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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라일락 Jan 06. 2020

할머니 기상캐스터

 부슬부슬 봄비가 내리는 어느 날 





“오늘 우산챙겨라 비 많이 올 것 같다”



“할머니가 그걸 어떻게 알아?”



어린 나는 되묻곤 했다. 창문을 열어 바깥 공기를 확인한다. 스스로 분석에 들어간다. 습습하긴 하지만 햇살이 화단가득 내려앉아서 오늘은 따뜻할 것 같다. 그런데도 우산을 챙기란다. 입을 투덜거리며 귀찮은데를 연발하던 나는 의무적으로 우산을 책가방에 넣고 말없이 학교 갈 채비를 한다. 그런데 할머니의 예상은 늘 적중했다. 비가 오는 날도 우박이 내리던 날도 진눈깨비가 장난이라도 치듯 찔끔찔끔 올 때도 할머니는 무언가 올 때마다 단번에 알아 맞췄다.  할머니는 멍하니 창밖을 바라봤다. 그리고 비가오지 않는 날에는 밭에 나가셨다. 내게 할머니의 말은 날씨의 마술사처럼 신기해 보였다. 어떻게 그렇게 알 수 있냐며 묻는 내 물음에 할머니의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살아보면, 시간이 지나면 짐작이 가능하단다, 어느 날은 몸이 반응할 때도 있단다. 어깨나 무릎이 욱씬 거리기도 하고 전날에 개구리가 개굴개굴 운단다. 옛날엔 일기예보말고 하늘을 보고 알았다고. 계속 살아보면, 이다음에 네가 어른이 되면 다 알게 된다고…. 그 묵직한 말이 이해가 되지 않은 나는 고개를 갸우뚱 한다. 그저 빨리 어른이 돼서 알고 싶었다. 그 후 무려 20년이 지났다.

 TV 속 기상캐스터가 오늘의 일기예보를 전한다. 우비를 입고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우리나라 지도를 가리키면서 이야기 한다. 월요일부터 쭈욱 장마가 시작된다고 하며 주의사항을 알려준다.

“내일은 비가 내리겠습니다.많은 양의 비가 내리 겠는데곳에 따라 10에서 최고 100밀리 까지 내리겠습니다

남부지방은 10에서 30밀리 중부지방은 5에서 50밀리 내리겠습니다.

지역에 따라 최고 100밀리 내리겠습니다“


 

 어떤 날은 예보가 딱딱 들어서기도 하지만 그게 틀렸다는 듯 해가 쨍쨍할 때도 있다. 회사에 기껏 가져간 우산이 무용지물일 때도 있다. 또 갑작스럽게 요란하게 비가온다. 비는 과녘을 맞추는 화살처럼 바닥을 세게 때렸다가 위로 솟는다. 그 모양이 포물선처럼 계속된다. 도깨비 비인가? 비가 오는 순간 발만 동동 구르며 고민을 한다. 편의점 우산 하나에 6000천원 벌써 세 번째다. 중요한 순간이면 있다가도 없는 요상한 날씨덕분에 우산이 늘어만 간다. 이럴 때면 하늘의 길흉화복을 온 몸으로 느끼며 점지하던 할머니가 생각난다. 곧 할머니가 우비를 입고 날씨를 설명하는 재밌는 상상을 해본다. 대한민국 최초의 할머니 기상캐스터. 잠시 생각하다 낄낄대며 혼자 웃는다.

 때로는 수치보다 몸이 기억해 반응할 때가 있다고. 살아보니 알 수 있다는 말에 마음이 시큰해진다. 올해도 장마가 온단다, 마시던 얼그레이 차를 목으로 넘기다 성대 사이로 목이 막힌 듯 뜨거운 열이 끓어오른다. 오늘은 비가 오는 지 안 오는지 할머니한테 묻고 싶은 날이 있다.

     

 할머니는 바로 내 옆방에 계신다. 하루하루의 날씨를 알아맞히던 할머니. 우리가족은 이제 할머니를 모시며 하루를 무사히 보내는 게 목표다. 어느날 할머니가 내게 묻는다.

“오늘이 월요일인가? 화요일인가? 지금 여름인가 가을인가?”

 감각이 더 둔해졌고, 여름에도 춥다며 두터운 옷을 겹겹이 입으신다. 어느날은 요일을 맞추다가도 어떤 날은 헷갈려 하신다. 그래도 밥 먹는 시간은 꼬박꼬박 기억을 하신다. 외출할 때 점신은 먹었나? 저녁은 먹었나?라는 안부가 잘 갔다 오라는 할머니의 안부가 되었다. 휠체어를 끌어 드리며 새로 산 모자를 할머니에게 씌워준다. 잘은 모르지만 할머니 머리가 따뜻해야 될 것 같아서…. 왠지 모르게 내 양쪽무릎이 욱신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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