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 발령받아 도시가스는 도시에만 있다는 걸 알게 된 충격이 다 가시기도 전에 새로운 걱정이 생겼다. 당시 나는 면허증은 있었지만, 겁이 많아 운전은 엄두도 못 내던 겁쟁이였다. 당연히 차도 없었고. 처음엔 이게 문제가 될 거라고 생각도 못 했다.
집을 구할 때 내가 차가 없다는 사실을 고려해 도보로 갈 수 있는 곳에 직장, 관공서, 마트, 카페 등이 모두 있는지 확인했다.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건 날씨와 내 컨디션이었다. 날씨도 좋고 내 컨디션도 좋을 때야 차가 없어도 충분히 잘 지낼 수 있었지만 덥거나 춥거나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몸이 힘들 때면 아무리 가까운 거리라도 차 생각이 절로 났다. 마음 먹고 마트에 장 보러 갈 때도 집까지 짐을 들고 걸어갈 생각에 마음껏 사지도 못했다.
날씨와 컨디션이 모두 좋을 때도 내 행동반경은 좁았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걸어 다닐 수 있는 거리만 다니며 사는 기간이 길어지자 답답하고 불편해졌다. 이쯤에서 의문이 들 것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생각은 왜 안 하는지. 서울에 시내버스가 있는 것처럼 시골에도 군내버스가 있다. 문제는 정류장 간 거리가 멀고 배차 간격이 길며 오후 8시쯤이면 버스가 끊긴다는 거다. 그 불편함을 다 감수하자니 차라리 안 타는 쪽을 택했다. 그렇다면 택시는? 택시도 있다고 듣긴 했다. 하지만 택시까지 탈 정도로 가보고 싶은 곳은 없었기에 그 동네에 사는 1년 동안 택시를 탄 적도 없다. 모든 편의시설이 모여 있는 '읍내'에 살고 있었으니 거기를 벗어나면 논과 밭 바다 말고는 볼 게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바다라면 걸어가도 볼 수 있었으니 굳이 먼 바다를 찾을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도 한 번씩 답답할 때면 차를 타고 드라이브라도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긴 했다.
시골은 군내버스만 불편한 게 아니다. 주말에 본가에라도 가려면 시외버스도 불편한 건 마찬가지였다. 자가용으로는 1시간 10분이면 본가에 갈 수 있는데 시외버스를 타면 2시간 45분이 걸렸다. 시골이라 버스 이용객이 적으니 시외버스도 마치 시내버스처럼 운행하기 때문이었다. 본가까지 가는 길에 있는 모든 정류소에 다 들러 승객을 내려주고 태우고 하는 식이었다. '시골에 살고 싶으면 차부터 사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지방으로 갈수록 교통이 너무 불편하다. 대중교통으로 가장 편하게 갈 수 있는 곳은 무조건 서울이다. 전남에 사는 내가 버스로 90km 떨어진 전남의 한 시골 마을에 가는 데 2시간 45분이 걸리는데, KTX로 350km 떨어진 용산역까지 가는데 3시간이면 갈 수 있다. 가끔 서울에 사는 지인이 나를 배려해서 경기도 남부나 대전에서 만나자고 해주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는데 막상 찾아보면 거리만 가까워지고 오히려 불편해질 때가 있다. 배차 간격이 엉망이거나 이동 시간이 더 걸리기도 한다. 그리고 그 지역 역이나 터미널에 도착해서 약속 장소까지 가기도 어렵다. 서울은 지하철이 촘촘히 연결되어 있어 지하철만 타면 못 갈 곳이 없다. (지방러의 입장입니다.)
참고로 나는 2월 말에 그 동네에 살기 시작해서 그 해 4월에 소개팅으로 만난 무려 '자가용'있는 남자와 다음 해 4월에 결혼을 했다. 데이트 할 때 마다 느낀 자가용의 편리함이 내가 결혼 결심을 하게 된 데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으리라 생각한다. 지금은 팔아버린 그 흰색 스포티지. 그 녀석만 아니었어도 내가 결혼을 해 버리지는 않았을텐데. 시골의 교통 불편이 이렇게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