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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ko Dec 13. 2019

쿠알라룸푸르 엄마들의 놀이터 '방사르 빌리지'

말레이시아 쇼핑 품목 "강남 필통 스미글"

인복은 타고난다더니 지난달까진 아이가 감기 기운을 보이면 어학원에서 만난 현직 종합병원 간호사인 영미 씨가 도움을 주어 참 고마웠다. 영미 씨는 주재원 남편의 휴가에 맞춰 호주로 긴 여행을 떠났고 그 빈자리를 유쾌한 부산 언니들이 메꿔주었다. 그 덕에 아이 등원 후 커피도 마시고 먼저 육아를 경험 한 언니들에게 아이 관련 수다도 떨고 그것만으로도 참 좋은데, 요 며칠 아이가 컨디션은 좋은데 밤 시간에만 미열이 생겨 아침 등원 길에 만난 부산 언니들에게 병원을 가기도 애매한 38도를 오르내린다 푸념하니 아이 하원 시간에 맞춰 언니들이 집으로 같이 가자고 하셨다.

내 복인지 아이의 복인지는 모르겠으나 유쾌한 줄로만 알았던 부산 언니는 종합병원 소아과 전문의였다. 모처럼 긴 휴가를 내고 아이와 방학 시즌에 쿠알라룸푸르 한 달 살기를 온 것이다. 챙겨 오신 청진기로 꼼꼼히 진료를 봐주시고 아이는 가벼운 감기이니 걱정 말라고 하시며 주사도 놔주셨다. 얼떨결에 받은 고마움에 식사라도 대접하고 싶은데 부산 언니들의 자녀들이 오후에 미술 수업이 있어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나왔다. 아이는 열이 더 이상 오르지 않았고 낯선 이국땅에서 아이가 아플 때 누군가 곁에서 도와준다는 게 너무 감사했다.

그런 언니들에게 작은 정성이라도 표하고 싶어 어학원 수업이 없는 날은 평소 좋아하는 '방사르 빌리지(bangsar village)'에서 브런치를 할 예정이던 차에 그곳에 있는 "스미글(Smiggle)" 매장을 방문하기로 했다. 호주에서 온 '스미글'은 한국에선 "강남 필통"으로 불리는데 특정 지역의 이름을 딴 건 우습지만, 호주 브랜드이고 주 고객층인 아이 엄마들에게 높은 가격대의 제품을 쉽게 어필하기 위해 이런 별명이 붙은 것 같다. 그래서 포털 사이트나 엄마들 사이에선 브랜드보다 '강남 필통'이라는 호칭이 더 익숙하게 알려져 있다. 이곳에 오기 전 은마상가에 들러 현미 누룽지를 여러 봉지 싸들고 왔는데 그 누룽지 이름도 '강남 누룽지'이니  그냥 불리기 편한 이름쯤으로 생각해도 될 듯싶다.

 "스미글(Smiggle)"

'스미글'은 작년부터 국내에도 대형 마트 일부 매장에 납품되고 있지만, 브랜드 본사인 호주와 한국보다는 지리적으로 가까워선지 한국에서도 천만 관객을 동원했다는 '겨울왕국' 시리즈로 디자인된 신상품이 좀 더 다양하게 구비되어있다. 매장은 쿠알라룸푸르의 대형 쇼핑몰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고 나는 여타 쇼핑몰에 비해 한가로운 '방사르 빌리지' 지점을 찾았다.

그날의 '방사르 빌리지(bangsar village)'

쇼핑에 앞서 내가 좋아하는 이곳 '방사르 빌리지'를 소개하자면 초고층의 빌딩 숲이 스카이 라인을 이루는 KLCC 시내 혹은 국제학교와 고급 콘도가 빼곡히 들어서 대형 아파트 단지 같은 '몽키아라'와는 달리 조용한 고급 주택단지에 '방사르 빌리지'라는 쇼핑몰 주변으로 인기 카페와 브런치로 유명한 레스토랑이 들어선 동네이다. '한국의 가로수길'이라는 표현도 있지만, 지금의 가로수길은 중국 관광객이 찾는 거리로 분위기가 바뀐 지 한참 된 일이라 예전 유명 카페들이 있던 시절의 압구정동, 신사동 느낌과 비슷할 수 있겠다.  

'Google'에서 '10 Best Cafes in Kuala Lumpur'로 검색된 카페의 절반이 이곳 '방사르 빌리지'에 위치할 정도로 유명 카페들이 포진되어있고 한국에도 많이 알려진 'Antipodean', 'VCR', 'Acme Bar Coffee' 등 수준 높은 커피와 맛있는 브런치가 있는 유러피안 스타일의 카페를 쿠알라룸푸르에서 찾는다면 방사르 지역이 답일 것이다.

