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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라일락 Oct 09. 2020

벚꽃이 예뻐 엉엉 울었다

봄에 느끼는 역설적 감정

  벚꽃은 예쁜데 내 마음엔 어둠이 피었다.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잎엔 ~ 

  봄노래를 부르고

  꽃잎이 피어나 앞에 살랑 거려도

  난 다른 얘기가 듣고 싶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가 버릴

  오오 봄 사랑 벚꽃 말고 ~~~




  가게 주변에서는 봄에 대한 음악들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지금은 봄에 대한 역설적인 감정에 대한 음악들이 많다지만 그 당시에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사랑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계절, 솜처럼 부들부들한 감촉이 양쪽 볼을 스윽 만지고 지나가는, 간질거리는 느낌의 음악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시각 그때 스무 살의 나는 여의도에서 펑펑 울었다. 나는 첫 연애를 했고, 봄에 차였다. 사랑을 하고 좋아하면 결혼까지도 할 줄 알았다. 그런데 그건 착각이었다. 내 마음은 그때  하얗고 아직 솜털 하나 묻지 않았었나 보다.

“너무 좋아해서 질린다는 말 ”

  그 사람은 내가 질린다고 말했었다. 고등학교 때 문예창작 특기생 모임을 하며 만난 사람이었다. 그 사람이 무심하게 굴어도 난 마냥 좋았던 것 같다. 손재주라곤 없는 내가 처음으로 초콜릿을 만들어봤고, 케이크도 만들어봤었다. 아무에게도 안 알려주는 내 창작법을 그에게는 공유했었다. 그런데 그런 그가 내가 질린단다.

  첫사랑은 달고 오래도록 기억이 난다지만 내게 첫사랑은 쓴 카페인이 덕지덕지 쌓인 농도 깊은 초콜릿이었다. 그가 일방적인 이별을 고했지만 믿기지가 않았다. 그때 나는 믿었던 누군가에게 일방적인 거절을 당하는 ‘배신감’을 처음 알았다. 눈물이 나기보단 심장이 주체할 수 없이 빨리 뛰었다. 앞으로 그 사람 없으면 어떻게 살아가지부터. 난 이제 어떻게 지내지, 누구한테 말을 하고, 누구를 만나고……. 그냥 삶의 일부분이 송두리 채 찢어진 느낌이었다.





  그때는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다는 걸 몰랐다. 그저 내 마음은 얇은 종이처럼 물 한 방울 떨어지면 금방 젖어서 찢어질 만큼 나약했었으니까. 입에 밥도 잘 안 들어가서 살도 오 킬로그램 이상 빠졌었다.     

  대학교에서 만난 친구 무리가 벚꽃놀이를 가자고 한 날이었다. 유난히도 여의도에 벚꽃이 예쁘게 피어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벚꽃을 보니 질투가 나서 눈물이 났다. 한번 흘린 눈물은 종 잡을 수 없이 쏟아져 콧물과 함께 주르륵 뒤덮었다. 얼룩무늬가 된 내 얼굴. 그 당시 어색하게 한 아이라이너며 마스카라가 다 엉망이 되어 흑색 물이 되어 있었다. 마치 내 마음의 색 같았다. 친구들은 내가 이해가 되지 않는지 표정이 잔뜩 얼어있었다.

지금 예쁘고 즐거운 이 분위기를 네가 망쳐놨어. 분위기 파악 좀 해라는 식으로 쳐다봤다. 그러다 무리 중 한 명이 직설적으로 내게 이 분위기를 깨는 건 옳지 않다고 말했다. 



  


  가라앉은 벚꽃 놀이 분위기 때문에 나는 홀로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택시를 잡았다. 왠지 택시도 나를 무시하고 지나갈 것 같아 온 힘을 다해 ‘아저씨 저기요 여기요’라고 힘껏 외쳤다. 택시를 타고 앉아 투명 유리 너머에 비친 벚꽃들을 훑어봤다. 분홍색으로 만발한 벚꽃들이 영상 속 프레임처럼 한컷 한컷 지나갔다. 너무 예뻤다. 예뻐서 눈물이 더 났다. 택시 아저씨는 “학생 왜 이렇게 울어?” 

걱정 섞인 말로 질문을 던졌다. 나는 그 말에 울컥해 더 엉엉 울었다. 왜 누가 아픔을 툭 하고 건들면 눈물이 더 나지 않는가.

  “벚꽃은 저리 예쁜데 저는 오늘 헤어졌거든요. 그래서 슬퍼요. 벚꽃이 미워요 엉엉”

  정말 저렇게 말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웃픈 대사였다.

택시기사님은 딸 같은 내가 안쓰러워 보였을까. 이런 일 저런 일 산전수전 공중전 나보다 족히 이십 년 이상은 더 사셨을 것 같은 기사님이 미소를 내 보이며 내게 말했다.

  “다들 그런 말 하겠지만 시간이 약이야. 내년 봄에는 더 좋은 사람 만나서 즐겁게 와. 걱정하지 말아”

  “저는 그 사람밖에 없는걸요. 흑흑”

  지금 생각하면 청승맞다 못해 참으로 찌질하다. 봄날 헤어져서 벚꽃이 너무 예뻐서 그래서 벚꽃이 미워서 울고 있다니.



  “시간이 지나고 보니 다 맞았다”

  그 사람이 안되면 아닐 줄 알았던 인생 따윈 없었다. 나는 누구의 것도 아닌 나였다. 매년 다른 봄처럼 스무 살 내 봄이 유독 아팠을 뿐이다. 2008년 봄은 내게 아프게 다가왔다. 그로부터 12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2008년 봄은 벚꽃이 유난히 미웠는데 그때 진짜 미웠던 건 나 자신이었을 테니까. 3월엔 내 생일이 있다. 할머니와 쑥을 캐던 추억이 있고, 공원 안 잔디에 누워 강아지와 놀던 든든한 기억들이 버텨 주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봄날의 감정들은 계속해서 지나갈 것이다. 잊지 말자. 안 좋은 기억 위엔 시간이 후시딘처럼 덧 입혀져 곧 사라질 것이다. 지나간 기억에 새로운 나날의 밴드를 붙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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