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등이 이렇게 간절할 일이야
도시 사람들은 해가 져도 불편한 줄 모른다. 해가 완전히 진 후에도 빽빽이 들어선 높은 빌딩에서 나오는 불빛이 도시를 환하게 비춰주기 때문이다. 늦게까지 문을 연 상점들의 간판과 대형 광고판, 퇴근하지 않은 사무실에서 나오는 불빛과 건물 외벽을 장식한 조명까지 빛을 더해 도시의 위엄을 보여준다. 반면 시골은 해가 지면 깜깜한 어둠 속에 갇히고 만다. 밤하늘에 별이 촘촘히 빛나긴 하지만 넓은 시골을 밝히기에는 역부족이다.
'가로등이 있으니까 괜찮지 않아?'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시골에는 가로등도 없다. 해가 진 후에 외출을 하는 건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지방 소도시에 살다 시골로 이사 간 지 한 달만에 내 소원은 집 앞에 가로등이 생기는 것이 되었다. 아침형 인간보다 올빼미에 가까운 나는 밤이 되면 에너지가 솟아오른다. 친구들을 만나 술 한잔 하며 웃고 떠드는 게 인생의 낙이었는데 친구 하나 없는 낯선 시골은 나를 외롭게 만들었다. 아쉬운 대로 동네 편의점에 가서 맥주라도 한 캔 사 올라치면 깜깜한 골목길이 무서워 쉽게 나가질 못했다.
얼마 전 'EBS 다큐프라임 도시 예찬' 편을 봤다. 그 영상에서 한 도시건축 전문작가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한 사람만 이용하는 지하철은 존재할 수 없잖아요. 돈을 같이 부담해서 이 거대한 전차를 움직일 수 있게 하는 비용을 지불하는 것, 이런 것들을 공동구매라고 생각합니다."
공동구매라니, 이보다 적절한 표현이 있을까. 도시에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다. 반면 시골은 사람이 적기 때문에 있는 것보다 없는 게 많다. 한마디로 '공동구매'할 사람이 부족하다.
도로를 공동 구매할 사람이 부족한 동네에서는 비포장도로를 이용하고, 대중교통을 공동 구매할 사람이 부족한 동네에서는 교통 불편을 겪는다. 문화시설을 공동 구매할 사람이 부족한 동네에서는 문화생활을 포기하고 살고 공원을 공동 구매할 사람이 부족한 동네에는 공원이 없다. 같은 맥락으로 내가 살던 동네는 가로등을 공동 구매할 사람이 부족했던 거다.
내가 살던 동네에서 인근 소도시인 순천에 가려면 60km가 넘는 국도를 지나야 한다. 문제는 이 도로에 조차 가로등이 없어 밤에는 한 치 앞도 볼 수 없다는 거다. 자동차 라이트에만 의존해 동네를 벗어날 때면 거대한 우주에서 내가 얼마나 작고 미약한 존재인지 느끼게 된다. 가다가 다른 차라도 발견하면 그날은 운이 좋은 날이다. 내 불빛과 그의 불빛이 합쳐져 주변을 조금 더 밝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다른 차를 발견하면 그 차와 속도를 맞추려 애쓰는 편이다. 60km 넘는 거리에 가로등이 하나도 없는 건 아니다. 가다 보면 아주 잠깐, 1분 정도 가로등이 있는 도로를 지나기도 하는데 그곳은 그 지역을 통틀어 가장 번화한 곳이다.
나는 시골 동네에서 1년을 살다 순천으로 나왔다. 하지만 여전히 직장은 그곳에 있었으므로 매일 출퇴근을 해야 했다. 순천에서 그 동네로 출퇴근하는 동안 살면서 가장 많은 로드킬을 목격했다. 특히 출근길에는 거의 매주 도로에 죽어있는 동물의 사체를 봐야만 했다. 죽은 뒤에도 여러 번 차에 치여 어떤 동물이었는지 가늠할 수 조차 없는 사체부터 아직도 하얀 털이 보송보송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아기 강아지까지. 그런 장면을 본 날은 하루 종일 마음이 무겁다. 도로에 가로등만 있었어도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지는 않았을까. 안타까운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