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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채원 Oct 25. 2022

어린이, 노약자, 임산부는 서울에서 사세요.

서울 사람들은 모르는 이야기

둘째 딸이 13개월일 때였다. 월요일부터 콧물이 조금씩 나더니 목요일에는 열도 났다. 병원에 가서 콧물약을 처방받고 해열 주사를 맞혔다. 열은 이내 떨어졌고 다행히 컨디션도 좋아져 마음을 놓았다. 그런데 새벽부터 다시 열이 나더니 해열제를 먹여도 축 늘어졌다. 오한이 나는지 오들오들 떨기까지 했다. 밤을 꼬박 새우고 아침 일찍 병원에 데려가 해열 주사를 또 맞혔다. 


토요일 새벽 12시 47분, 둘째가 우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 눈을 반쯤 감고 체온을 쟀다. 40.1도. 깜짝 놀라 남편을 깨웠다. 남편이 해열제를 먹이는 사이 응급실을 검색했다. 그제야 알았다. 순천에는 소아응급실이 없다는 걸. 순천에 사는 아이들은 병원 진료 시간에만 아파야 하는 건가. 둘째는 해열제를 먹고 잠들었지만 자꾸 울었고 5시 반에 또다시 자지러지게 울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40.4도. 시간이 더디게 갔다. 7시 반에 소아과에 가서 대기표를 뽑았다. 대기 번호 2번을 받고 집에 돌아왔다가 9시에 병원 진료를 시작하자마자 진료를 받았다. 엑스레이를 찍고 피검사도 했다. 결과는 요로감염이었다. 다행히 둘째는 며칠 입원 치료를 받고 건강하게 퇴원했다. 하지만 아이가 아픈데 아이를 받아줄 병원이 없어 마음이 타들어가던 그날 새벽만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하다.


남편과 결혼하기로 했을 때 우리가 정착할 곳으로 순천을 고른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의료시설이었다. 남편과 내가 모두 직장에 출퇴근할 수 있는 거리에서 의료시설이 가장 잘 되어 있는 곳이 바로 순천이었다. 순천에는 종합병원도 있고 소아과도 있으며 분만이 가능한 산부인과도 있다. 그 정도는 당연히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며 서울 사람들 깜짝 놀라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다. 시골로 갈수록 분만 가능한 산부인과가 거의 없다. 시골로 갈수록 신혼부부가 없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지방에는 의료시설이 많이 부족하고 의료서비스의 수준도 많이 떨어진다. 수요와 공급의 논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생명의 소중함을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서울 사람 목숨이나 지방 사람 목숨이나 똑같이 소중한 것을. 변변한 병원 하나 없는 시골에서 응급 사고가 생기면 그야말로 응급이다. 병원까지 가는 데에만 천리길이다. 그러니 어린이, 노약자, 임산부는 서울에 살아야 한다. 아프면 바로 근처 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는 서울이 최고다. 


살면서 응급 상황이 얼마나 온다고 이렇게 호들갑인가 싶을 수도 있겠다. 응급 상황이 아니더라도 의료시설이 부족해 불편한 점은 많다. 가장 흔한 불편은 선택의 폭이 좁다는 거다. 특정 진료과목의 병원이 많지 않으니 마음에 들든 안 들든 아프면 그 병원에 가야 한다. 그나마 병원이라도 있으면 다행이다. 지방 소도시에 살다가 시골로 발령이 나서 갔더니 없는 병원이 왜 이렇게 많은 지. 새벽에 귀가 너무 아파 타이레놀 한 알 먹고 버티다가 다음 날 조퇴하고 이비인후과에 가겠다고 했더니, 옆반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이 동네에는 이비인후과 없어요."

처음에는 충격을 받았지만 이내 적응했다. 다음 해에 다래끼가 나서 안과에 가겠다는 선생님께 나도 똑같은 말을 했다.

"이 동네에는 안과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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