엄마는 출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하고, 또한 엄마 자신의 엄마도 돌봐야 한다. 거기에 내 자식까지 돌보러 와 달라고 말하기에는 염치가 없었다. 내 딴에는 사막 한가운데를 맨몸으로 걷고 있었지만 힘들다고 말할 순 없었던 것이다. 힘들어도 힘든 티를 내지 못하는 것은 엄마의 유산이기도 했다.


엄마가 물려준 유산에 대해서 한 가지 더 이야기하자면 바로 달리기다. 나는 학창 시절 달리기를 잘해서 운동회 때는 청백 계주 대표로 나서곤 했는데, 이는 엄마(를 비롯한 외가)의 운동 신경이 대물림된 덕분이다. 달리기를 잘한다는 것은 나의 장점 중 하나였고 스스로의 자랑거리였으며 오랫동안 자존감 지킴이 역할도 해주었다. 그 시절 나는 100미터, 200미터를 주로 달리는 단거리 선수였지만 지금은 4킬로미터, 5킬로미터를 뛰는 장거리 선수가 되었다. 혼자만의 경주를 하는 선수. 상대가 없는 철저한 혼자만의 싸움이다. 스트레스로 과부하되어 교감신경이 극도로 자극된 나를 꺼뜨리기 위해, 나는 달린다. 달리면서 심박수는 올라가지만 오히려 부교감신경이 촉진되고 흥분은 가라앉는 느낌이 든다.


청백 계주 주자 시절 좋아했던 그룹 S.E.S의 <달리기>라는 노래에 이런 가사가 있다. "이유도 없이 가끔은 눈물 나게 억울하겠죠." 그러나 눈물 나게 억울한 일에 이유가 없을 수 있을까? 나는 아이 셋을 키우면서 종종 뭐가 맞는 건지 몰라 답답했다.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는 것 같아 서운했다. 내가 선택한 상황에 스스로 갇혀버린 느낌에 우울했다. 끝이 보이지 않아서 불안했다. 이렇게 억울함으로 뭉뚱그려진 감정에는 여러 가지 다른 이름들이 있었다. 서운함, 분함, 아쉬움, 답답함, 우울함, 불안함 등등. 거기서 나를 지배하는 감정이 무엇인지 가려낼 수 있어야 했다. 그리고 나의 감정을 직시하고 보듬는 과정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있으려면 당연하게도 나는 도움이 필요했다.


달리기는 셋째를 출산하고 5개월이 지난 시점부터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임신과 출산으로 불어난 체중을 줄이기 위해 달렸다. 살이 어느 정도 빠지고 정체기가 오자 그저 건강을 위해서 달렸다. 그때는 눈물 나게 억울한 감정의 이름을 찾지 못하고 그저 달렸던 때다. 달릴 땐 기분이 좋았는데 달리고 집으로 돌아오면 하나도 변하지 않은 현실이 나를 맞았다. 그러다 도움이 절실해진 하루는 내 발로 신경정신과 전문의를 찾아갔다. 그때도 나는 병원까지 달려서 갔다. 첫 번째 내원에서는 열 장이 넘는 검사지의 빈칸들을 채워 넣는 것이 일이었다. 두 번째 내원에서 나는 통제 욕구가 강해서 강박이 많은 사람이고, 강박은 내면의 불안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나처럼 서른이 훌쩍 넘어도 사람이 채 성숙해지지 않는데, 아직 까마득하게 미성숙한 아이 셋을 키우는 일은 제아무리 계획을 세워도 그대로 실행될 리 만무한, 근본적으로 통제가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후로도 아이들을 키우며 맞닥뜨리는 벽은 똑같이 존재했다. 폭이 더 얇아지거나 높이가 더 낮아지지도 않았다. 그러나 내가 왜 벽에 부딪히고 있는지를, 내가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지를 알게 된 후로는 달리고 나서도 풀리지 않던 무언가는 조금씩 사라졌다.


마음이 어지러웠던 이유를 알았으니 마음을 잘 다스리기만 하면 된다. 그래서 이제는 약을 먹는 심정으로 달린다. 달리기는 내 약이다. 입에 넣고 물을 마셔서 목구멍 뒤로 꿀꺽 삼키는 약이 아니라 온몸의 땀구멍을 확장시켜 땀을 배출하고 난 그 자리로 흡수시키는 약이다. 달리기는 기본 중에 기본인 운동이지만 의외로 몇 가지 장비가 필요하다. 얼굴에는 고글을 쓰고 머리엔 모자를 쓴다. 귀에는 에어팟을 꼽고 손목에는 애플 워치를 찬다. 러닝 셔츠와 러닝 쇼츠를 갖춰 입고 종아리를 압박하는 목이 아주 긴 양말을 신는다. 쿠션이 들어간 러닝화까지 착용하고 나면 내가 마치 킵초게 선수라도 된 기분이다. 달리기 싫은 날은 무조건 옷을 갖춰 입고 본다. 그렇게 3년째 일주일에 적어도 한 번씩은 달리다 보니, 잘 그을리는 대신 기미 주근깨와는 사이가 멀었던 피부에 결국 하나 둘 잡티가 생긴다. 그마저도 중력의 영향으로 걷는 사람에 비해 더 빨리 쳐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달리기는 나를 숨 쉬게 한다. 부작용을 감수할 만큼 나는 나로 숨 쉴 시간이, 무념무상의 상태로 나의 호흡에만 귀 기울일 시간이 꼭 필요하다. 달리는 동안 세로토닌이 100개의 땀구멍 속으로 침투할 것이고 그러면 하루치 살아갈 힘을 얻는다.


S.E.S는 "단 한 가지 약속은 틀림없이 끝이 있다는 것"이라고 노래했다. 하지만 S.E.S 언니들도 이젠 다들 엄마가 되었으니 알겠지. 한 번 낳은 이상 양육과 돌봄은, 적어도 자식 걱정은 내가 죽어야 끝이 난다는 것을. 다만 나는 육아에 전도되지 않으려고 한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소비되는, 자기희생적이면서 어쩐지 슬픈 인생을 사는 것 같은 엄마의 캐릭터는 거부하고자 한다. ‘가끔은 우리를 알아서 놀게 두고 30분씩 밖에서 뛰고 온 엄마’로 기억되고 싶다. 우리는 엄청난 우연으로 이 세계에서 잠시 만났다가 헤어지는 것일 뿐이니까 나는 굳이 내 아이들의 눈물 치트키가 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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