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일 무게를 잰다
삐익 삑, 무게를 측정하는 소리가 난다. 하루에 한 번 밥을 먹고 나면 아빠는 체중계 위에 올라간다. 원래 체구가 작은 데다 마른 아빠는 빼빼 마른 것이 콤플렉스다. '고기를 먹어야 살이 찌려나' '오늘은 뭐 해 먹지?'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아빠는 자신의 마른 몸에 민감해했었다. 당시에는 아빠가 어린 나보다 키도 체구도 컸었으니 내게는 아빠가 큰 세상이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아빠는 매우 예민하다. 아빠는 항상 시간을 허투루 쓰는 법이 없었다. 이사 준비를 할 때만 해도 그렇다. 이사 비용을 아낀다는 이유로 사십 평대가 되는 집안의 짐들을 신문지로 싸고 박스마다 마스킹을 해가면서 홀로 챙겼다. 요즘에는 봉사활동, 텃밭 기르기, 해설사 일을 하겠다고 자처한다. 한 달에 이십만 원 남짓 쌀값이라도 보태야 한다며 하는 소소한 일들이다. 그런데 요즘 아빠는 걱정을 한다. 자신의 말라가는 몸을 보며 '내가 건강해야 할 텐데'라는 혼잣말을 하는 것이다. 체중이 줄어가는 것은 고사하고 더 이상 빠지지만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밥을 먹을 때마다 합장을 하며 두 눈을 감고 기도한다.
나와 아빠는 언젠가부터 '건강'에 신경 쓰게 되었다. 예민해졌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아픈 걸 차곡차곡 쌓아두었다가 금방 가버린 엄마 때문에. 조금이라도 아프면 병원에 가야 한다며 서로가 서로에게 잔소리를 한다. 나는 아빠에게 남은 노년은 쉬면서 보내라고, 아빠는 내게 점심은 든든히 챙겨 먹으라고 말한다.
얼마 전부터 건강 관련 스타트업 회사로 출근하게 됐다. 나 또한 매일 체중계 위에 올라가는 마음으로 출근한다. 나는 예전보다 조심스러움이 늘었다. 신입도 아닌 경력인데 혹여나 신입 같아 보이진 않을까. 어리숙해 보이진 않을까 매일 걱정한다. 모델들이 옷을 다 벗고 체중계 위에 올라가 검사를 받는 것처럼. 일 킬로그램이라도 더 적정 체중에 다가가려 노력하는 것처럼. 나는 매일 아침 조금 더 어깨에 힘을 싣고 긴장하며 출근한다. 수평적인 회사라고 해도 말 수는 줄었고, 온 정신과 생각을 문서와 내가 쓰는 워딩에 집중해서 담는다. 내가 쓰는 글이 곧 무게다. 밥벌이고, 누군가를 책임져야 하는 하나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아빠는 본인의 체중이 여전히 적게 나가는 걸 알면서도 체중계에 오른다.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었으니 0.1킬로그램이라도 쪄 있기를 기대하면서. 퇴근 후 집에 오는 길목에서 통닭 한 마리를 샀다. 어떤 날은 회사에서 먹다 남은 조각 피자를 다 먹지 않고 싸오기도 한다. 맛있는 걸 포장해 오는 건 엄마가 나를 위해 하던 것들이다.
나는 오늘 견딘 무게들을 가늠해본다. 몇 킬로그램쯤 됐을까. 그건 그렇고, 맛있는 것들을 양손 가득 쥐고 집에 오니 뿌듯해졌다. 아빠가 맛있는 걸 잔뜩 먹고 몸무게가 늘었으면 좋겠다. 내일은 조금 더 회사에 나가는 발걸음이 씩씩해졌으면 좋겠다. 아빠가 살이 쪘으면 좋겠다. 살이 잔뜩 찌게 걱정도 안 했으면 좋겠다. 나도 아무렇지 않게 삶의 무게를 덤덤하게 안고 하루를 끌고 나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