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3대째 하느님을 믿는 집 안의 천주교 신자다. 지금은 기분 내키면 가서 고해성사도 없이 영성체를 모시는 못돼먹은 '하느님의 잃어버린 어린 늙은 양'이지만.
2006년인가? 공짜를 좋아하는 나는 한국방송작가협회에서 무료로 건강검진을 해준다는 말을 듣고 종로구의 병원에서 검진을 받았다. 무료라 해서 갔는데, 중간에 만난 의사 선생님이 마른 몸에 비해 내 목이 두꺼운 것 같다며 갑상선 초음파와 호르몬 관련 피검사를 하라고 해서 깜짝 놀라 십 수만 원을 더 냈다.
한 달 후, 집으로 날아온 결과지에는 내 돈 내산 검사받은 갑상선은 이상이 없고(그냥 목이 두꺼운 걸로 ㅠ)
유방에 미세 석회와 결절이 있으니 정밀검사를 받으라고 했다.
미세 석회에 대해 찾아보니 10퍼센트는 유방암 가능성이 있는 증상이었다.
겁이 덜컥 난 나는 (나보다는) 뭔가 많이 알 것 같은 남편에게 말했더니 , ㅍㅎㅎㅎ 웃으며 가라사대~~
"간이 없는 사람이 간암 걸리겠냐? 걱정 말자~"
이거 분명히 기분 나빠서 펄펄 뛸 얘긴데, 나는 그저 걱정 말자는 얘기가 너무 좋았다.
그리고 진짜 걱정 안 하고 지냈다.
더군다나 친정엄마께 말씀드렸더니
"석회? 그거 나도 있단다. 엄마는 치료 필요 없다 하던데?"
오 그것도 유전이구나... 넘겼다.
두 아이들 유치원 라이드 하랴 큰 아이 초등학교 추첨하랴 바쁘기도 했다.
그렇게 2~3년이 지난 어느 날,
생파도 같이하고 항상 어울리던 친구 두 명이 연달아 유방암에 걸렸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한 친구의 문병을 다녀오던 날 불현듯 내 가슴의 미세 석회가 떠올라 불안에 떨며 큰 병원에 예약을 했다.
"나라고 예외일까?"
유방초음파 검사와 유방 촬영술을 했는데 초음파를 하던 펠로우쯤 되는 의사가 한 군데를 집중적으로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한숨을 쉬었다.
"문제가 있나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묻자
"네! 문제가 있어요"
씩씩하게도 대답한다.
지금 그녀는 어떤 의사가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참으로 돼먹지 못한 자세를 가진 젊은 의사였다. 그녀의 한 마디로 나는 암 선고를 받은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막상 담당 교수는 말을 아꼈다.
"음 그러니까 음... 일단 조직검사를 해봐야 할 것 같아요."
같이 따라온 엄마가 울먹이며 물으셨다.
"안 좋은가요 선생님..."
"암일 수도 있나요?" 나도 물었다.
교수는 망설이다 대답했다.
"반이상은.... 암일 수도 있다고 보입니다~"
(에둘러 말했을 뿐 "경험상 암 100프로입니다" 그렇게 들렸다)
친절한 교수님은 다음 주로 수술 날짜를 잡아주고 그날 조직 검사를 했다.
미세 석회는 말 그대로 유방조직에 모래같이 석회가 뿌려져 있는 것이다.
엄마의 석회는 작은 손톱만 한 덩어리로 칼슘이 뭉친 석회여서 딱 봐도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란 것도 알게 됐다. 같은 석회지만 위험도는 하늘과 땅 차이인 모양이었다.
나를 놀리던 남편 표정도 굳어졌다.
조직검사를 하던 날, 결과도 안 나왔는데 수술 날짜가 잡히고 수술 전 검사를 했다.
피검사 골밀도 검사 엑스레이 등등 항암을 견딜 수 있는지를 보는 검사도 같이 했다.
가운으로 갈아입고 조직 검사를 기다리던 내 핸드폰에 수녀님 번호가 떴다.
2년 전부터 성당에서 뵙기만 하면
"미카엘라 자매님, 주일학교 교사를 해주세요!"라고 부탁하셨던 마리아 수녀님... 나는 매몰차게 거절해오던 차였다.
아이들을 봐주는 시터를 두고 간헐적으로 일을 나가던 나는 '남편은 바쁘고 도움받을 곳 없이 아이 둘을 키우며 일하는 가엾은 엄마' 행세를 하며 딱 잘랐다.
이 날 역시, 수녀님은 같은 용건으로 전화를 하신 것이었다.
같은 물음에 이번엔 나도 모르게 외치듯 말했다.
"수녀님... 제가 지금 어디가 안좋다해서 병원에 와있어요. 검사 결과가 괜찮으면 주일 학교 교사를
하겠습니다."
사람은 이렇게 간사하다. 아니 내가 특별히 더 그런지도.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