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네번째 손가락의 반지가 주는 신뢰감

남녀가 일대일로 만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얼마 전에 받았었던 재밌는 질문 중 하나!

"(우리 만나는 거) 아젠다가 뭔가요?"


막연히 친해지고 알아가고 싶어서가 더 컸지만, 아젠다가 없이 만나는게 이상한거구나 문득 깨닫고 엄청나게 많은 아젠다를 두뇌풀가동해서 작성했다. 장기 연애를 하고 있으면 이 부분에서 깔끔했었다. 나와 상대 둘다 아리까리하지 않게끔 깔끔한 아젠다 추구형 만남 제안을 할 수 있었다.


오늘은 별도로 아젠다를 세팅하지 않은 또 다른 티타임이 있었다. 사전에 별다른 소통이 없다가 어느날 통하는게 많을 것 같다는 그의 제안에 어쩌면 나도 "저희 아젠다 뭔가요?" 라고 물어볼 법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의 프로필 사진에 그저 동양풍으로 그려진 새 한마리가 그려져 있을 뿐. 나에게는 /imagine 다음 작성할 prompt가 없었다.


첫만남 답게 각자 살아온 이야기를 터는데, 유독 이 분의 이야기는 나중에 소설로 쓰고 싶다 라는 생각이 많이 드는 특이한(좋은 의미에서, 맑눈광 동료 또 찾았다!) 사람이었다. "무의식 상태에서 문제를 풀기 위해서 펜을 들고 잔다든지. 그러면 펜을 떨어뜨려서 잠은 들지 않는데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서 생각할 수 있어요" << 와 이거 진짜 소설 속에 나오는 설정 같은. "혹시 갑자기 의식을 잃을 것 같으면 얌전히 쓰러지면 안되고 주변 물건을 요란하게 쓰러뜨리세요. 그러면 30초도 안되서 사람들이 달려오고, 의식을 놓을 때쯤 사람들에게 삥 둘러쌓인 광경을 보고 눈을 감을 수 있어요" << 이것은 라이프 꿀팁이기도 했으며, 영화화 한다면 카메라의 구도와 화면 전환 시점까지 뚜렷했다.


너무 드라마틱한 내용이 많아서 으잉? 하는 시점에, 그의 손에서 4번째 반지가 반짝였다. 적어도 나에게 이성적으로 잘 보이기 위한 거짓말은 아닐 것이고, 적어도 오늘 나에게 유망한 사업 기회가 있다고 투자 제안을 하지 않는 것을 보니 이 사람 말을 있는 그대로 들어도 안심할 수 있겠군.


네번째 손가락의 반지는 누군가 말의 신뢰도를 높여주기도 하는구나. 그렇게 커플링이 설명하는 많은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떠올리는 하루였다.


그리고 내 허전한 손가락을 바라보았다. 커플링은 아니지만 연애 초기에 받았던 반지를 두번째 손가락에 피부처럼 끼고 다녔다가 그 물건을 이제 놓아주었다. 긴 시간이 지나고서야 너가 커플링할까라고 제안했을 때, 몇 년간 그렇게 원했는데 돈 아깝다고 넘기던 나의 마음을 무엇이었을까? 그래도 마지막에는 그런 말을 하던 너가 이렇게 갑자기 사라진 건 또 무슨 마음이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