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향에 따라, 처한 환경에 따라 해외 생활 만족도는 다르다
최근 짬이 나 브런치 글을 찾아보다 싱가포르 생활에 아주 만족하고 있다는 글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글의 요지는 "싱가포르는 살기 무척 좋은 반면에, 한국은 살기 좋지 않다" 였는데, 예상대로 그 글에 동조하는 답글도 있었지만, 이런 글의 요지를 비난하는 답글도 꽤 달렸다. 싱가포르가 좋다 정도로 마무리되었으면 좋았을 텐데, 한국 살이를 비난하니, 그 글을 보고 기분이 좋지 않을 분도 꽤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의 판단은 최대한 자제하고 사실만을 적어 보려고 한다. 해외 생활이 한국 대비 어떤지에 대한 판단은 독자의 몫이 되겠다.
내국인 vs 외국인
내국인이라면 받는 혜택이 외국인이 되는 순간 없어진다. 싱가포르에서는 학비나 의료비 모두 100% 자비로 부담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저렴한 학비로 학교를 보낼 수 있는 반면 싱가포르 국제학교 학비는 현실감이 없이 비싸다. 최소 연 2만 불에서 많게는 5만 불까지 든다. 예전에는 외국인도 싱가포르 공립학교 들어가기가 수월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고 공립학교 학비도 꽤 많이 올라 저렴한 국제학교 대비해서 학비에서 이익도 거의 없는 수준이다. 의료비의 경우 규모가 있는 외국계 기업에 다니면 회사 보험으로 커버가 되긴 하지만, 한국과 비교할 수준이 아니다. 한국이 훨씬 보장 범위도 넓고 의료 수준이 높다. 게다가 이 나라, 은근히 내국인과 외국인 차등을 둔다. 내가 자주 가는 퍼블릭 골프장의 경우 내국인은 주말 120불, 영주권자는 140불, 그리고 외국인은 225불이다. 또 우리나라에 있는 어린이 과학관 같은 곳이 있어 와이프가 애들을 데리고 최근에 다녀왔는데, 외국인인 우리는 세명이 50불 남짓 냈지만, 내국인은 주중에는 무료, 주말에는 20불 남짓을 부담한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이렇게 요금에 외국인 차등을 두는지 잘 모르겠는데, 싱가포르는 그렇지 않다. 이렇게 국가에서 운영하거나 공공기관에서 운영하는 시설의 경우 체류 신분에 따라 요금에 차등이 있는 경우가 꽤 많다.
물가
외국인으로서 비용을 더 감당해야 하는 것과는 별개로 물가도 싱가포르가 더 높다. 일반적인 식재료는 한국과 큰 차이가 없다. 고기나 야채도 모두 수입이긴 해도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비싸지 않다. 오히려 닭고기나 돼지고기의 경우 비슷하거나 저렴한데 품질이 우리나라보다 낫다. 하지만 공산품으로 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어지간한 건 한국의 1.5배에서 2배가량이다. 한국처럼 물건이 다양하지도 않지만 너무 비싸다. 외식물가는 한국 대비 많이 싸거나 많이 비싸다. 호커 센터에서는 3~4불에도 한 끼 해결할 수 있지만, 일반적인 식당에서 밥을 먹는다고 하면 15불 이상은 생각해야 한다. 술까지 마시면, 답이 없다. 그리고 물가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주택 렌트비이다. Propertyguru에서 집을 알아보다 재미있는 리스팅을 보았는데, 내가 사는 콘도에서 방 하나 렌트가 나온 모양이었다. 월세는 800불, 대략 70만 원 정도인데, 이 방은 우리 집에도 있는 헬퍼 룸으로 폭 1미터, 길이 2.5미터로 우리나라로 치면 쪽방 크기다. 이런 방 하나도 월 800불이니, 이보다는 좀 크겠지만 방과 거실이 분리되어 있지 않은 스튜디오도 비싼 곳은 2000불은 지불해야 얻을 수 있다. 가족 3~4명이 사는 방 3개 정도 되는 집의 렌트비는 3000불은 기본이다. 이렇게 따져보면 어느 정도 벌어야 이곳 생활이 가능한지 대략 가늠해볼 수 있을 텐데, 대략 한국 기준으로 이야기하면 서울에 산다고 생각하고 생활비를 가늠하면 대략 맞다.
양육 여건
한국보다 헬퍼 비용이 저렴하다 보니 아이를 기르는 건 조금 더 수월할 수도 있다. 헬퍼 또는 이모가 아이를 잘 보고 못 보고를 떠나서 한국에서는 적어도 월 200만 원은 줘야 구할 수 있지만 여기서는 헬퍼 고용에 따른 세금을 포함해도 월 100만 원이 넘지 않는다. 하지만 위에 학비 이야기도 했지만, 어린이집(Child care)나 유치원 (Kindergarten)을 보내야 하는 상황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외국인 신분이기 때문에 싱가포르 사람처럼 원비 보조를 받지 못한다. 따라서 Child care 기준, 오전 7시에서 저녁 7시까지, 최소 월 1500불 이상은 부담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에서 어린이집은 양육의 질을 떠나서 거의 무료로 운영하고, 일반 유치원은 월 40만 원 안팎이면 보낼 수 있다. 따라서 비용적인 측면에서는 싱가포르 양육 여건이 한국보다 좋다고 이야기하기 어렵다. 다만, 번외로 싱가포르는 365일 여름 날씨라 물놀이를 좋아하는 어린아이들에겐 천국일 수는 있겠다.
