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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라일락 Jan 08. 2020

딸기가 영글던 날

초 봄 너를 만나다

 계절마다 가장 맛있는 과일이 있단다. 나는 엄마가 사 온 딸기들을 믹서기에 넣고 간다. 딸기 씨와 붉은 즙이 빙글빙글 뾰족한 칼날에 갈린다. 씨알과 딸기 열매는 서로 몸을 뒤섞이며 돌아 서로 웅웅 거린다. 꼭 친구 몇 명이 시끄럽게 내 앞에서 떠드는 것만 같다. 약간의 건더기와 특유의 새콤함이 딸기 원액 그대로 입안에서 퍼진다. 창가 너머로 해가 뜬다. 환한 아침, 마시는 주스 한잔은 방금 뜬 해를 통째로 머금고 있는 것만 같다. 그리고 내게 오늘 하루도 힘내 라고 읊조리는 것만 같다.

  


  


 딸기도 그 무렵 아침 해처럼 내게 다가 왔다. 정확히는 우리 집에 왔다. 흰색 털이 수북히 쌓여있는 아이, 많이 작은 몸집에 가슴팍 당겨 끌어안았을 때 갈비뼈가 바로 만져지는 아이, 이 강아지의 이름은 없었다. 무명이, 무명 개, 그정도로 부르겠다. 지인이 자취를 하다 사정이 생겨 키울 수 없어서 다른 곳에 보내야했다. 그리고 그 강아지를 내게 데려왔다. 처음에는 강아지를 키워보고 싶다는 호기심에 막연하게 데려왔다. 일반 말티즈 보다는 품종이 크고 입 쪽이 길게 튀어나왔다.  그때가 한참 대학교 수업을 들으러 통학하던 터라 내 방 침대에 두고 문을 닫고 나가곤했다. 어느 날 그 무명 강아지는 늑대처럼 하울링을 하듯 우우 거리며 고개를 하늘로 향하며 울기 시작했다. 스쳐갔던 사람들이 생각이 나는 것일까. 누군가를 생각하는 것처럼 한참을 울부짖는다.



     

 첫날은 짖더니 두 번째는 잠잠해졌고, 무명의 강아지는 집안에 그리고 내 생활에 적응했다. 정확히 말하면 내 생활 속에 스며들었다. 달력이 사월에서 오월로 넘어갔다. 그래도 볕은 따뜻했다. 나는 이 앙상한 아이에게 봄의 향기 같은 특별한 이름을 선물하고 싶었다. 정확히는 흔하지만 건강한 이름, 계속계속 자라나고 피어날 수 있는 존재로. 그리고 그 존재의 단어를 붙여줬다. 딸기다. 봄에 내게 온 딸기. 딸기는 4월쯤에 자라나 6월 초순에 열매를 맺는다고 한다. 흰색 딸기꽃이 받침처럼 뾰족한 형태로 피어있는데 꽃이 지면 과육으로 열매가 맺는다고 한다. 초록에서 붉은 과실로 영글어가는 딸기처럼. 그렇게 건강하게 자라면 좋을 것 같아서, 나와 우리가족은 그 강아지를 딸기라고 불렀다. 딸기는 눈빛이 정말 예쁜 아이다. 밥을 먹을 때도 함께 산책에 갈 때도 내가 외출할 때도 검은색 동공을 오른쪽 왼쪽으로 굴리며 눈치를 본다. 그리곤 다시  지긋이 눈을 맞춘다. 나는 우리강아지는 예쁘게 생겼어요. 잘 생겼어요 보다는 분위기가 예뻐요. 라는 말을 쓴다. 내가 느끼기로 딸기는 눈치에 길들여져 있어서 사람들의 모습을 이해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려 한다. 이를테면 내가 박스티에 청바지를 입고 모자를 쓰면 바깥에 잠깐 나가는 줄 알고 같이 데려가 달라며 몸줄을 채워 달라고 엉덩이를 들이민다. 하지만 약속이라도 있는 날에 한껏 화장을 하고 원피스를 입으면 눈치껏 포기한 듯 가만히 앉아 잠을 잔다. 딸기와 사계절이 열 번 지나갔지만 그 사계절은 내게 모두 봄날로 채워져있다.


     


 체중이 2.9kg이었는데 4kg이 됐단다. 삐쩍 말랐던 강아지는 없다. 더 이상 무명의 강아지는 없다. 그리고 딸기는 이제 10살이 넘은 강아지는 노견이 됐다. 그 시간을 말해주는지 몸 곳곳에는 검푸른 점이 돋아나있고, 지방 종괴라는 우둘투둘한 사마귀가 열댓개 된다. 최근에 다섯 개를 떼어주었는데 어쩔 수 없이 늙어서 계속 나는 것이란다. 강아지는 사람의 시간보다 6년이 더 빠르다고 한다. 하루 종일 빈 집에서 사람을 기다리는 것은 1주일이다. 강아지가 사람과 다른 시간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그 시간의 결이 빨리 지나간다는 것이 뭔가 아쉽고 서글프다. 그래서 난 오늘도 그 시간을 잡아두려, 잠시라도 기억해두려고 한다. 나가는 것을 제일 좋아하고 나무마다 코를 박고 킁킁대는 변함없이 딸기가 영그는 모습을 간직하려고. 그 활기찬 모습을 책갈피처럼 기억하고 싶어서. 사진으로도 찍고, 글로도 남긴다. 그리고 손끝으로 조금은 약간 푸석해진 털을 쓰다듬는다. 그렇게 딸기는 붉게 영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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