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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대표 Jul 13. 2020

깨달음, 그리고 전환

사뭇 진지한 취미 이야기

타고난 맥주병은 아니지만 수영을 배우다 말아 나는 수영을 잘하지 못한다. 초등학교 시절 물에 빠져 죽을 뻔(?)한 기억도 있어 그런지 물이 아직 무섭다. 때문에 20미터 남짓 헤엄을 쳐 갈 수는 있지만 물에 떠서 간다기보다 서서히 가라앉으면서 가까스로 20미터 정도 간다고 보는 게 맞겠다. 싱가포르 와서는 집 앞에 바로 수영장이 있어 이참에 배우기로 결심하고, 아이들 가르치는 선생님에게 와이프와 함께 배우고 있다.



첫 레슨에서 와이프는 물장구만 쳐도 쭉쭉 나가는데 난 아무리 물장구를 쳐도 몸이 앞으로 좀처럼 나가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코치는 몸이 잘 뜨지 않아서 그렇다며 상체는 조금 떠 있는데 하체가 가라앉아 있다는 거다. 따라서 발이 물 안 깊이 있을 수밖에 없고 물장구를 아무리 쳐도 잘 나가지 않는다는 거다. 이걸 본 코치는 목을 쭉 펴서 물속에 머리를 더 박아 보라고 얘기해줬다. 목을 쭉 펴서 등과 평행하게 하면 상체가 뜨면서 하체도 같이 뜬다는 거였다. 본능적으로 물이 무서워서 머리를 푹 물속에 담그지 못했는데, 용기를 내어 목을 쭉 펴서 얼굴을 물 바닥을 보려고 하니 상체가 잘 뜨면서 하체도 같이 뜨는 거 아닌가? 그 상태로 물장구를 치니 몸이 앞으로 쭉쭉 나간다!!!



40년 넘게 맥주병으로 살았던 내게 획기적인 사건이나 다름이 없다. 물에 뜬다, 내가!! 아직 내가 갈 수 있는 길이는 30미터 남짓이다. 아직 호흡이 짧고 유연하게 헤엄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나름대로 세운 목표인 100미터를 한꺼번에 가기 위해선 더 연습이 필요하겠지만, 이젠 몸이 앞으로 나아가긴 하니 맥주병 탈출 가능성이 보인다. 이렇게 남들은 다 아는, 그러나 나만 몰랐던 팁을 습득하고 적용해 깨달음을 얻게 되면 전환점이 생긴다.



이런 팁을 습득하면 좋겠다는 또 다른 분야가 있는데, 뭐니 뭐니 해도 내겐 골프다. 스윙 스피드를 높이는 팁을 알아내려고 오랜 시간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프로 스윙을 보면 세게 치는 거 같지 않은데 말도 안 되게 멀리 간다. 힘을 쓰는 요령이 있는 거다. 이걸 나도 따라 하고 싶은데 도무지 방법을 모르겠다. 멀리 보내려는 욕심에 쓸데없는 힘을 쓰기 일쑤고, 그러다 보면 미스샷이 나온다. 작은 공을 멀리 정확히 보내는 게 골프라 일관성이 중요하고, 일관성을 유지하려면 쓸데없는 힘을 쓰면 안 된다.

내가 다니는 연습장


뭔가 알듯 말 듯 이런 상황이 벌써 수년째 지속되는 상황이라 답답하다. 수영에서 40년도 넘은 묶은 숙제를 이번에 풀고 나니 골프에서도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생겼다. 그동안 물이 무서워 엄두를 내지 못했지만, 머리를 집어넣을수록 몸이 더 뜬다는 걸 알게 되니 별게 아니었던 것처럼 골프에서도 어떤 느낌을 알면 지금보다 더 멀리 정확히 공을 멀리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취미라고는 하지만, 내 일생의 프로젝트나 다름없는 골프라, 하루라도 빨리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 그런 날이 곧 올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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