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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라일락 Jan 13. 2020

나는 내 생일이 싫었다

내 어릴적 봄

나는 내 생일이 싫었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올라가던 때였다.실업계로 진학하는 친구들을 제외하면 인문계아이들은 소위 말하는 뺑뺑이로 학교를 배정받았다.같은 학교에 배정받아도 반이 각각 달랐다. 예비 소집일 날 각각 다른 중학교에서 온 낯선 풍경에 잠시 얼어있었다 .어떤 아이들은 친했던 아이들과 또 같은 반이 되었다며 박수를 치기도 하고 몇몇은 그래도 아는 사람이 있다며 기뻐했다.

고1 이 된 나에게 아무도 없다는 것은 충격이었다.



나는 늘 중간이었다. 열심히 공부를 해도 중간, 운동신경이 없어 며칠 동안 체육 수행평가 과제인 뜀틀 구르며 넘기를 연습했는데 B를 받은 적이 있다. 성적은 중간이고 그저 그렇게 지나가는 학급에 속해있는 조용한 아이였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나를 좋아할까? 늘 타인과의 관계를 고민하던 아이. 그게 나였다.

 아이들은 망각의 동물이다. 한 학년이 끝나면 새 학기를 맞이하며 언제 그랬냐는 듯이 새 친구를 사귀었다. 능청스럽게 장난을 치며 다가가는 아이도 있었고, 열심히 손을 들고 발표를 하며 교실을 이끌어 나가는 아이도 있었다. 그 속에서 나는 도 아니면 모 아닌 개나 걸 정도의 미지근한 아이였다. 하지만 친해지면 내가 좋아하는 만화영화 속 마법사, 천사의 스티커며  종이학따먹기로 얻은 새로운 학종이를 내어줄 만큼. 내가 제일 아끼는 것들을 나눠줄 정도로 좋아하는 것들을 내어주었다. 상대에게 나눠준 만큼 내 마음을 보여주었고,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 관계를 고민하기 전에 상대방의 마음을 두드려 본다. 수줍지만 천천히, 자세히 들여다본다. 피어오르는 연기처럼 뭉근하게 상대방도 내게 다가온다. 새로 고등학교에 올라간 아이는 색깔이 또렷해 졌으며 주관도 뚜렷해졌다. 나와 비슷한 색깔의 친구들에게 먼저 말을 걸고 있었다. 어느날 친구 한명이 사물함에 쪽지와 과자를 넣어 놨다.

 “너 오늘 생일이라며 반은 달라져도 자주 놀러와 맛있게 먹어.”

 투박한 포스트잇에 쉬는 시간 매점에서 늘 먹던 과자 한봉지. 나를 기억해 주는 그 마음을 꾸깃꾸깃 접어 내 마음에 압축 해 넣었다. 내 생일을 기억해 주는 사람은 몇 없었지만 메모 속에서 온기와 향이 난다. 나는 더 이상 관계에 연연하지 않았다. 흩어져 날아가는 민들레 홀씨를 손으로 잡는다 한들 오롯한 민들레 한 송이가 될 수 없는 것처럼.  

     

 지금은 SNS와 실시간 메신저 서비스가 잘 되어 있어 작은카드에 문자를 새겨 선물과 함께 전송할 수 있다. 심지어 생일 알림 서비스도 있어 까먹어도 미리 상대방의 생일을 볼 수 있다. 10년 전이었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업무적으로, 메신저에 목록에 떠서, 바빠서 얼굴보기 힘드니까,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며 생일 선물을 주고받는다. 그때 마다 느끼는 것이 다르다. 바로 ‘감정의 온기’다. 누군가는 투박한 한 줄의 말에서 온기를 얻고, 구구절절한 귀여운 축하메시지에 소박하게 웃는다. 나는 이제 내 생일이 싫지 않다. 친구들의 축하와 관심 속에 성대한 선물과 관계를 원했다면 지금은 식탁위에 케이크 하나 놓고 초를 붙이며 가족과 함께하는 생일이 좋다. 그리고 나를 기억해 주는 몇몇의 사람들과 저녁을 먹으며 술잔을 부딪히는 분위기가 좋다. 오랜만에 커튼을 빨았다. 창문을 여니 고소한 햇살이 아지랑이처럼 코끝으로 내려앉는다. 화단에 노오란 개나리들이 피어있다. 시작이 좋은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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