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사람도 몰랐던 이야기
내가 어렸을 때는 연탄보일러를 썼다. 너무 어렸을 때라 직접 연탄에 불을 붙이거나 연탄을 갈아본 적은 없지만, 아직도 밤 중에 연탄이 꺼질까 봐 자주 살피던 엄마의 모습과 뉴스에서 종종 연탄가스 중독 사고 소식을 본 게 떠오르는 걸 보면 연탄은 불편하고 위험한 연료였다. 초등학교 때 이사 간 집에는 연탄보일러가 아니라 기름보일러가 있었다. 연탄집게는 더 이상 필요 없어졌고 손가락 하나로 버튼을 눌러 보일러를 켜고 끄고 온도 조절까지 하게 되었으니 삶의 질이 수직상승한 건 말할 필요도 없다. 단점이 있다면 날마다 뜨끈뜨끈한 방바닥에 몸을 지지려면 어마어마한 돈을 내야 했고, 난방비에 쓸 돈이 넉넉하지 않다면 형편에 맞게 보일러를 돌려야 했다. 샤워하기 전 '온수' 버튼을 누르는 것 보다 샤워 후 '온수'를 끄는 게 더 중요했다. 그로부터 몇 년 뒤에는 비싼 기름보일러 대신 가스보일러를 썼다. 가스레인지에 연결되어 건물 밖에 서 있던 LPG 가스통도 사라졌다. 바야흐로 도시가스의 시대가 펼쳐진 것이다.
때는 2014년, 나는 '시골'의 한 초등학교에 발령받았다. 서울 사람들은 '지방=시골'이라고 생각하지만, 지방러로서 분명히 말하자면 지방은 '시골'과 '시골이 아닌 지방'으로 나눌 수 있다. 그러니 내가 말하는 시골은 정말 시골을 말한다. 다행히 내가 살게 된 곳은 깡시골은 아니었기에 원룸도 꽤 있었고 자취할 집을 구하기 어렵지는 않았다. 여러 원룸을 둘러본 뒤 가장 마음에 드는 원룸을 계약했다. 계약하고 나서야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됐다. 내가 계약한 집은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는다는 거였다. 2014년에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는 집이 있다는 것에 1차 충격, 그렇게 중요한 사실을 계약 전에 고지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2차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아직 3차 충격이 남아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그 지역 OO군 전체에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는다는 거였다.
"네? 도시가스가 안 들어온다고요?"
"네. 여긴 도시가 아니니까요."
도시가스의 '도시'가 그저 가스의 이름인 줄 알았던 나는 그제야 도시가스의 도시가 city라는 걸 알게 됐다.
그렇게 나는 추억의 기름보일러와 다시 만나게 됐다. 하지만 추억에만 젖어있기에는 나는 사회초년생이었고, 아직 첫 월급도 받기 전이라 돈도 없었으며, 기름보일러를 마음껏 때는 데 얼마나 많은 돈이 드는지 잘 알고 있었고, 2월 말의 추위를 이불로만 버텨낼 자신은 없었기에 곧바로 전기장판을 사러 갔다. 낯선 동네에서 겨우 찾아낸 전자제품 매장에 전기장판이라고는 부담스러운 황금색 전기장판 하나뿐이었다. 선택지가 하나만 더 있었어도 절대 고르지 않았을 물건이지만 춥고 가난했던 나는 번쩍거리는 황금색 전기장판을 소중히 끌어안고 매장을 나왔다.
내가 3차 충격까지 이야기했던가. 2022년인 지금도 OO군에는 OO군에서 가장 번화한 읍 지역에만 도시가스가 들어온단다. 지방러인 나도 이십몇 년 전에 도시가스를 썼던 것 같은데 아직도 도시가스의 혜택을 못 받는 지역이 있다니 인프라 구축의 지역 편차가 커도 너무 크다.
어제는 산골짜기에 있는 외가에 다녀왔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두 분이 사시는데 거기는 그야말로 깡깡깡시골이다. 동네에 있는 것이라고는 논, 밭, 집, 그리고 노인들을 위한 무더위 쉼터뿐이다. 구멍가게 하나도 없다. 도시가스는 당연히 없다.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는 아직도 가스레인지를 사용하기 위해 LPG 가스통을 주문한다. 마침 어제 가스가 떨어져 할아버지께서 나더러 가스 집에 전화 좀 해주라고 하셨다.
"어디로 가져다 달라고 해요?"
"정OO 씨 집으로!"
"네? 주소는 안 알려줘도 돼요?"
"정OO 씨 집이라고 하면 다 알아!"
가스집 사장님이 정OO 씨가 누구냐고 하면 뭐라고 해야 하나 고민하며 전화를 걸어 쭈뼛쭈뼛 말을 꺼냈다.
"여기.. 정OO 씨 댁에 가스 한 통만 배달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내 걱정과 달리 사장님은 어떤 질문도 하지 않고 밝게 웃으며 전화를 끊으셨고 한 20분 뒤 가스통과 함께 나타나셨다. 2022년, 대한민국 시골에 도시가스는 없지만 집주인 이름만 대면 배달이 가능한 최첨단 시스템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