Cafe ‘VCR’ bangsar village

내가 그날 방문한  'VCR'의 대표 메뉴는 껍질째 부드럽게 씹히는 '소프트크랩'이 통째로 들어간 'softshellcrab burger'이다. 이곳을 검색하면 'Instagrammable'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하는데 그만큼 맛있으면서 포토제닉 한 브런치 메뉴들이 있어서이다. 식사 메뉴와 함께 주문한 커피도 산미가 있는 개운한 맛으로 크랩 버거와 잘 어울렸다. 대개의 모양이 예쁜 메뉴들은 맛이 기대 이하인 경우도 많은데 짭조름하니 부드럽게 씹히는 소프트 크랩도 괜찮지만 참깨가 가득 뿌려진 번 도 부드럽고 맛있었다.


혼밥 브런치를 마치고 선물을 사러 쇼핑몰로 나섰다. 카페에서 대각선으로 조금만 걸으면 도착하는 '방사르 빌리지'는 평일엔 늘 한적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이다. 이곳엔 아이들 그림책을 사주기 좋은 서점 '보더스(Borders)'와 '짐보리(Gymboree)' 그리고 키즈카페와 레고 전문 매장이 있어 아이와 오기도 좋지만, 나는 이곳만의 여유로움이 좋아 늘 아이 등원 후, 혼자 오곤 한다.

'보더스(Borders)'

쇼핑몰이 대중교통과 연결되어 있는 곳이 아니고 대부분 자차나 Grab을 이용하는 고객들이 찾는 곳이라 여타 지하철과 연결된 쇼핑몰에 비해 한적하고 규모가 크진 않지만, 우리에게도 익숙한 ZARA, Massimo Dutti 외 의류 브랜드와 말레이시아 고급 로컬 브랜드 '날라(Nala)' 등 엄마들도 쇼핑할 만한 브랜드가 꽤 있다. 특히 '날라'의 경우는 가격은 다소 고가이나 태국에 가면 '짐 톰슨 (JIM THOMPSON)', 중국에선 '상하이 탕(Shanghai Tang)'처럼 해당 국가에서만 볼 수 있는 대표적인 고급 제품이라 한 번쯤은 둘러보고 선물이나 기념품으로 작은 소품을 쇼핑해 보는 것도 여행의 재미일 것이다.

말레이시아 고급 로컬 브랜드 '날라(Nala)'

나의 어학원 선생님인 쟈넷에게 보낼 크리스마스 카드와 아이에게 줄 페파 피그 사운드 북을 산 후, 서둘러 '스미글' 매장에 도착했다. 부산 언니들은 딸이 둘에 아들 한 명, 선물을 담다 보니 내가 쿠알라룸푸르에서 지내는 동안 우리 집 노견을 매일 같이 산책시키고 돌봐주고 있는 예쁜 조카를 위한 겨울왕국 한정판 엘사 보조가방도 담았다. 사실 대표상품인 필통 가격이 한국과 아주 크게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 이곳에서도 계산기가 붙은 제품은 RM99링깃으로 국내에서 3만 원에 판매되는 큰 차이는 없지만, 시즌 오프 기간으로 25% 할인이 적용되고, 프로모션 상품 구색이 많아 한국 대비 조금 더 다양한 품목을 선택할 수 있다.

사우나 가기와 카페에서 혼자 커피 마시기가 나의 소박한 취미인데 다행히 이곳에는 꽤 괜찮은 카페들이 여럿 있다. 지난주엔 사이버 세상의 선구자 같은 블로거 덕에 한국처럼 좋지는 않지만 어쨌든 스팀 사우나가 있는 찜질방스러운 곳을 몽키아라에서 25분 거리에 있는 '푸두(Pudu)'에서 찾았다. 탕에 들어갈 때 무조건 1회용 속옷을 위, 아래 모두 갖춰 입어야 하고, 아무도 벗고 다니지 않으며 같은 가격에도 남탕에 비해 시설이 현격이 떨어지지만 이곳이 이슬람 문화임을 감안하면 어쨌거나 모라도 있어주면 다행인데 특이하게 뷔페식 식사가 포함된 말레이시아의 찜질방 체험기도 추후에 브런치에 담으려고 한다.

해외 살이와 여행의 즐거움은 개인이 좋아하는 것에 따라 각자의 여행이 다를 것이다. 운동을 좋아하는 이는 골프장이 저렴하니 그것을 십분 활용하면 좋고, 수영을 배우고 싶다면 머무르는 숙소의 수영장에서 개인 강습을 편히 받는 게 저렴한 곳이 말레이시아이다.

나는 어느 지역에서건 아지트 같이 곳을 만들곤 하는데 쿠알라룸푸르에서 지내는 동안은 바로 이곳 '방사르 빌리지' 부근이다. 아이들을 위해 말레이시아 한 달 살기 혹은 더 긴 기간 쿠알라룸푸르에서 지내는 동안 나와 비슷한 취미로 혼자 커피 한 잔과 브런치를 즐길 수 있는 곳을 찾는 이가 있다면 한 번쯤은 이곳 '방사르 빌리지'근처에서 시간을 보내기를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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