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 많은 아줌마의 로컬 사우나 방문기
쿠알라룸푸르에 온 지 곧 두 달이 되어간다. 아이도 나도 유치원과 어학원으로 루틴 하게 돌아가는 일상에 적응을 비교적 무리 없이 하였고 말레이시아 로컬 음식이 입맛에 썩 맞지 않아 드디어 좀 작아져보려나 했던 기대와 달리 화교들도 인구의 한 축인 다민족 국가이니만큼 중식당이 맛있고 특히 딤섬과 돼지고기 요리가 정말 맛있으니 이곳에 와보지 않았다면 무슬림 국가로 으레 돼지고기는 없을 것이라고 잘못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물론 한식당도 맛있다. 몽키아라 인근의 청학골, 다오래, 진진수라, 왕족 모두 괜찮고 가장 많이 포장해오는 음식은 원몽키아라 지하에 있는 '촌닭'의 통닭과 김밥이니 도무지 작아질 틈이 없다. 과일이 저렴한 건 어느 동남아 국가를 가도 비슷한데 지금 계절이 과일이 맛있을 철은 아니지만, 호주에서 수입해오는 엄청 큰 사이즈의 애플망고가 다른 망고들에 비해 가격은 높아도 한국이나 일본과 비교하면 반값이기에 지난봄 미야자키에서 애플망고 맛을 알아버린 아들내미와 종종 '자야 그로서리(Jaya GROCER)'에서 애플 망고를 사다 먹고 있다.
하여, 쿠알라룸푸르에 와서 가장 아쉬운 게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의 소박한 취미인 사우나를 가지 못하는 점이 아쉽다. 물론 이곳도 괜찮은 호텔에는 사우나 시설이 있지만, 전 세계 어디를 가도 호텔은 안전을 위해 12세 미만의 아동은 사우나 입장을 불허하니 주말에 호캉스를 간다 해도 이용은 어렵다. 더운 나라다 보니 사우나를 이용하지 않아도 에어컨이 없는 야외에 서 있으면 땀이 주르륵 나지만, 옷을 입은 채 흘리는 땀과 홀가분한 상태로 흘리는 땀은 다르지 아니한가. 말레이시아 한 달 살기를 계획한 순간부터 사우나 검색을 지속해 왔지만, 도무지 찾기 어려웠다. 구글링을 해도 SPA 마사지숍만 검색되거나 이곳에서 먼 이포에 있는 노천탕이 검색되곤 했는데, 지난주 수요일 아침에 등원과 어학원에 갈 준비를 하며 노트북에서 쿠알라룸푸르 사우나를 다시 한번 검색해 보니 당일 아침에 막 올라온 블로그 글이 있는 것이 아닌가? 너무 고마움에 평소 쑥스러워 달지도 않는 댓글로 선구자인 당신께 진심으로 고맙다는 인사말을 남긴 후 오전 내내 그곳에 갈 생각에 신이나 있었다.
어학원 수업이 끝나자마자 '그랩(Grab)'을 타고 방문한 'Royal Kenko' 위치는 쿠알라룸푸르 '푸두(Pudu)'라는 지역인데 특별한 관광지는 없고 재래시장이 크게 있지만, 한국인들이 주로 가는 지역은 아니다. 몽키아라 어학원에서 그랩으로 20분 정도 거리였고 붉은 빛깔의 건물이 사람이 없는 도로변 옆에 있어 처음엔 여기가 맞나 한참을 의심했다. 다행히 1층에 종이 간판으로 'Royal Kenko' 5F라는 표지판을 발견했고, 이보다 더 음산한 분위기의 브릭필즈의 맹인 마사지도 단골 삼은 나이기에 바로 올라갔다.
5층에 내리니 화려한 샹들리에 장식의 조명과 벨벳 의자가 놓인 리셉션이 기다리고 있었고, 안내를 받은 후 바로 입장하였다. 처음 경험해 보는 쿠알라룸푸르의 사우나는 형태 자체는 우리나라의 대형 찜질방처럼 다양한 위락시설이 함께 하고 있었다. 층별로 각기 다른 공간이 배치되어있는데 한가한 평일 점심시간에 나타난 한국인 아줌마를 처음 보는지 어떻게 알고 찾아왔냐는 놀라움을 표현하며 설명도 친절히 해 주었다. 이곳은 시간제 별로 입장권을 판매하는데 6시간 RM99링깃부터 시작한다. 이 나라의 물가를 고려하면 높은 금액이나 지금부터 차근히 설명하는 입장권에 포함된 내용을 보면 괜찮은 가격이다.
무엇보다 쿠알라룸푸르의 사우나 복합 공간의 신기함은 식사가 포함되는 것인데 바로 뷔페식 식사가 입장권에 들어가 있다. 사우나 내부에 대한 설명 후 좀 더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우리나라로 치면 나쁘지 않은 점심 뷔페 수준은 되는 것 같다. 입장권을 구매하면 기본 사우나와 함께 작지만 편하게 거의 누워서 보는 의자를 장착한 영화관, 노래방, 당구장, 헬스장, 피시방, 수면실을 사용할 수 있다.
남성과 여성은 사우나와 욕탕만 구분되어 있고 나머지 위락 시설은 모두 공용으로 사용해 가족 또는 연인 단위로 찾는 느낌이다. 먼저 여성 사우나로 입장하니 안에서 직원이 사물함으로 안내해 주며 커다란 타월을 먼저 주었다. 사우나 내부는 다소 아쉬웠던 부분이 남성 사우나의 경우 꽤 규모가 있는 큰 대욕탕이 있는 반면에 여성은 대욕탕이라고 하기 애매한 작은 탕이 있는데 1인용으로 보면 된다.