직장 문화 차이
많은 사람들이 이곳 직장 문화가 더 자유로울 것이라 생각한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다. 많은 한국 사람들이 이곳에 오는 경우는 한국 기업 싱가포르 지사로 파견을 오거나 외국계 기업 싱가포르 지사로 오는 경우인데, 전자는 한국 기업과 같은 조직 문화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 논의에서 제외하고, 후자를 이야기해보면, 외국계 기업 싱가포르 지사도 싱가포르 출신과 그 외 다른 나라 출신과 문화 차이가 있다. 일례로, 최근 우리 회사에서 사무실 출근 재개에 대한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는데, 멕시코 출신 내 매니저는 싱가포르 출신 인사 담당자를 이해를 못하겠다며 하소연하더라. 집에서도 충분히 일할 수 있는데 코로나바이러스 위험에도 불구하고 출근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내 매니저가 인사담당자에게 이야기하자, 인사담당자는 '집에서 일하면 직원이 일하고 있는지 아닌지 어떻게 알겠는가?'라 답했다고 한다. 어디서 많이 들어봄직한 이야기 아닌가? 여기도 서양 출신이 많은 직장은 소위 자유로운 직장 문화를 가지고 있을지 몰라도, 싱가포르 출신을 포함한 동양 출신 사람들이 많은 곳은 한국과 약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소위 자유로운 직장 문화를 가지고 있지도 않다. 또 이런 직장 문화는 산업군에 따라도 무척 다르다. IT 쪽이라면 조금 더 자유로운 분위기가 있을지 몰라도 일반 산업군은 한국과 대동소이하다. 즉,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고 보는 게 맞다.
직장에서의 기회
일반적으로 싱가포르에 수많은 기업의 아시아 헤드쿼터가 있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 보니 Regional(Cluster) Role을 하는 경우 기회가 많을 수밖에 없다. 또 동남아 지역을 커버하는 Role도 있으니 기회 측면에서는 한국보다는 나은 점도 꽤 있을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바이러스란 변수가 생겼다. 앞으로 많은 기업들이 어떻게 운영할지 앞으로 더 보아야 하겠으나, 재택근무가 더욱더 보편화될 거라는 예상은 해볼 수 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고 볼 때 과연 싱가포르가 예전과 같은 위상을 가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굳이 헤드쿼터를 싱가포르에 두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아시아 지역을 책임지는 사람이 한국인이라면 한국에, 중국인이라면 중국에 헤드쿼터를 두어도 될 일이고, 극단적으로는 헤드쿼터의 의미가 더 약해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부분은 부득이 내 판단이 들어가게 되는데, 과거엔 한국보다 더 다양한 기회가 있었지만 코로나바이러스로 앞으로는 미지수라고 정리해볼 수 있겠다.
인간관계
단순해진다. 한국에 있는 수많은 지인과 교류할 기회가 끊기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최소 1주일에 1회 이상은 고객 혹은 지인과 약속이 있어 저녁 늦게 집에 왔다. 하지만 지금 싱가포르에서는 물론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이긴 하지만 저녁 약속은 아예 없다. 코로나바이러스가 끝난다고 해도 크게 바뀔 거 같지 않다. 따라서 이곳에서는 나와 가족 중심으로 모든 게 돌아간다. 이런 걸 선호하는 사람은 생활 만족도가 높다. 이 때문이라도 싱가포르 생활이 한국보다 훨씬 더 좋다고 생각하기 쉽다. 즉, 사람 만나기를 즐기는 사람들은 싱가포르가 심심할 것이고, 사람 만나는 것이 스트레스가 되는 사람들은 싱가포르가 천국일 것이다. 원하지 않는 만남은 가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싱가포르에 살면 외국인으로 살면서 치러야 할 비용이 있고, 게다가 물가는 한국보다는 비싼 편, 직장문화는 케이스 바이 케이스다. 직장에서의 기회는 조금 다 다양할지 모르나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앞으로 어떨지는 미지수이고,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적지만, 적극적인 인간관계를 맺기 좋아하는 사람에겐 심심하다. 연봉 빵빵하고, 자유로운 직장 문화를 가진 회사에 다니면서 가족 중심의 생활을 선호하는 사람의 경우 만족도가 높겠지만, 만족스럽지 못한 연봉받으면서 한국과 다를 바 없는 분위기의 회사를 다니고 가족도 소중하지만 타인과의 인간관계 역시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의 경우 여기 있을 이유가 적겠다. 즉 사람의 성향에 따라 그리고 처한 환경에 따라 해외 생활 만족도는 달라진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한 개인이 해외에 살아보니 한국보다 훨씬 좋다며 한국을 깎아내리는 것도, 또 다른 개인이 해외 살이는 별게 없다며 한국에서 생활이 최고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생각도 처한 환경도 다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