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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이 Dec 18. 2022

하느님 나의 하느님  2

내가 겪은 특별한...

조직검사는 너무 아프고 다신 겪고 싶지 않은 기억이다.

덩어리의 조직을 떼서  하는 게 아니라

미세 석회  조직 검사는  말 그대로 모래알처럼 흩뿌려진 그  모래 조직을 채취해야 하는 것이니

뾰족한 주사로 가슴을 콕콕 찔러대는 것이 검사 방법이었다.

너무 원시적이라고,  지금도 생각하지만 달리 방법도 없다.  수술로 긁어내는 방법 외에는 없으니.


조직 검사 후 암이냐 아니냐의 기로에 선,  만 서른여섯의 나는  지옥 같은 일주일을 보냈다.

아이들은  겨우겨우 학교와 유치원을 보내고  엄마는 아예 상심에 드러눕고  가까이 살던 언니는

하루가 멀다 하고 우리 집에 왔는데 그저 같이 우는 것 외에는 할 일도 없었다.

남편은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해서 한숨을 쉬다가

'맥주나 와인을 마시고 잠을 자'라고 했다.

 

검사 결과는 먼저 알아볼 수도 없었던 게 결론이  예상보다  늦어지고 있었다. 보통 일주일 정도 지나면 환자에게  통보가 되지만 실은  3~4일 만에 결과가 나오는 일이 많기 때문에 지인을 통하면 미리 결과를 알 수 있는데  내 검사 결과는 지연되고 있었다.


 유방에 이상이 있는 경우,  내 주위는 다 암 판정을 받는데 내가 뭐라고 나만  양성일까.  난 특별하지도 않은데.  거의 체념 상태였다.


그런데 한편으론,  수녀님의 전화에 기대를 걸었다.

수녀님은 하느님과 통하는 분인데,  그분이 그 시각에 주일학교 교사를 하라고 전화가 온 건

분명 어떤 뜻이 있지  않을까? 내가 크게 아프면 교사를 할 수 없는데 어쩌면 괜찮을지도 몰라.

확신할  수는 없지만 암이 아닐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는 중에 주일학교 교감 선생님이 한번 더 교사를 하겠느냐는 확인  전화를 하셨다.  나는 검사 결과가 나쁘지 않으면 당연히 하겠다고 힘주어 말하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리고 정말, 조직 검사 결과는 양성이  나왔고

그것은 기적이었다.

그러나  교수님은 미세 석회를 제거하기 위해 입원한 내게  미세 석회의 경우 조직이 제대로  채취되지 않아  결과가 잘못되는 경우가 많다며 막상  열면 1기나  재수 좋은 경우는 상피내암인  0기일 수 있다고 끝까지  확신하시는 듯했다.

수술 전날엔,  나를 암병동에  입원시키고 레지던트가 동의서에 사인을 받기 위한 설명을 했다.

ㅡ일단 미세 석회를 제거해 수술실에서 급속 냉동시켜 바로 검사를  한다.

ㅡ암세포가 발견되면 겨드랑이 전이 여부를 보고

전이가 발견되면 전절제를 할 수 있다.


나는 조금 화가 났다.

  "저기,  선생님  분명 양성(benign)이라고 나왔는데 어째서 암이라고 확신하고 설명하시는 거죠?"

"결과는 그렇지만... 이게 확실치도 않고 교수님께서 일단은 이렇게 진행하자고 하셔서요~."


미세 석회와 결절의 정체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양성종양이었고  나는 30분 만에 그것들을 제거하고 수술장을 나왔다.

담당 교수님은 퇴원하는 날에서야

"정말 드문 경운데... 축하드립니다."

교수님 얼굴은 여전히 의혹에 싸여있었다.

교수님에게 나의 경우는  본인이 쌓아온 오랜 업적과 경륜을 뒤집은, 특이한 환자로 기억될 것이다.



나중에 정기검진을 다니며 들은 얘기지만, 유방외과와 영상의학과 모든 담당 교수님들이

뒤집어졌다고 한다.  촬영과 초음파상에서 이런 형태로 보이는 석회와 결절에서  어떻게  암세포가 검출되지 않았냐  정말

드문 일이고 심지어 처음 보는 일이라고 내 조직에 여러 가지 추가 검사도 시행했다는 것이다.

나중에 외래를 갔을 때 너무 급해서  내 동의 없이 추가 검사를 했다며 얼마를 더 낸 기억이 있다.




그리고 나는 수녀님과 하느님의 약속대로 주일학교 교사가 되었다.  대학교 1학년 때도 동아리 개념으로 주일학교 교사를 하면서 선후배 동기들하고 노는 데만 집중했던 나일론 신자였지만

이번엔 은총과 기적을 체험한 하느님의 어린양으로

감사한 맘을 가득 담고 주일학교 교사 생활을   했다.


하느님이 내게 주신 큰 은총은 이 밖에도 더 있었고

나는 작은 일에도 더욱 주님께 매달리게 되었다.

심지어 혹시 나를 편애하시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 때면 행복하고도 두려웠다.

왜냐면  세상에 일어나는 끔찍하고 슬픈 일들을 보면 하느님은 미워하는 사람이 너무 많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니 미워하는게 아니라 실은

존재는 하되 아무 역할이 없으신건 아닌가 의혹도 일었다.

 차츰 냉담을 하게 되면서  성당에  나갈 때나 안 나갈 때나 내 행복이나 불행의 무게는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세상은  여전히 혼란스럽고 사탄이 너무 많았다.


나는 결국  냉담자가 되었다.

그러나 내가 겪은 특별한 일은 내가 하느님을 외면하고 심지어 원망하는 순간에도  세상에 신이 없다고 말할 수 없는 강력한 증거가 되었지만,  신을 믿는다면 그 종교가 반드시 천주교일 필요가 있을까 하는 회의에도 사로잡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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