내부엔 우리나라의 찜질방 옷과 비슷한 옷도 대여하고 샤워 가운도 비치되어있는데 직원은 먼저 식사를 할지 아니면 사우나를 이용할지 물어본다. 나는 사우나에 목말라 있었기에 먼저 씻겠다 하니 타월을 주고 샤워장까지 또 안내를 해 준다. 그러는 데는 이유가 있다. 우리나라와 가장 큰 차이점은 이곳은 무슬림의 나라이다. 그래서 이곳이 여성들만 있는 공간이어도 아무도 헐벗은 채 돌아다니지 않는다. 샤워를 마치고 타월을 두르고 나오니 사우나도 타월을 두른 채 이용하게 되어 있었고, 심지어 바스 탕에 들어갈 땐 일회용 속옷을 상, 하의로 준다. 바스 탕에서도 올 누드는 안 되는 것이다. 이곳의 문화이니 따르는 게 맞기에 안내대로 이용했고 이용하는 내내 손님이 나뿐이라 그 점이 참 좋았다. 나중에 보니 시간이 딱 점심시간이라 모두 한층 아래인 뷔페 레스토랑에 있었다. 사우나도 탕도 모두 작았고 특히 사우나가 한국에서처럼 뜨끈하지 않았지만, 사우나 밖 냉장고엔 차가운 타월들이 놓여있어 사우나에서 나와 냉탕에 직행을 못하는 걸 차가운 타올로 대신했다. 신기한 건 한국에서 '닥터피쉬'라고 불리는 각질 먹는 물고기들이 들어있는 작은 탕도 있었다. 나는 그 느낌을 좋아하지 않아 이용하지 않았지만 나름 이색 체험으로 보였다. 때는 99년도 낭만적인 오스트리아에서 왠지 스산한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넘어갔을 때, 8차선 왕복 도로에 횡단보도가 없어 기절초풍하며 길을 건너고 인덕션으로 라면 끓이는데 1시간 걸릴 정도로 열악한 아파트에서 지냈지만 부다페스트의 온천 하나로 모든 게 좋았을 만큼 온천과 사우나를 좋아하는데 시설은 비록 작지만 쿠알라룸푸르에서 지내며 근 두 달 만에 사우나에 왔다는 점이 좋았다.
리셉션의 안내대로 한 층 내려가니 여자 사우나에선 한 명도 못 봤던 사람들이 이곳에 다 모여있었다. 뷔페 레스토랑은 규모가 컸고 그릇을 치워주는 직원은 너무 친절했다.
말레이시아에 오면 꼭 한 번은 먹어보는 인도네시아식 꼬치구이 '사테(satay)'도 있고 치킨 죽과 파스타 그리고 양고기와 소고기, 인도식 카레에 주 고객이 차이니즈 말레이시안인지 중국이나 대만 편의점의 요상한 향의 주범인 까만 오리알도 있다. 과일과 샐러드도 파파야와 수박 등 나름 종류별로 갖춰있고 가장 인기가 많은 것은 치킨과 새우튀김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은 건 '호킨 미(Hokkien Mee)'와 '락사(laksa)'등을 주문하면 즉석으로 끓여 주는데 나는 얼큰한 새우탕맛 '호킨 미'를 좋아해 사우나 다녀와 말레이시아식 찜질방 옷을 입고 얼큰한 국물을 한 사발 들이켜니 혼밥도 외롭지 않았다.
식사를 마친 후, 주변을 좀 더 둘러보기로 했다. 아이가 하원 하는 3시까지 무조건 돌아가야 하는 일정이라 자세히 들여다보진 못했지만, 의외로 영화관이 최신 영화 위주로 상영을 하고 있고 의자는 발마사지 집 가면 있는 아주 편한 거의 누워서 보는듯한 의자로 시간이 많다면 한 번쯤은 경험하고 싶었다. 나는 릴렉싱 룸을 이용했는데 살짝 어두운 공간에서 가만히 누워있을 수 있었고 추가 비용을 지불하면 손톱과 페디큐어를 하는 직원이 와서 관리를 해 주었다. 스파 시설에는 마사지샵도 입점되어있어 RM 50링깃 정도 추가하면 한 시간 동안 마사지도 받을 수 있는 티켓도 있다. 시간적인 여유가 없어 2시간 정도 이용하고 나왔지만 왠지 쿠알라룸푸르에서 '사우나 찾기'라는 미션을 완수한 것 같은 기분이다. 쿠알라룸푸르는 2시 40분부터 차가 슬슬 막히기 시작한다. 국제 학교와 유치원 픽업 차량들이 길을 나서는 시점이라 20분 거리면 40분을 예상하고 차를 타야 한다. 2시 반에 나서니 정말 딱 3시에 도착해 조금만 늦어도 아들을 부산 언니들이 돌봐주는 민폐를 끼칠 뻔했다.
누군가에게 꼭 가보라 적극 추천할 정도의 시설과 거리는 아니지만, 사우나를 엄청 좋아하는 아줌마로서 그리고 쿠알라룸푸르에서의 이색 체험으로 혹은 너무나도 대중목욕탕이 가고 싶은 이들에겐 권하는 곳이다. 나도 모르게 캐비닛 앞에서 훌렁훌렁 옷을 벗으면 직원이 조용히 다가와 화장실에 가서 입고, 벗으라 안내를 준다. 무슬림의 나라답게 내가 퇴실할 때쯤 입장 한 단골로 보이는 이가 탕에 들어갈 때 수영복을 입고 들어가는 것을 보니 나에게 일회용 속옷 착용을 권한 이유를 알았고 사우나에서 다시금 느꼈지만 문화란 참으로 다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